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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성장과정’ 평가가 우리의 역할”
“‘학생 성장과정’ 평가가 우리의 역할”
  • 김유정 기자
  • 승인 2008.04.07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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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가톨릭대 입학사정관 5명이 말하는 ‘입학사정관 제도’

2009학년도 대학 입학전형에서 10개 대학이 입학사정관제도를 도입했다. 서울대를 제외하면, 모두 올해 입학사정관제를 처음 시행하는 대학들이다. 대학별로 관련 전형을 발표한 가운데 가톨릭대 입학사정관제 운영이 주목 받고 있다. 지난해 10월 입학사정관 5명을 선발, 일찍이 진영을 갖춘 가톨릭대는 1학기 수시모집에 ‘잠재능력우수자전형’을 통해 입학사정관이 51명을 선발하는데 관여한다. 대부분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10명 안팎을 뽑는데 비하면 파격이라 할 만하다. 수능, 학생부 성적에 따라 ‘줄 세우기’ 하면 공교육은 물론 대학 교육이 제대로 발전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높아지면서 가톨릭대의 ‘실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누가 누구를, 어떻게 선발할 것인가.” 입학사정관제에서 가장 궁금한 부분이다. 누가 입학사정관으로 활동하는지부터 알려진 사실이 별로 없다. 지난달 28일 만난 5명의 입학사정관은 서로 다른 경험을 바탕으로 ‘학교 비전에 맞는 학생’을 뽑기 위해 발 맞춰가고 있었다.

김용기 : 5명 모두 지난해 10월 발령을 받았습니다. 현재 잠재능력우수자전형을 준비하는 한편 입시 제도를 분석하고 있어요. 입학사정관제를 처음 시행하기 때문에 아직 미흡한 점이 많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발행된 입학사정관제 관련 책을 구입해 번역작업을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수연 : 수백 가지가 넘는 특기전형 중 입학사정관이 시행하는 전형은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생각 중이에요. 어느 영역이든지 정체성을 찾기까지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죠. 몇 년 후엔 한국식 입학사정관의 색깔이 분명해지지 않을까요.

가톨릭대 입학사정관은 서울대 다음으로 많다.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는데 대학 구성원간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한다. 30~50명의 입학사정관이 상주하면서 학생을 관찰하는 미국 대학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 단계다. 김수연 책임전문연구위원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입학사정관제 시범대학을 지원한다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나선 곳이 별로 없었다”며 “결국 대학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가톨릭대는 성균관대, 연세대, 한양대 등과 2억원을 지원 받았다.

입학사정관이 한 자리에 모이면 의견충돌은 없는지 궁금했다. 가톨릭대 입학사정관들의 경력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김수연 책임전문연구위원은 가톨릭대 겸임교수로, 김시라·김승정 전문연구위원은 고등학교 교사로, 김용기 전문연구위원은 한국교육개발원에서 근무했다. 장효주 연구위원은 해군사관학교에서 학사장교로 근무하면서 입학 행정업무를 담당했다.

장효주 : 아직 초창기라 큰 충돌은 없지만, 각자 전문성을 확보하고 의견이 강해지면 견해차가 있을 수 있겠죠(웃음).
김시라 : 분명한 것은 서로의 경험을 존중한다는 사실이죠. 제 경력을 팀원들이 100% 신뢰해줍니다. 저도 다른 분의 경력을 신뢰하고요. 입학사정관부터 서로 간에 신뢰를 바탕으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을 볼 것인가’부터 정해놓고 고교 현장으로 가야

한 학생이 국어국문학과에 지원했다. A 교수는 글쓰기 능력을 중심으로 신입생 뽑기를 선호하고, B 교수는 비판적인 사고를 가진 학생이 입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누구를 뽑을 것인가. 쉽지 않은 문제다.

한 학생이 국어국문학과에 지원했다. A 교수는 글쓰기 능력을 중심으로 신입생 뽑기를 선호하고, B 교수는 비판적인 사고를 가진 학생이 입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누구를 뽑을 것인가. 쉽지 않은 문제다.

김승정 : 누가 가톨릭대에 적합한지, 어떤 학생을 뽑아야 하느냐는 큰 고민거리에요. 이는 입학사정관뿐만 아니라 교수, 입학처 직원들도 서로 의견을 교환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무엇보다 대학의 가장 중요한 주체인 학생도 자신의 후배, 선배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의견을 활발히 밝혀야 합니다.
가톨릭대 잠재능력우수자 전형은 어떤 학생을 선발하는데 초점을 맞췄을까. 

김수연 : 말 그대로 ‘잠재능력’을 가진 학생이죠(웃음). 인성 영역과 창의성 영역이 두 축입니다. 학생의 현재 능력과 입학 이후에, 졸업 이후에 보여주는 능력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학생을 선발한다는 목표입니다.

김승정 : 1단계 사정은 입학사정관이 진행해 3배수를 선발합니다. 이후 교수들에게 ‘이 학생은 서류에서 이러한 장점과 단점이 나타났다’고 설명하고 교수가 그 학생을 인터뷰해 평가하는 식으로 진행됩니다.
입학사정관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고등학교를 직접 방문해 능력을 갖춘 학생을 발굴하고 대학 지원을 유도하는 것이다. 입학사정관들 역시 이 점에 공감하면서도 “무턱대고 학교 현장에 간다고 해서 학생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김수연 : 중요한 것은 ‘학생의 어떤 점을 보느냐’지, ‘학교에 갔다’는 자체가 아닙니다. 평가 요소와 목적이 분명할 때 현장에서 학생을 겪어보는 일이 입학사정관의 전문성을 다지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막연히 봐선 아무 것도 평가할 수 없어요. 

김승정 : 입학사정관제 도입은 변화하는 교육평가 패러다임의 일부분입니다. 학생 성장과정을 평가하는 것이죠. 고교 기록이 성장과정을 충실히 기록하는 방향으로 변해야 해요. 다양성을 강조하기에 앞서 고등학교와 대학, 학부모와 학생 스스로가 개인의 성장과정을 제대로 기록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게 더욱 중요합니다.

김시라 : 입학사정관은 ‘다양한 전형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신입생 선발을 위해 대학에 상주하는 입학전문가’입니다. 이제까지 입학 전문가가 없었죠. 입학처 직원은 행정업무 중심이고 입학시즌이면 교수들이 모여서 논술 문제를 출제하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입학과정을 연구하고 학생을 선발합니다. 우리의 교육 이념에 맞는 학생을 어떻게 선발할지 고민하죠.

입학사정관 신뢰성, 모두가 생각해야할 과제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한 이후 평가 신뢰성에 우려를 나타내는 목소리가 높은 것 또한 사실이다. 입학사정관의 학생선발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이 많아지면 자칫 제도가 정착하기도 전에 흔들릴 수 있다. 이들 역시 인터뷰에서 “입학사정관을 신뢰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승정 : 신뢰성, 공정성은 사회 전체가 고민해야할 문제입니다. 신뢰성에 대한 의문의 목소리가 입학사정관제를 운영하는데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학생을 제대로 선발했는지 분석하기 위해 선발한 학생을 대상으로 추적연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뽑았기 때문에 추적연구도 다른 방식으로 진행하려 합니다. 

장효주 : 국민적인 신뢰가 필요해요. 입학사정관을 믿어주셔야 합니다. 한두 번 문제가 있다고 해서 제도를 시행하지 말자고 하면 안 돼요. 발전을 위한 시행착오일 수 있다고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김수연 : 무엇보다 짧은 시야를 갖지 않았으면 합니다. 입학사정관제가 활성화되는 이유는 정부 차원에서 고등학교, 대학 교육을 제대로 할 의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어요. 입학사정관은 학생 선발을 고민하는 사람이고 고등학교 교사와 대학을 연계하는 부분에 역량을 기울일 수 있습니다. 즉 입학을 둘러싼 주체들이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고 같이 연구할 수 있는 과제를 제시하는 사람이 입학사정관이에요.

대교협은 올해 30개 대학을 추가로 선정해 입학사정관제 도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대학들이 입학사정관제를 적극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해결해야할 과제는 무엇인지 물었다.

장효주 : 교육행정 관련 정보가 원활히 제공돼야 합니다. 자료를 공개해야 입학사정관이 참고할 수 있어요. 두 번째는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대학의 프런티어 정신입니다. 입학사정관 전형을 시행하는 대학 상당수는 ‘먼저 나섰다가 매를 맞을까봐’ 몸을 사리고 있습니다. 다행히 가톨릭대는 ‘먼저 매를 맞더라도 새로운 것을 시행해보자’는 의지가 있기 때문에 파격적일 수 있는 전형이 나온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입학사정관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한 교육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합니다.  

입학사정관의 신분이 보장돼야 하는 것도 제도 정착을 위한 과제다. 가톨릭대 입학사정관을 포함해 국내 대학 입학사정관 대부분이 계약직이다. 일부 대학은 입학처 직원이 입학사정관 업무를 담당하기도 한다.
정부 재정 지원, 입학사정관에 대한 신분보장 등 제반 여건이 갖춰지면 입학사정관을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지고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장 연구위원은 “입학사정관이 학습과 경험을 통해 전문성을 갖추기까지 3년 정도 걸린다고 생각한다. 입학사정관 신분이 보장되면 교수생활을 하다 입학사정관으로 이직하는 등 우수한 인재가 모이지 않을까”라고 반문했다.

갖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입학 전문가로서 역량을 키워가고 있는 5명의 입학사정관들은 앞으로도 ‘어떤 학생을 어떻게 선발할 것인지’ 연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김승정 : 입학사정관제를 떠나 학생 평가 방식, 입학 제도를 보는 시선이 바뀌면 대학 서열화도 점차 바뀔 것이라고 생각해요. 대학교육을 통해 사회에 배출할 인재가 어떤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지, 우수 학생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는 것도 우리의 고민 중 하나입니다.

김수연 : 오는 6월 워크숍을 열어 입학사정관 평가 특징과 관련, 각 분야 전문가를 초청해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입니다. 현재 연구과제가 넘쳐 있어요. 활동해 나가면서 대학, 고등학교와 연계해 입학사정관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김유정 기자 je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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