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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불평등의 그림자
새로운 불평등의 그림자
  • 교수신문
  • 승인 2001.1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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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 세평]
사람이 사는 곳에 불평등이 있기 마련이다. 부리는 사람과 부림을 당하는 사람사이에 있는 불평등, 돈을 많이 가진 자와 적게 가진 자 사이의 불평등, 잘 사는 지역과 못사는 지역간의 불평등, 남녀간의 불평등 등 불평등 사례는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그런데 이러한 불평등 현상 중 문제가 되는 경우는 그것이 단순히 개인차원의 능력이나 노력여하에 따라 발생한 것이 아니라 개인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왜곡된 사회구조 때문에 불평등이 발생하는 경우이다.

사회적 불평등이 부당한 과정에서 생겨난 것일 뿐 아니라 그 불평등상태가 지속될 때 불만과 박탈감을 느끼게 되며 이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는 것이다. 견줌의 대상이 되는 남들이 자기와 똑같은 출발점에서 정직하게 그리고 열심히 뛰어서 자기보다 먼저 들어섰다고 믿으면 상대적인 불만은 가지지 않을 것이다. 출발점이 같았음을 의심하고, 뛰는 과정에서 정직하지 않았음을 느끼고, 또 늦게 들어 왔으나 부당하게 많은 보상을 받았다고 느낄 때 상대적 불만이나 박탈감을 커지게 된다.

지역발전론에서 경제적 불평등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터널효과(tunnel effect)란 것이 있다. 근대화의 초기 단계에서 사회의 모든 구성원, 모든 지역이 동시에 성장의 과실을 맛볼 수 없다. 즉 제한된 사람, 한정된 지역이 우선적으로 빈곤이라는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게 되며, 나머지 집단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신들도 그 어두운 터널을 통과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기대감으로 생활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빈곤이라는 터널을 통과하지 못한 채 뒤쳐지기만 할 때 상대적 박탈감이 증폭되고 그로 인해 폭동이나 사회적 저항과 같은 ‘개발의 참사’가 빚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12월 5일 통계청은 ‘도시근로자가구의 소득 10분위별 가계수지’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 3·4 분기 중 상위 10%의 월평균 소득은 약 700만원으로 하위 10%의 75만원과 비교해 9배 정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8.5배보다 소득격차가 더 심해진 것이다.

소득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수로 흔히 사용하는 것이 지니계수인데, 이 계수치로 볼 때 우리나라의 소득 불평등도는 1980년대 초반에 악화됐다가 1990년대 들어 개선됐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다시 악화됐으며 1999년에는 최악의 상태로까지 치달았다. 외환위기 이후에 조금씩 개선되고 있었으나 외환위기 이전의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채 다시 소득 불평등이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경제위기 이후 급격한 경기침체로 서민층의 노동기회가 상대적으로 축소됐으며 또한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제고되면서 정규직의 비정규직 전환을 통한 고용불안과 후생복지의 축소 등이 이들의 실질임금을 축소시킨 것이란 분석이 있다. 현상적으로 볼 때 설득력 있는 지적이기는 하나 나는 보다 근본적인 측면에서 원인을 찾고 싶다.

지식정보화사회의 도래에 따른 새로운 경제적 불평등 심화의 초기단계라 보는 입장이 그것이다. 산업시대의 경제적 불평등이 해소되지 못한 상태에서 다시 지식정보화시대의 도래로 또 다른 경제적 불평등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징후를 느끼는 것이다. 지식정보화 사회로 본격 진입한 미국의 경우 최근 고소득층과 저소득층간의 소득격차가 계속 증대되고 있는 바, 이에 대해 미국 상무부는 인터넷 등 정보활용 빈도 차이에 따라 소득격차가 확대됐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이미 가속화되고 있는 ‘경제의 세계화’ 현상속에서 우리나라도 지식기반사회로 전환하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으며 그에 따른 새로운 경제적 불평등 현상이 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정보격차의 심화로 소외계층인 이른바 ‘디지털 빈민’이 출현할 가능성이 예견되고 있으며 돈되는 정보가 일부 계층에 편중됨으로써 ‘신흥 귀족층’도 생겨나고 있다. 벤처 열풍이 불면서 벤처 귀족이 등장하고, 고도의 정보망을 갖추고 주식시장을 공략하여 성공한 ‘스톡 리치족’이 등장하는 등 부의 분배구조를 바꾸고 있으며 신 상류층으로 떠오른 집단이 자신들의 영역을 공고히 하기 위해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자신들만의 폐쇄사회를 구축할 수 있다는 우려조차 나오고 있는 것이다.

산업사회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가난이란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지 못한 채 터널 입구에서 웅성대는 터널효과가 디지털사회로 진입하면서 또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못 심각한 상황이다. 조기에 치유되지 못하면 ‘디지털 참사’가 우려되는 부분이다. 국민의 정부로서도 정보격차 해소를 국정의 주요 과제로 채택하고 있어 다행스런 일이지만, 부당한 과정에 의해 계층간·지역간의 새로운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지 않도록 하는 방향에서의 정책방안을 마련하는 데 모든 지혜를 모아가야 할 시점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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