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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와인’ 삼매경에 빠지는 비결들
‘음악의 와인’ 삼매경에 빠지는 비결들
  • 이남재 / 한국교원대·음악학
  • 승인 2008.04.1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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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길라잡이_ 오페라 감상과 이해

최근 와인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와인 관련 서적들이 속속 등장하고 와인 소비 또한 증가하는 추세다. 그러나 와인이 언젠가 소주나 맥주를 대체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와인을 즐기는 것도 각자의 취향에 따라 즐길 수 있는 나름대로의 멋이라고 인정하는 분위기인 것만은 사실이다. 음악의 와인은 오페라다. 오페라가 가요나 교향곡을 밀어내는 일은 없겠지만, 실제 오페라 공연을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라 트라비아타」나 「나비 부인」같은 오페라 제목 정도는 귀에 익숙할 만큼 이미 우리 가까이에 있다.

오페라 감상에 관해 쓰기 위해 한국학을 전공하는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평소 문화에 관심이 많은 친구이기에 뭔가 심오한 화두라도 하나 던져주지 않을까하는 은근히 기대를 품어보았다. 그러나 왜 우리가 오페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느냐는 추궁만 당하고 말았다. 지나간 옛 시절 지구 반대쪽에 있는 나라들에서 왕과 귀족들이 즐겼던 호사스런 여흥을 이제 와서 왜 이곳에 되살려야 하느냐는 따가운 질책 말미에 그나마 몇몇 유명한 아리아들을 듣는 것 정도는 이해한다고 해 준 것 만해도 고맙다는 느낌이 들 지경이었다. 필자로서는 이 글의 방향을 “이렇듯 많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오페라를 보러 가는 것일까”하는 것으로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오페라 감상의 전제 조건은 먼저 살아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고, 그 위에 눈과 귀가 멀쩡하다는 조건이 덧붙여진다. 다시 말해서 오페라를 보는 것은 내가 살아 있고,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재확인하는 기쁨이 깔려 있다. 그중에서도 오페라만의 고유 영역은 노래하는 즐거움이 될 것이다. 노래 부르는 자체가 현실에서 벗어나는 일일진대, 오페라를 경험한다는 것이 일상과는 다른 ‘놀이’의 세계에 들어서는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그러면 우리는 오페라를 통해 어떤 세계로 접어드는 것일까. 연구자들은 오페라의 뿌리를 1470년대 피렌체에서 공연된 안젤로 폴리치아노의 「오르페오」에 둔다. 피치노의 플라톤 아카데미의 일원이었던 폴리치아노의 작품은 신플라톤주의적이라고들 한다. 오페라를 감상하려면 신플라톤주의를 알아야만 한다면 다들 고개를 내젓고 오페라 극장들은 일찌감치 문을 닫았겠지만, 신플라톤주의의 모든 존재들은 일자로부터 유출됐기에 서로 연계돼 있다는 우주관이, 오페라의 노래들이 유발하는 깊은 감동의 근거가 되는 공감 현상을 설명하는 하나의 담론일 수 있다는 점만은 기억해두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음악 자체의 질서를 중시했던 16세기 르네상스 음악이 가사보다 성부 진행에 비중을 둔 반면, 오페라를 비롯한 17세기의 새로운 음악관 을 대표하는 몬테베르디는 가사의 내용을 음악으로 표출하는데 중점을 두는 정반대의 입장을 취했다. 중세의 수학적 음악관으로부터 수사학적 음악관으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이러한 태도 변화는 결국 특정 감정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느냐 하는 소위 음악 수사학적인 문제로 귀결된다. 특정 감정을 어떻게 음악으로 표상하는가 하는 이러한 관심은 결국 18세기의 ‘번호 붙은 오페라’로 고착됐다.

 감정의 변화가 단순한 병치로만 이뤄졌던 이와 같은 ‘번호 오페라’의 부자연스러운 형태는 프랑스 혁명 이전의 계몽주의 시대에는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 이후 보다 자연스러운 감정 변화를 표현할 수 있는 형태의 추구는 마침내 19세기 오페라의 다양한 요소들로 구성된 ‘장면’ 위주의 극적 흐름으로 이어졌으며, 궁극적으로 바그너와 드뷔시의 오페라에서처럼 뚜렷한 매듭 없이 한없이 이어지는 천의무봉한 형태에 이르게 됐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이러한 외적 변모를 거치면서도 여전히 변치 않는 오페라의 본질은 무엇일까.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도록 한다는 데 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같은 처지에 있다면 누구나 그러한 심정이 될 수밖에 없는 인간 내면의 원형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결국 오페라의 궁극적인 존재이유는 이처럼 일상에서는 좀처럼 의식에 떠오르지 않는 인간 내면을 의식의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한다는 데 있다. 어쩔 도리가 없는 절박한 궁지에서 드러나게 마련인 인간의 이러한 내면 원형은 오페라에서는 주인공의 아리아를 통해 표출된다. 이처럼 주인공의 내면을 담은 아리아가 오페라의 보석이라면, 무대 장치와 의상은 소중한 보석을 둘러싸고 이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반지와도 같다. 결국 오페라는 내적인 느낌과 외적인 여건의 관계에 대한 깊은 숙고를 자아내어 나 자신과 나를 둘러싼 세계와의 갈등에서 빚어지는 우리의 내적 반응을 생생하게 보여주기에 우리가 그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반응은 우리 내면 밑바닥에 깔린 무의식과 구별할 수 없어 존재의 밑바닥이 휘져어진 우리들은 스스로의 본모습에 직면하는 소중한 경험을 맛보게 된다.

이와 같은 경험을 가능케 하는 것은 가사인가 음악인가. 이에 대한 역사적 판결은 변함없다. 17세기 오페라 공연에서는 관객들에게 대본을 나누어주는 것이 관례였는데, 여기에 대본가는 밝혀져 있지만 작곡가는 밝혀져 있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는 사실은 당시 사람들이 대본과 음악 어느 쪽에 비중을 두고 있었는지 밝히 보여준다. 이러한 대본 작가 중시는 20세기에 와서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1932년 거쉬인의 오페레타 「너에 대해 노래하리」가 퓰리처상을 수상하게 됐을 때 상은 대본가 카우프만에게만 수여된 반면, 거쉬인은 아예 수상식에 초대조차 받지 못했다는 일화는 문학과 음악의 비중에 대한 일반적 견해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마 지막으로 오페라를 감상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면 좋을지 몇 가지 실제적 제언을 해보자. 특별히 따로 정해진 준비 과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놀이’와 마찬가지로 오페라 극장에 가기 전에 우선 와인을 곁들인 멋들어진 저녁 식사를 즐기기를 적극 추천한다. 너무 배불러도 곤란하겠지만, 감칠맛 나는 와인의 향기는 이어질 감각의 향연에 듬뿍 빠지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형편에 닿는 대로 좋은 좌석을 예약할 것을 권한다. 웬만한 오페라 극장이라면 어느 자리에 앉더라도 노래는 잘 들리지만, 무대에서 벌어지는 광경들을 한껏 즐기려면 어느 위치에서 보느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무대 배경과 화려한 의상, 그리고 오페라에 따라 간간히 곁들여지는 발레가 주는 시각적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는 호사가 자주 겪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특히 오페라 극장에는 넉넉한 시간적 여유를 두고 도착하는 것이 좋다. 미리 대본을 손에 들고 한 번 읽어두는 것이 그날 저녁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데 그 어느 준비보다도 더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은 거의 모든 오페라 극장들이 번역 자막을 제공하지만, 역시 한 번 읽는 것과 두 번 읽는 것은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 큰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미리 줄거리를 파악하지 못하면 자막을 읽느라고 정작 오페라의 핵심인 노래에 빠져드는 일에 등한하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경우마저 생길 수도 있다.

이제 이처럼 공들인 준비의 궁극적인 목적인 노래 경험 자체에 우리의 전 존재를 걸어 보자. 물론 가수가 노래를 얼마냐 잘 부르느냐 하는 것은 그날의 공연의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이다. 그러나 가수의 성량이나 음질, 발음 같은 성악적 측면에만 관심을 가진다면 아직 수동적인 상태에 국한된 것이리라. 이를 넘어서 노래를 부르는 극중 등장인물과 감정이입 상태가 돼 순간 순간 표출되는 심정을 자기 것으로 삼는 삼매경에 빠지노라면 그야말로 너도 없고 나도 없는 우주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지금까지 열거한 모든 준비들은 바로 이러한 감동적 순간을 위한 것으로서, 이를 통해 우리는 삶 또한 이러한 순간들의 연속임을 절실하게 깨닫는 신플라톤주의적 신비를 경험하게 된다.

1972년 뮌헨 올림픽을 기념해 윤이상의 「심청」이 공연된 바 있으며, 지난 해에도 진은숙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초연되는 등 우리 작곡가들에 의한 새로운 오페라들이 속속 작곡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아직 성숙하다고 하기에는 이른 우리의 오페라에 대한 관심이, 우리의 특수한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예술 작품으로 결실 맺을 날이 오기를 꿈꿔본다.

이남재 / 한국교원대·음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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