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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학회들의 고민과 모색
2001년, 학회들의 고민과 모색
  • 권희철 기자
  • 승인 2001.12.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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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통일·신자유주의, 가장 빈번했던 주제
생명윤리논쟁 잇달아

포스트-게놈 시대가 제시하는 장밋빛 미래를 두고 줄기찬 논란이 벌어졌다. 문제를 제기하는 쪽은 주로 윤리학계·종교계 관련 단체들이었고, 그들은 공히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을 지적했다. 지난 4월 한국과학철학회의 ‘과학전쟁’ 토론회를 필두로 해서 과학기술부 산하 생명윤리자문위원회의 공청회, ‘생명공학 시대의 철학적 성찰’을 주제로 한국철학자대회 등이 이어졌고, 지난 21일 열렸던 우리신문 송년세미나 ‘경계에 선 생명, 삶과 윤리의 척도를 찾아서’가 대미를 장식했다. 크고 작은 모임을 막론하고 전례 없이 ‘생명’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를 펼쳤던 것이 특징적이다.

분단, 신자유주의 등 현실에 대한 고뇌

지난 7월에는 남북정상회담 1주년을 맞아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의 ‘탈냉전시대의 북한 연구’, 통일연구원의 ‘한반도 평화정착과 국제협력’, ‘민족통일대토론회’ 등 다양한 행사들이 쏟아졌다. 의례적인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탈냉전시대를 전망하려는 것만큼은 공통적이었다는 평가. 9·11 이후로는 관심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질서로 옮겨갔다. 이화여대 인문대학교수포럼에서 구대열 이화여대 교수(정치학)와 이희수 한양대 교수(문화인류학)의 진지한 토론이 주목을 받았다. 무엇이 진정한 도덕적 태도인지 국내 철학자들이 간접화법으로 논쟁을 펼쳤던 ‘소공동사람들’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한편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이론적으로 탐색하려는 시도들도 활발했는데, 한국사회경제학회의 ‘한국경제와 정치경제학’,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시장전제주의 체제’를 주제로 한 비판사회학대회가 그 예. 사회과학자라면 신자유주의, 세계화, 신경제 등의 주제를 피해갈 수 없었던 한해였다.

남명, 퇴계 관련 학술행사 봇물

한국 유학을 대표하는 남명 조식과 최계 이황의 탄생 5백주년을 기리는 행사가 줄을 이었다. 남명학회가 창립되기도 했고, 지난 8월부터 9월까지 퇴계학 국제학술대회, 남명학회 국제학술대회 등 다양한 기념 학술대회가 펼쳐졌다. 두 사상가의 학문세계를 조명하면서 나름대로 그 현대적 의의를 찾으려 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여전히 문중학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한국 철학계가 처한 현 주소가 어디쯤인지 엿볼 수 있는 대목.

창립학회의 새로운 고민들

한편 새롭게 창립하는 학회들도 주목을 받았다. 아나키즘학회, 문학과환경학회, 이론사회학회, 한국고문서학회, 새만금생명학회, 한국사회민주주의연구회,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 등. 이 중 대부분은 새로운 담론의 지평을 열려 하거나 그간 소외됐던 분야에 대한 연구를 개척하려는 시도들로 보인다.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이 가장 주목을 끌었는데, 한국 지식의 식민성을 반성하며 지금·여기에서 자생학문의 가능성을 타진하려는 몸부림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론사회학회도 동일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새만금생명학회의 경우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인들이 모여 사회적 의제를 학문에 반영하는 모범적 사례로 평가할 만하다.

권희철 기자 khc@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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