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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자율화 위해 민주적 사학법 개정 절실”
“대학 자율화 위해 민주적 사학법 개정 절실”
  • 김봉억 기자
  • 승인 2008.04.14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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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좌담]자율의 시대, 우리대학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6개 교수단체 대표,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 진단
새 정부 출범이후 처음으로 교수단체 대표들이 머리를 맞댔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지 두 달 가까이 지났다. 이들은 대학 자율화를 강조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고등교육정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자율의 시대’를 맞이하는 교수사회의 응답 또한 긴장감이 묻어난다. ‘철밥통론’으로 비유되는 교수사회와 대학에 대한 불신부터 극복할 수 있도록 교수사회의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자성부터 진보든, 보수든 ‘말’만 늘어놓는
개혁론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자는 제안도 나왔다. 그러나 정부와 언론으로부터 개혁 대상으로 지목된 ‘교수’들이 대학교육의 개혁 주체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새 정부 정책에 대한 전망은 비판의 강도가 더 하다.
4·9 총선 이후 새 정부의 첫 번째 과제로 사학법 재개정과 국립대 법인화 추진이 예상되는 가운데 교수단체 대표들은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있을까.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학의 자율화는 헛구호”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대학의 자율은 과연, 누구를 위한 자율인가. 교수를 비롯한 대학구성원 스스로 만들어가는 자율이 아니라 사학재단의 경영진에게 자율 확대가 강화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그래서 민주적인 사학법 개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학생선발권의 대학자율화 문제는 이견이 팽팽했다. 다소 문제가 생기더라도 자유롭게 학생을 선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과 서열화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입시과열에 따른 폐해가 크기 때문에
국가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많았다. 6개 교수단체 대표들이 모여 세 시간이 넘게 열띤 토론을 벌였다.

● 일시·장소 : 2008년 4월 5일 오전 11시, 교수신문사 

● 사회 : 이영수 교수신문 발행인(경기대 명예교수, 교육학) 

● 참석자 : 김한성 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연세대 법학), 서유석 학술단체협의회 상임대표(호원대 철학),
이철세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교권위원장(배재대 명예교수, 물리학), 정용하 전국국립대학교수회연합회 상임회장(부산대 정치외교학), 조돈문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상임의장(가톨릭대 사회학),
하우영 한국비정규직교수노동조합 위원장(전남대 강사, 법학) 

● 진행·정리 :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진정한 대학 자율화의 모습은


이영수 : 앞으로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변화하는 시기에 우리 대학사회의 고민이 무엇이고, 교수사회가 심각하게 앓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진단해 보면 좋을 것 같고 올바른 변화방향을 제안하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이명박 정부가 강조하고 있는 대학의 자율이 어디까지 와 있고 진정한 대학 자율화의 모습은 무엇인지 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먼저 논의했으면 합니다.

정용하 : 지난 4일 대통령과 대학총장들의 청와대 간담회에서 발표된 자율화 조치들은 교육철학이나 근본적인 문제인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전봇대’ 뽑는 식으로 임시방편적인 성격이 강했습니다. 의미 있는 조치도 있었는데요. 서울대에만 있었던 부총장제도를 다른 국립대에도 둘 수 있게 했고 학·석사 통합과정 허용도 대학원 연구인력 확보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연구비 관리 개선도 교수들에게는 연구 환경 개선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학생모집단위를 학과단위로 뽑을 수 있게 하고 교원의 소속도 연구소나 산학협력단 등 자유롭게 하는 것은 사실 지금도 하고 있거든요. 마치 새롭게 추진하는 것인 양 얘기하고 있는데 법적으로 정리한다는 차원인 것 같습니다.

서유석 : 한 예로 9월에도 학기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마치 대학 자율의 큰 내용인양 발표가 됐지만 언론에서도 이게 무슨 현실적으로 의미가 있느냐, 대학 자율화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지적을 하고 있더군요. 이명박 정부가 말하는 ‘대학운영 자율화’의 핵심은 결국 국립대의 경우는 법인화 추진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고, 사립대의 경우에는 대학구성원의 자율이 아닌 사학재단에 자율을 주겠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손병두 대교협 회장이 취임 일성으로 새 국회가 열리면 제일 먼저 현재 사학재단의 자율을 구속하고 있는 사학법 ‘독소조항’부터 개정하겠다고 나서고 있지 않습니까.


이철세 : 과거 어느 정권 때도 대학자율화를 외치지 않은 정권이 없고, 교육부도 ‘대학자율화를 보장하고 있다’, ‘자율화시키겠다’ 하면서 근본적인 조치는 취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대학이 자율권을 행사할 만한 기본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민주적이고 투명한 의사결정구조도 없이 자율화하겠다고 하면 사학 경영자의 권한만 확대시킬 뿐이고 정작 대학은 더 문제점이 생길 수 있고 오히려 대학 내부의 자율성은 위축될 수 있습니다. 대학 자율성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를 확보해야 하고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사학법 개정입니다.

조돈문 : 이명박 정부가 강조하는 대학 자율성은 실제 대학구성원들이 주체가 돼 자율적으로 대학을 운영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저는 대학 자율성의 문제도 모든 대학에 획일적으로 부여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를 대변하는 조직이 대학의 운영에 실질적인 발언권을 행사하는 민주적인 대학에 우선적으로 자율성을 부여하고 교수뿐만 아니라 직원, 학생, 졸업생, 지역사회도 대학의 지배구조에 참여해 대학을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때 대학 자율화를 보장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학 경영자에게 전권을 부여하는 것밖에 안 됩니다.

이영수 : 자율의 문제를 조건에 따라 누가 주고 안주고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나요.

조돈문 :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할 문제에도 개입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더 문제일 수 있다고 보는 겁니다. 국립대 법인화도 마찬가지죠.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각 대학별로 굉장한 편차가 있지만 비리나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사학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문제를 전혀 바로잡지 않은 상황에서 대학 자율성 확대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예컨대 모집단위를 자율화하고 학기제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할 때 대학의 구성원들이 발언권을 갖고 자체적으로 협의해서 결정할 수 있는 조건이라면 바람직하다고 보는 거죠. 지금은 이런 조건이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겁니다. 

이철세 : 학생모집단위 자율화나 보직교수 임기를 없앤다는 것은 자율이 아니고, 그냥 포기라고 봅니다. 지금 교과부가 간섭한다고 어느 대학이 말을 듣겠습니까. 표면적으로는 자율화 시켜놓고, 교육부가 자율은 다 줬다고 하면서 과거에는 입학정원으로, 지금은 돈으로 경쟁시키는 것 아닙니까. 학부제도 책임지는 사람 없이 없어지게 됐지만 학부제 처음 도입할 때 학부제 계획 잘 짰다고 해서 돈 준 것 아닙니까. 돈으로 경쟁시키는 방법은 시정돼야 합니다.

교수사회 주체성과 대학 자율

김한성 : 이명박 대통령 대선공약이나 대통령 업무보고, 대학총장 간담회를 보면서 느낀 것은 이 대통령은 아직도 대학을 官治할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대학의 자치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교수의 자치를 기본으로 하는 것이고, 교수들이 교육, 연구, 학사, 재정 전반에 걸쳐 자율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껏 정부와 사학재단이 행사해 왔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대학의 자치가 없었습니다. 사실상 부정당한 상태였지요. 이걸 회복하자는 겁니다. 우리가 특별히 뭘 달라는 게 아닙니다. 현재 사학법에 구성하도록 돼 있는 대학평의원회는 거의 유명무실한 상황입니다. 이렇게 교수사회에 자치권을 주지 않으면서 학생모집단위를 자율화하겠다는 것은 본질이 아니지요. 이명박 정부가 대학에 자율권을 주려면 교수사회에 대한 주체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보세요. 대운하 반대 교수들을 사찰하고  집회 시위를 강력하게 단속하고, 국가보안법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변함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이래서는 대학의 자치도 없고 학문발전도 요원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말하는 자율은 헛구호라고 생각합니다.

정용하 : 그런데 국립대를 보면, 교수(협의)회나 대학평의원회가 나름대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국립대의 교수회는 대학운영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사립대와는 조금 차이가 있지요.

이영수 : 일부 사학재단의 부도덕성이 큰 문제가 된 것은 사실입니다. 총장을 직접 선출하는 것도 굉장히 영향력이 큰데요. 사립대도 교수들이 총장을 직접 선출하는 대학은 비교적 자유롭지 않습니까.

서유석 : 사학법은 교수들이 학교운영에 관여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렸어요. 지난해 7월에 사학법이 개악되면서 교수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대학평의원회가 심의기구에서 자문기구 정도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대학평의원회에 재단이사와 감사 추천권이 있었는데 개악이 되면서 별도의 이사추천위원회를 또 만들었어요. 개악된 사학법에 의하면 교수들이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것조차도 정부나 대교협은 독소조항이라고 하면서 손병두 대교협 회장이 나서서 가장 먼저 없애겠다고 했습니다. 보수언론은 이것이 마치 대학 자율화의 중심인양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영수 : 새 국회가 열려 사학법이 개정된다면 더 개악될 가능성이 있는 것 같은데요.

서유석 : 사실 ‘사찰’문제도 많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언론인 성향조사에 이어 공안당국이 대운하 반대 교수들과 대학 앞 서점을 사찰하는 시대착오적 행태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라면 교과부의 추진 계획 중 하나로 거론되는 교육과정 개편, 특히 교과서 개편의 방향도 걱정됩니다. 최근 뉴라이트계열 학자들이 이른바 대안교과서를 내놓자 보수정치권에서 이를 환영하고 심지어 전경련 같은 곳에서는 ‘대안교과서’도 불충분하다고 나서고 있는 마당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이런 흐름에 편승할 경우 대학과 학문의 자율이 크게 침해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김한성 : 대학자치의 궁극적인 목표는 학문발전이거든요. 사학법 재개정 추진이나 국립대 법인화, 대학구조조정, 교수 사찰 이런 것을 보면, 앞으로 학문발전에 대단히 암울한 시기가 올 것 같습니다.

입시정책 어떻게 볼 것인가

이영수 : 대학입시 자율화 계획에 따르면 2012년 이후에 완전히 대학자율에 맡긴다고 하는데, 그동안 교수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철세 :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을 판단할 만한 확실한 정책은 아직 없다고 봅니다. 인수위에서 나온 5대 핵심정책을 보면, 고교다양화 300프로젝트, 영어교육 강화, 3단계 대입자율화, 맞춤형 장학체계를 구축 등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느낀 것은 하나의 대증요법이지 기본적인 체력을 키우는 정책은 아니라는 겁니다. 가장 기본적인 인성교육부터 시작해야 하는데도 이명박 정부는 학교를 마치 학원처럼 취급하고 있습니다. 입시문제는 내신위주로 하면 되지 않을까요. 고교 교육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해서 내신 성적의 신뢰성을 키우고 대학이 내신 성적을 중심으로 학생을 뽑으면 다양한 고교 활동이 가능할 수 있겠지요. 다양성도 확보해야 합니다. 내신 성적을 비롯해 수능과 다양한 특별전형으로 뽑을 수 있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고 봅니다. 기본을 충실히 하면서도 다양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조돈문 : 이명박 정부의 문제는 정책 목표와 정책 수단이 불일치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후보 당시 문제제기는 타당했고 정책 목표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공교육중심으로 학교교육의 질을 향상한다, 사교육비 부담을 줄인다, 교육을 통한 가난의 대물림을 끊겠다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정책 목표입니다. 그런데 3단계 입시자율화라든가, 고교다양화 같은 이런 것들은 정책의 목표를 달성하는 게 아니라 정반대로 간다는 거죠. 대학도 이제 이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현재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학정책의 방향을 보면 시장의 논리를 강화하고 대학이 인격 교육을 할 수 없고, 기초학문들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아주 왜곡된 대학의 모습이 예상됩니다. 기초가 되는 학문연구는 불가능하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들고요. 기초학문자리에 응용학문이 들어가고 취업학원화 되는 거죠. 이걸 대학 자율로 하도록 맡기면 대학들도 몇 개의 대학을 제외하고는 취업학원화 식으로 하려들겠죠. 모집단위나 학과 신설, 교과과정, 학제를 자율적으로 재편할 수 있게 한다면 이젠 대학들이 취업에 유리한 몇 개 학과만으로 학생을 뽑으려고 할 겁니다.

학생선발권 어디까지 가능한가

이영수 : 대학의 입시정책이 고교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큰데요. 학생선발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대학의 입시정책이 고교교육에 미치는 영향이 큰데요. 학생선발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서유석 : 교육문제가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쉽게 답할 수는 없지만 큰 흐름은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교육은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고 가난의 대물림을 차단하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다소 부작용이 있었습니다만, 그 동안 실시돼 온 3불정책, 고교평준화, 내신강조, 농어촌특별전형을 비롯한 지역균형선발방법 등은 모두 이런 취지에 맞습니다. 따라서 이 골격을 유지하면서 문제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수도권 대학과 사립대학들이 이런 정책을 싫어한다는 겁니다. 게다가 이명박정부가 대학입시 자율화, 사학운영의 자율화를 기본 방침으로 내걸고 있어서 이런 전향적 기조가 후퇴할까 우려됩니다.

정용하 : 지금은 자율화시대, 세계화시대 하면서 각 대학이 나름 역할을 하고 있는데 비록 입학부정 등 여러 문제가 예상된다손 치더라도 일단 대학에 돌려주고 그 과정에서 문제를 치유하고 대안을 만들어 가야지 지금 문제가 있으니까 자율권을 주지 못한다 하는 것도 역시 국가주의적 발상이 아닌가 봅니다.

이영수 : 학생선발을 전적으로 대학에 맡겨 문제가 생긴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도 고려해야 합니다. 35년 전에 평준화를 도입한 배경과 지금은 사정이 다른데요. 고교 평준화를 우리가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도 논의가 필요합니다.

김한성 : 우리나라는 대학입시문제도 서열화 경쟁으로 폐해가 너무 크기 때문에 공공복지측면에서 국가의 개입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입시를 각 대학에 자율화해 준다면 소위 명문대학에 가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가속화 될 것입니다. 사교육비 증가는 물론 우리사회의 가장 큰 병폐인 대학서열화, 패거리문화가 더 공고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학 입시의 전면적인 자율화는 위험요소가 큽니다. 이런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서유석 : 우리 사회의 고질병 중 하나가 학연인데, 공무원 사회에는 이미 고교 학연이 사라졌습니다. 50대 초반 이하는 다 고교 평준화 세대거든요. 그런데 다시 자율형사립고를 포함해 왜곡된 형태의 특목고를 대거 확대할 경우 과거의 병폐가 다시 살아날 수도 있습니다.

정용하 : 대학에 일정 정도의 자율성을 부여해야 다양한 선발전형을 할 수 있습니다. 공교육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공교육 그 자체는 유지시켜 나가되 대학도 국·공립대와 사립대의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학마다 자유로운 학생선발권을 허용해야 나름대로 사회적 수요를 충족시켜 줄 수 있습니다. 자율에 따른 책임을 강화하면 각자 자기 역할을 더 열심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한성 : 그런데 현재와 같은 대학입시제도가 더 격화되는 시스템의 변화는 우리나라의 망국적인 교육문제를 절대 해결하지 못합니다.

조돈문 : 지금도 대학의 입시제도 운영 자율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대학의 자율도 무제한적 자율이 아니라 제한된 자율성일 수밖에 없습니다. 바람직한 가이드라인이 있어야 합니다. 예컨대 지역할당제도같은 정책적 개입은 필요합니다. 현행 입시제도에 있는 규칙을 무조건 규제로 보고 완화시켜 대학에 무제한적 자율성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최소한 3불 제도나 고교 평준화정책 등의 기본적인 전제는 지켜져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부분은 규제가 아니라 사회적 공공성을 위한 정책으로 봐야 합니다.

이철세 : 과거에 대학이 자유롭게 학생을 뽑아오다가 정부 통제가 시작된 것은 뭔가 룰을 넘어서기 때문에 국가가 통제에 나선 것입니다. 바람직한 측면도 있습니다. 한나라당은 고교 평준화제도에 대해 계속 비판을 해왔습니다만 그동안 하향평준화보다는 상향평준화된 학교가 훨씬 더 많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과거에 서울대에 학생을 입학시켰던 고교가 30~40개 정도밖에 안됐는데 지금은 700~800개의 고교가 서울대에 학생을 입학시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상향평준화된 고교가 많은 것인데 상향됐다고는 평가하지 않고, 일부 명문고 출신들이 하향 평준화됐다고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제대로 봐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특목고를 만들어 평준화를 깨는 것은 염려스럽습니다.

 
이영수 : 우리 대학은 어느 정도 경쟁을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따져보고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근거가 돼야 합니다.

정용하 : 더 중요한 문제는 고등교육재정 확보 문제입니다. 얼마나 대학재정을 국가가 확보해서 증가시켜 대학에 그 정책을 쓸 수 있게끔 만들어 주는가가 중요합니다. 적은 돈으로 경쟁을 시키면 문제가 되겠지만 고등교육예산을 증액시켜서 실질적으로 대학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가 학진과 과학재단 통합해 뭔가 효율을 높인다고 하는데, 어떻게 통합만하면 효율이 높아지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학진은 기초과학이나 인문학 쪽에 중점을 두고 있고 과학재단은 자연과학 중심인데 이 부분을 특화시켜 나가야 경쟁력을 높일 수 있지 않나요. 실용과 효율을 강조하니까 내용도 충분히 점검하지 않고 통합만 하려고 밀어붙이는 것 같습니다.

서유석 : 정부당국과 대학구성원 모두가 아직도 대학교육의 공공성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고 봅니다. 대선후보시절에는 모든 출마자가 교육재정을 크게 확대하겠다고 공언하고는 막상 당선되고 나면 실행을 안 합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집니다. 교과부가 얼마전 각 시·도교육청에 10%씩 예산을 절감하는 계획서를 세워서 올리라고 했는데 이것만 보아도 교육지출을 늘리기는커녕 줄이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한편, 대학과 대학 구성원도 교육의 공공성을 확보하고 교육을 혁신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일본은 이미 ‘대학전입(大學全入, 대학희망자수와 입학정원이 일치)시대’가 된지 오랩니다. 불가피하게 많은 대학이 문을 닫았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요 몇 년은 마지막 베이비붐 세대가 대학에 입학하고 있지만  2012년을 넘어서면 어쩔 수 없이 대학의 4분의 1 정도가 문을 닫아야 합니다. 따라서 대학과 대학구성원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발상보다는 의미 있는 생존전략을 찾는 가운데 대학교육을 정상화하는 노력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자율을 확대하는 국립대 법인화인가

이영수 : 국립대 법인화 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서울대, 부산대, 경북대 등 거점국립대는 법인화로 전환할만하다는 얘기도 있거든요.

정용하 : 그런 추측들이 공식적으로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실제로 보면 부산대나 경북대도 규모는 크지만 내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부는 올해 6월에 국립대 법인화법을 제정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벌써 4월 중순인데 일정상 작년에 발의된 국립대 법인화법 내용을 보완할 시간이 없습니다. 지난해 발의된 법에 준해서 다시 제정을 시도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지난달 28일 회의를 했는데 현재의 법인화법으로 정부가 추진하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영수 : 국립대 법인화가 고등교육에 미칠 긍정적인 영향은 없다고 보십니까. 고등교육 전체로 보면 사립대에도 골고루 재정지원을 할 수 있는 대안으로 보기도 하는데요.

정용하 : 적은 파이를 가지고 나눠 먹자는 건데요. 우리는 파이를 늘리자는 겁니다. 국가에서 대학 재정지원을 줄이려고 하는데, 사립대도 제대로 지원을 못 받고 있으니까 국립대만 배타적으로 받아간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국가에서 고등교육재정을 늘려서 사립대에도 배분할 수 있게끔 조치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조돈문 : 미국도 고등교육재정에서 정부가 담당하는 비율이 60% 수준입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 봤을 때 사립대가 너무 많고, 정부가 고등교육에 대한 지원이 굉장히 적은 게 사실입니다. 고등교육재정을 대폭 확충해야 합니다.

이영수 : 교육재정을 늘리는 방법이 세금을 더 늘리는 방법밖에 없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서유석 : 교육복지 실현을 위해 필요하면 세금부담을 늘려야 합니다. 유럽 선진국의 경우, 대학은 대부분 국공립이고 학비는 거의 무료입니다. 물론 최근 들어 학비를 조금씩 받고 또 대학 간에도 미국식 경쟁 체제를 일부 도입하고 있읍니다만 기본적으로는 대학의 공적 기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유럽은 국민 세금 부담이 높습니다. 국립대 법인화는 기본적으로 국립대의 사립화입니다. 대학을 시장 원리에 맡겨 경쟁시키자는 거죠. 장점도 있겠지만 대학 교육의 공공성은 파괴됩니다. 물론 법인화 반대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시선이 좋지 않습니다. 따라서 국립대를 법인화할 경우 어떤 재앙이 초래되는지 국민을 설득하고 여론의 동의를 얻어내는 일이 중요합니다.

김한성 : 저도 국립대 법인화를 반대합니다. 국립대 법인화는 사립화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사립대의 행태를 보아서는 연봉을 깎고 교수 퇴출을 늘리는 등 신분불안이 가중 될 것입니다.

이영수 : 이렇게 교수들이 반대하고 있고 국립대의 공공 기능을 고려하면 좀 더 신중해야 할 텐데 정부가 구태여 추진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정용하 :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가니까 국가에서는 재정 부담을 하기 싫고 계속 부담을 늘려가는 것이니까 국립대 법인화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하우영 : 그런데 이 문제와 관련해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국민들의 여론과 정치권의 판단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여론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국민들이 우리 대학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대학에 무엇을 요구하고 있고,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지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합니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지지와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투명한 대학운영이 절실합니다.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회계부분의 투명성을 먼저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시간 강사, 교원지위 회복해야”

이영수 : 학문후속세대 양성과 관련해 시간강사의 교원지위 확보 문제는 교수단체가 적극 연대에 나서야 할 사안으로 보이는데요.

조돈문 : 국회에 제출된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통과돼 교원으로서의 법적지위를 회복하는 게 우선돼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는 입만 열면 교육의 질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대학의 재정지원을 취업률에 연계시킬 게 아니라 교육의 질에 연계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요. 교육의 질은 교수1인당 학생 수가 핵심입니다. 현재 전임교원 확보율이 60% 수준에 불과한데 100% 수준으로 확충해야 합니다. 교원1인당 학생 수를 보면 OECD의 두 배 수준 입니다. 전임교원 확보율을 100%로 확충하면 대학교육의 절반을 담당하는 비정규교수 문제는 해소가 되는 거죠. 한꺼번에 해결하기는 힘들겠지만 대학에 재정지원을 할 때 전임교원 확보율을 연계시켜야 합니다. 결국 교육의 질을 담보하는 주요한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또, 학진이 엉뚱한데 돈을 쓰고 있는데, BK21사업이 전형적인 재원의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연구는 개별 연구자들이 합니다. 그리고 BK21사업의 틀에서 이뤄지는 개별 연구들을 보면 저질의 연구들이 양적으로 양산되고 있습니다. 이런 수준이라면 개별 학문후속세대인 비정규교수에게 연구단위로 지원하고 최소한의 연구여건 마련을 위해 1년에 얼마라든가 이런 식으로 정부가 생활비를 보장하는 정책을 병행하면 비정규교수문제도 해결하고 대학교육의 질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이영수 : 학문후속세대가 몇 명 정도 됩니까.

하우영 : 우선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지만 4년 전에 이주호 의원이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준비하면서 조사한 데이터에 따르면 5만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7~8만 명에 이른다고 저희들은 보고 있습니다. 오히려 더 늘었습니다. 이렇게 늘 수밖에 없는 것은 국가의 노동정책과 관련이 있는데 말하자면 시간강사들을 단시간 근로자로 두고, 임시직 보호법의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시간을 많이 줄여 버렸습니다. 어떤 대학의 경우에는 단시간 근로자로서 석사학위자가 2년 이상 근무하면 정규직화할 수 있다는 규정을 피하기 위해 본부가 14시간 이상은 강의를 맡기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대학 내에 시간강사제도를 온전히 존재하고 있는데 정규직 교수들이 오히려 이런 제도를 존속시키고 있다고 봅니다. 시간강사 제도를 타파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요인이 정규직 교수라는 겁니다. 절실하게 느낍니다. 학내에 교수들과 시간강사들 사이의 불합리한 제도를 언제까지 방치해 두면서 대학이 과연 이 사회의 상아탑이니 뭐니 그런 선진문화를 만들어 내는 산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영수 : 올해 교수단체 연대가 해야 할 첫 번째로 학문후속세대에 대한 지위향상을 위한 연대의 공동목표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조돈문: 이주호 법안만 보더라도 교원지위를 회복시켜 준다고 정부가 재정지원을 하거든요. 그러다보면 정부가 책임 있게 담보한다고 하면 가능한 일인데 한나라당 자신이 발의해 놓고, 자신들이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영수 : 교수단체의 활동이 신뢰를 얻고 잘 되면 대학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오랜 시간 논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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