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8 22:55 (목)
이론물리학의 깊이를 건드리는 ‘쉬운 설명’의 매력과 한계
이론물리학의 깊이를 건드리는 ‘쉬운 설명’의 매력과 한계
  • 이범훈 / 서강대·물리학
  • 승인 2008.04.07 11: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트링 코스모스(String Cosmos)』 남순건 지음 | 지호 | 307쪽 | 2007

물질계의 궁극적인 구조는 어떻게 이뤄진 것일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태초는 어떠한 과정을 거쳐 형성됐을까. 시공간이란 과연 무엇이며 물질계는 이와 별개인 것인가. 현대 이론물리학의 발전은 누구나 한번 쯤 가져보게 되는 이런 지적 호기심에 따른 질문을 인식론이나 철학적인 질문이 아닌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부분적인 해답을 제공하기에 이르렀고, 보다 완전한 답을 얻고자하는 연구가 현재도 세계적으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현재의 ‘이론 물리학이 설명하는 것’과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를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안내한 것이 남순건 경희대 교수(물리학)의 『스트링 코스모스』의 주된 내용이다.

현대 과학은 관련 분야의 일선 연구자가 아니면 알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빨리 발전하고 있다. 이로 인해 일선 과학자와 일반인과의 과학 내용에 대한 인식 괴리는 심화되고 있다. 여기서 ‘일반인’이라 함은 과학자가 아닌 집단, 대립적인 집단만을 의미한다기보다 타 분야의 과학자들도 포함한다. 과학이 세분화되고 깊이 발전할수록 일반인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쉽게 그리고 정확하게 그 내용을 전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현재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최근의 발전분야일수록 전달의 어려움은 더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일선 연구자인 과학자들만이 그 분야의 정확한 발전 양상을 이해할 수 있는 데 반해, 이런 내용을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달하는 능력은 과학자의 연구 능력과는 또 다른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적 경쟁에 놓여 있는 일선 과학자가 일반인에게 연구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 또한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하겠다. 저자는 현재 이 분야를 연구하는 국내 중견 과학자중 일인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는 어떤 언어로 말해야 하는가
저자는 책의 앞머리에서 물리학이 외국의 문화가 아닌 우리 문화의 일부로 받아들여져 자리 잡기를 바라는 저술 동기를 담고 있다. 물리학이 따분하고 어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소설보다도 재미있을 수 있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또 어려서부터 누구나가 알고 싶어 했던 자연에 대한 호기심에 대해 대답을 주는 물리학은 유럽에서는 과학자의 전유물이 아닌 문화의 일부로 이미 뿌리내려 있음을 지적한다. 제2부에서는 20세기 물리학의 양대 기둥이 미시세계의 법칙인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임을 알기 쉬운 문체와 내용으로 설명한다.
이 양대 기둥을 통일하는 성배로서의 ‘끈이론’을 소개하기에 앞서, 저자는 1980년대에 끈이론이 등장해야 하는 배경 지식으로 입자물리학의 이론과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긴 지면을 할애했으나, 이를 읽는 독자들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하는 것은 다양한 사진들과 아울러 저자가 직간접적으로 교류하고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생동감 있게 기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 방식이 물리학자들과의 교류 등에 국한하지 않고 물리적으로 난해한 개념의 설명에까지 이를 때에는 정확한 내용의 전달 측면에서 득과 실을 한 번 쯤 생각해 보게 된다. 사실, 전문가로서의 과학자를 양성하는 물리학 교육에는 매우 엄격한 수학적 언어를 포함한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과정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엄격한 수학적 용어를 통해서만 보다 정확한 개념을 이해하고 또한 전달 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것들이 일반인과의 괴리감을 더하는 장벽을 이루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장벽을 넘어 전문적인 이론물리학의 내용을 평이한 용어로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따라서 일반인을 위한 저서에서 개념의 정확한 기술과 부정확하지만 이해를 도울 수 있는 기술 사이에서의 적절한 절충은 저자와 독자 모두에게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의 문제다.
전문가 집단과 일반인 집단 간에 존재하는 언어 도구의 차이와 이를 극복해 전달해야 하는 문제는 비단 자연과학 분야만의 문제가 아닌 인문·사회과학에서도 존재한다. 그러나 수학적 언어가 수반되는 자연과학, 특히 이론물리학에서는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는 문제라 할 수 있겠다.

한 예로 저서에서 설명하고 있는 ‘초대칭’을 보자. 이는 페르미온과 보존으로 불리어 나뉘는 입자사이에 존재하는 대칭의 성질이다. 저자는 간략하지만 정확한 설명을 한 뒤 이를 보다 자세하고 정확하게 설명하는 대신, 저자가 대학 생활에서 직접 체험한 무용 사진을 곁들여 파트너 관계로 설명함으로써 시각적으로 그리고 쉬운 상상력에 호소했다. 개념을 쉽게 설득시켜 나가려는 재치를 선택한 것이다. 분명 이는 일반인이 시청각적으로 생동감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제공하나 유사성에 의거한 논리가 지니고 있는 부정확성과 오류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과정과 수준으로 물리학을 이해한 독자가 흥미를 가지고 정작 보다 깊게 이론 물리학을 접해보고자 할 때는 큰 괴리감을 느낄 것이다.

논리의 부정확성과 오류의 위험성


한 저서를 통해 다양한 독자층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일반인을 위한 과학도서의 다양화를 통해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와인버그, 레더만, 겔만, 파인만, 벨트만 등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과 호킹을 비롯한 많은 유명한 과학자들은 일반인을 위한 과학서적을 많이 썼다. 그 수준과 기술방식도 다양해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내용으로부터 전문가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정확한 기술을 강조하고 있는 서적에까지 매우 폭이 넓다. 독자는 지적 욕구에 따라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에서도 본 저서와 같이 현대 과학을 소개하는 도서가 다양하게 더욱 많이 나와야 할 것이다.

 
이 책 제목에 걸 맞는 하이라이트 내용은 제4부부터 시작된다. 저자는 그간의 기초적인 설명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끈이론을 소개한다. 끈이론이 비록 아직 그 실체를 찾아나가는 과정에 있는 막연한 실체의 성배임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에 등장하는 선구자적인 물리학자들의 사진과 아울러 본인의 개인적인 체험을 곁들여 생동감있게 기술을 해 나가고 있다. 1980년대 탄생한 끈이론이 10년 뒤 제2차 혁명이라 불리는 획기적인 발전을 이룬 것에 대해 설명하고, 이에 바탕을 둬 최근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우주론의 이해 그리고 시공간 자체에 대한 조심스런 시도에 이르기까지 이 책이 저술될 당시까지의 끈이론 연구학자들이 다루고 있는 최첨단의 연구결과를 생동감있게 전달을 해 주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성배로 칭한 끈이론에 대한 설명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부록으로 관련된 주역들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입자물리학 분야 한국 학자들의 연구 역사를 정리 소개한 것은 관련분야의 과학사 연구에도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저자를 포함해 현재 끈이론 관련 한국 학자들도 소개했다. 이 부분은 필연적으로 주관적인 견해를 담을 수밖에 없고 저자도 이 점을 인지, 양해를 구하고 추후 보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인쇄 저작물의 속성상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독자들에게 하나의 인식의 틀을 제공할 수밖에 없다는 면에서 異論의 여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일반인에게 성배를 찾아 나가는 모험에서 한국의 학자들의 기여를 소개하고 염원하는 모습을 담은 면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최근 과학을 문화의 일부분으로 이해하고 과학의 대중화를 위한 활동이 다양화되고 있다. 특히, 일반인을 위한 많은 종류의 과학도서가 나오고 있음은 매우 반가운 현상이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과학의 기초 상식을 다루는 것이거나, 전문적인 내용의 경우 번역서가 주를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근래에 남 교수의 책과 같이 일선 과학자가 직접 최첨단 연구를 일반인에게 소개하는 것은 국내의 과학계가 양적으로 그리고 질적으로 성장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범훈 / 서강대·물리학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자기홀극자와 이중성’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입자물리학, 장이론과 끈이론 등에 관한 논문이 있다. 국제이론물리연구센터(ICTP)의 어소시에이트멤버이며, 교육과학기술부/한국과학재단 지원 우수연구센터인 ‘양자시공간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