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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년 5월을 상기할 것인가, 땅에 묻을 것인가
68년 5월을 상기할 것인가, 땅에 묻을 것인가
  • 이기라 / 프랑스통신원·소르본대 박사과정(정치사회?
  • 승인 2008.05.13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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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학술동향] 프랑스, 反68논쟁에 휩쓸리다

‘68에 대한 증오’라는 화두가 프랑스 정계와 학계를 떠돌고 있다. 프랑스 68혁명의 40주년 기념(?)은 지난 대선기간 동안 대중운동연합(UMP)의 후보였던 니콜라 사르코지 현 프랑스 대통령이 던진 도발로 작년 4월에 이미 시작됐다. 물론 이 앞당겨진 ‘기념’의 시작은 40주년을 단지 68혁명의 정신을 다시 상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땅 속에 묻으려는 자들과 그것을 옹호하는 자들의 치열한 논쟁이었다.

2007년 대선에서 사르코지 후보의 주요 슬로건 중 하나는 68혁명의 유산을 청산하자는 것이었다. 당시 그는 68년 5월의 ‘사건들’을 모든 악의 근원으로 치부했다. 68혁명운동은 노동의 가치와 국가의 권위를 훼손하고, ‘국민’의 가치를 폄하하고 공동체주의를 붕괴시켰다는 것이 사르코지 주장의 골자다. 심지어 그는 돈에 대한 숭배, 단기이익 추구, 금융자본주의로의 흐름에 대한 책임까지 68세대에게 떠넘겼다. 그에 따르면, 68혁명은 프랑스 사회에 모든 것이 다 가치가 있고,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아름다움과 추함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도덕적 지적 상대주의’를 심었다. 68혁명은 허무주의적이며, 모든 전통적 가치와 제도들을 파괴했다는 것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을 위시한 우파정치권의 68혁명 평가절하와 그 유산에 대한 청산요구는 혁명기간 동안의 민주적이고 쾌락주의적이며 유토피아적인 흐름들에 대한 혐오를 통해 모든 우파들을 결집시키는데 목적이 있었다. 더 나아가 현재 그들이 추진해온 주 35시간 노동시간제의 수정, ‘권위가 서있는 학교’의 회복, 치안유지를 위한 공권력 강화 등을 위한 정치담론 차원의 사전정지작업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사르코지 등에 업은 우파의 공세
사르코지식 68혁명 해석에 대한 지적 기반의 제공자이자, 정계와 학계를 넘나들며 그러한 해석을 대변하고 있는 사람은 철학교수 출신이면서 라파랭정부 시절 2002년부터 2004년까지 교육부 장관을 지낸 것으로 유명해진 뤽 페리(Luc Ferry)다. 뤽 페리는 1985년에 이미 파리 4대학(소르본) 철학교수인 알랭 르노와 함께 처음으로 68혁명의 지적 유산에 대한 비판을 정식화한 바 있다. 국내에도 번역돼 소개된 이 책(『68사상과 현대 프랑스 철학』 주형일 옮김, 인간사랑, 1995)에서 저자들은 푸코, 부르디외, 라깡 등으로 대표되는 68사상을 니체, 마르크스, 프로이트 등 독일 철학자들의 아류이며 ‘현대판 반인본주의’라고 폄하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사르코지 이전까지 프랑스의 우파들은 68혁명의 유산과 68세대를 전면적으로 공격하지는 못했었다.

사르코지의 도발은 역설적으로 68혁명 40주년을 더욱 열띠고 다채롭게 만들었다. 매 10주년마다 쏟아져 나오는 관련서적들과 학술, 문화행사에, 올해는 사르코지식 68해석을 비판하거나 논쟁하는 내용들이 부가된 것이다. 68혁명의 핵심 학생지도자 중 한 사람이자 현재 녹색당 유럽의회 의원인 다니엘 콘벤디트의 경우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68은 끝났다. 나는 그것을 기념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사르코지가 나로 하여금 68을 다시 기념하도록 만들었다”고 털어놓는다. 68혁명의 핵심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대응에서부터 68혁명에 대한 우파적 해석을 비판하는 다양한 지적 작업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 2월 ‘프랑스 컬쳐(France Culture)’ 라디오 채널과 뉴벨 옵세르바퇴르(Nouvel Obs)가 공동 주관한 대담에 68혁명에 대해 서로 대립하는 양대 입장의 대변자로서 뤽 페리와 다니엘 콘벤디트가 초대된 것은 상징적이다. 뤽 페리는 68혁명 이후의 교육체계 개혁은 프랑스의 전통유산들을 잊게 했고 전통적 가치들을 파괴했다고 평가한다. 또한 68혁명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비문자주의(illettrisme)가 2000년대의 가장 큰 문제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더불어 “68혁명을 만든 것은 대중소비사회를 가져온 대자본이다. 그런데 소비는 중독이다. 대중소비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가치들을 깨야했다”고 단언한다. 다시 말해, 68혁명이 대중소비사회로 가는 과정에서 자본주의에 기여했다는 해석이다. 뤽 페리에게 68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단지 이해관계와 이성이 아닌 감정에 기반한 가족 사랑의 승리였을 뿐이다.

이에 맞서 68혁명의 가치를 옹호하는 콘벤디트는 언론, 학교, 공장에서 자율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심은 것, 드골주의, 마르크스주의, 공산주의, 노동조합과 경영자의 권위주의와 독단을 제어한 것, 여성과 남성이 자유롭게 자기 몸에 대해 결정하는 세상을 만든 것, 여성들이 낙태를 선택할 권리를 갖는 것, 환경주의적이고 사회복지적인 세계화를 지향한 것 등 긍정적인 유산들을 다시 상기시킨다. 그는 스탈린주의자와 볼셰비키들의 용어인 ‘청산(liquida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에 주목하며, “68혁명 의 청산을 이야기 하는 것은 볼셰비즘”이라고 반격한다. 68혁명은 프랑스 사회를 구석구석 바꿔놓았으며 개인의 자율성을 해방시켰다는 것이다.

논쟁의 불씨 살리는 긍정적 유산들


언론과 대담 등을 통해 진행되는 정치적 논쟁보다도 소르본 대학의 젊은 철학교수 세르쥬 오디에(Serge Audier)의 지성사적 작업은 반68정서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비판을 제공한다. 그는 최근 출판된 『반68사상(La pensae anti-68)』에서 반68혁명의 열기를 단지 우파정치권의 일시적인 ‘반동적 레토릭’이 아니라 68혁명 직후부터 시작돼 해마다 지속된 것으로 보고, 그 기원을 추적한다. 오디에는 극우에서부터 공산주의 좌파까지 68혁명이 계속해서 공격받는 이 긴 과정이 자유주의적이고 보수주의적인 반격에 의한 ‘인본주의’의 재승인과 공화주의적 신화로의 회귀로 특징 지워지는 지성계의 뿌리 깊은 변이와 함께 했다고 강조한다. 보수적 입장들로의 회귀를 정당화하는 이 청산 작업이 68혁명에 대한 잘못된 해석들로부터  완성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68혁명으로 샤를 드골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했지만 6월 총선거에서 오히려 우파가 대승을 거뒀다는 점, 이듬해 국민투표를 통해 드골이 하야했지만 그의 계승자인 퐁피두가 다시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점 등을 들어 일반적으로 68은 정치적으로 실패한 혁명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사회적, 문화적 측면에서 68의 영향은 지대하다. 최저임금제의 재확립, 대학구조를 비롯한 교육제도의 혁명적 변화, 가족과 학교, 직장에서의 전통적 위계질서의 해체, 남녀평등, 성해방, 개인의 자율성 확대 등 우리가 갖고 있는 프랑스 선진문화의 이미지는 대부분 68혁명을 기폭제로 하여 형성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과연 프랑스에서 68혁명의 유산들이 온전히 지켜질 수 있을 것인가. 이 논쟁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정부와 의회를 장악한 우파정치권이 프랑스 사회를 68년 이전으로 되돌리는 노력을 계속하는 한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이기라 / 프랑스통신원·소르본대 박사과정(정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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