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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인 것과 역사적인 것 사이의 긴장
논리적인 것과 역사적인 것 사이의 긴장
  • 교수신문
  • 승인 2008.04.28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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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유교와 한국문학의 장르』 박희병 지음 | 돌베개 | 2008

박희병 교수의 글은 논리적인 것과 역사적인 것 사이의 긴장으로 늘 충만해 있다. 『유교와 한국문학의 장르』 또한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책의 본문 2장부터 5장까지는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유교와 한시’, ‘유교와 한문산문’, ‘유교와 국문시가’, ‘유교와 국문소설’을 검토하는 장을 배치했다. 6장에서는 다시 삼국·통일신라시대로부터 조선후기에 이르기까지 通史的으로 ‘유교와 한국문학의 시대별 장르체계’를 검토하는 장을 배치했다. 이러한 본문의 배치 이외에도 1장의 ‘문제와 방법’ 검토와 7장의 ‘비평적 조망’ 검토에서도 저자의 집념을 잘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서 구사되는 주요한 논리의 틀은 경계의 ‘안/밖’과 체계의 ‘중심/주변’과 ‘상/하’ 등이다. 이 틀은 문학 장르체계의 ‘안/밖’ ‘중심/주변’ ‘상/하’로서도 나타나지만, ‘보편성/특수성’, ‘한문/국문’, ‘유교/비유교’, ‘주자학/비주자학’, ‘문명의 중심(華)/문명의 주변(夷)’, ‘정통/비정통’, ‘공적/사적’, ‘남성/여성’, ‘지배/피지배’ 등으로, 유교와 한국문학 장르의 관련성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가령, 저자에 따르면 중국에서 형성된 외래사상인 유교는 문학과 분리되지 않는 독특한 특성을 갖는 사상이다. 따라서 중국이 곧 보편성임을 전제로 삼는 유교의 수용은 유교와 관련된 일체의 글쓰기 장르들, 곧 중국한문학의 장르들을 그대로 수용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한국 고전문학의 장르들, 특히 한국한문학의 장르들은 이 때문에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적 보편성에 동참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양면에서 삶과 이념을 표현해 내는 다양한 방식을 터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교에 의해 담보된 이 장르적 보편성은 동시에 한국문학의 약점으로도 작용했다. 가령, 장르의 창안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한국한문학의 정통 장르들 중 한국에서 창안된 장르는 단 하나도 없으며, 그 모두가 중국에서 수입된 것들이다. 한국한문학의 장르 중 한국에서 창안된 것은 비정통 한문학 장르에 속하는 몽유록, 천군소설, 야담 정도를 꼽을 수 있을 뿐이다.

또한, 저자에 따르면 정통 한문학의 장르들, 비정통 한문학의 장르들, 사대부 시조, 사대부 가사, 경기체가 등은 계급 관계에서 보면 지배계급의 장르이고, 젠더 관계에서 보면 남성 사대부의 장르이다. 따라서 이들 장르는 장르체계의 위계에서 상위부 내지 중심부를 점하고, 규방가사·애정가사·기녀시조·사설시조·잡가·가문소설·영웅소설·판소리(판소리계소설) 등은 하위부 내지 주변부를 구성한다. 또한 장르체계의 상위부 내지 중심부를 점하는 장르들 가운데서도 정통 한문학의 장르들이 가장 높은 위계를 차지하면서 중심에 있다면, 비정통 한문학 장르들이 그 다음의 위계에, 그리고 경기체가, 사대부 시조, 사대부 가사 등 국문 장르들이 그 다음의 위계를 차지하면서 상대적으로 주변부를 구성한다.

장르체계의 하위부 내지 주변부를 점하는 장르들은 모두 국문 장르들로서 가문소설처럼 상층에서 향유되거나 규방가사처럼 양반 부녀자들에 의해 창작 향유된 것도 있지만 그 나머지 장르들은 대체로 중간계급 이하의 인물들이 그 담당층인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 주변부 장르들은 그 장르의 성격 자체가 유교와 총체적 관련을 보여주는 경우는 하나도 없고, 단지 내용상으로만 유교와 일정한 관련을 맺고 있을 뿐이다. 그 중 애정가사, 기녀시조, 사설시조, 잡가 등은 유교와 별 관련이 없는 장르들이고, 영웅소설과 가문소설은 일정하게 유교와 관련이 있는 장르들이며, 규방가사와 판소리(판소리계소설)는 유교와 관련이 없기도 하고 있기도 한 장르들이다.

이처럼 유교사상과 문학장르의 안과 밖, 시대와 사회계층의 위와 아래 등을 종횡무진하면서 저자는 유교와 한국문학 장르의 관련성에 대한 탐구를 한국문학 장르론 및 한국 유교의 특질에 대한 새로운 문제제기와 연결시킨다. 곧 이 책에서 유교와 한국문학의 장르는 이미 알려진 상투적인 내용이 아니라, 유교를 시금석으로 저자가 새롭게 조명한 한국문학의 장르요, 또한 한국문학 장르를 시금석으로 저자가 새롭게 조명한 유교로서 읽히는 것이다.

다만, 서평자의 의무로서 이 책의 문제점 중 하나를 지적하자면, 중국을 곧 보편성으로 간주하는 저자의 논리가 빠지기 쉬운 편협한 민족주의적 논리이다. 유교가 비록 중국에서 형성된 사상이며 유교와 관련된 문학 장르들이 또한 그 대부분이 중국에서 발생한 것이라 하더라도 유교적 한문학 장르들을 곧 중국한문학의 장르들이라고 하면서 그 수입과 창안 여부를 따지는 것은 현대 중국의 일부 편협한 민족주의적 논리와 어떻게 다른 것인가. 서양의 전근대와 달리 동아시아의 전근대가 비록 정치적 패권과 문화적 패권이 중국 지역을 중심으로 장기간 지속돼 왔다하더라도 그 중국은 단일한 중국으로 간주될 수 없다.

가까이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청나라, 명나라, 원나라만 따지더라도 이 중 漢族이 세운 나라는 명나라뿐이다. 당연히 서양의 전근대 라틴어 문학을 이탈리아문학은 말할 것도 없고 로마문학으로도 환원시킬 수 없는 것처럼 동아시아의 전근대 한문학을 중국한문학으로 환원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동아시아 한문학과 중국한문학을 논리적으로 구분하는 바탕 위에 설 때에만 중국한문학도 제대로 구명될 수 있지 않을까. 곧 보편성으로서의 동아시아 한문학과 특수성으로서의 중국한문학을 구분하는 논리 위에서 한국한문학의 보편성과 특수성도 제대로 구명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윤재민 / 고려대·한문학

필자는 고려대에서 ‘조선후기 중인층 한문학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선후기 중인층 한문학의 연구』 등의 저서와 『18세기 조선인물지 병세재언록』(공역) 등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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