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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측 아닌 정당한 평가가 필요하다
억측 아닌 정당한 평가가 필요하다
  • 교수신문
  • 승인 2008.03.31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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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후예-고창 김씨가와 한국 자본주의의 식민지 기원:1876~1945』  카터 J. 에커트 지음 | 주익종 옮김 | 푸른역사 | 2008 | 2만8천원

이책의 저자 카터 에커트는 1990년대 이래 한국 학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식민지 근대화 논쟁을 촉발시킨 장본인이자, 미국의 한국학 연구를 주도하는 중진 연구자이기도 하다. 저자는 하버드 대학원 시절 유럽 고대사와 중세사를 전공했지만, 1969년부터 8년 동안 평화봉사단으로 한국에서 활동하게 되면서 당시 ‘한강의 기적’이라 회자됐던 급격한 경제성장을 목도하게 됐고, 역사학의 타고난 감각으로 한국자본주의의 역사적 기원에 이끌리게 됐다. 저자는 1919년 고창 김씨가에 의해 설립된 경성방직(주)을 구체적인 연구대상으로 설정하고, 중역회의록, 주주총회록,  회계장부, 개인서신, 경영진 인터뷰 등 폭넓고 구체적인 경영사료에 기초한 치밀한 실증과 독창적인 논리로 경방의 성장과정을 재구성해 현대 한국 자본주의 발전의 ‘진실된 기원(true origins)’을 밝힐 수 있었다.

저자는 식민지화 이전 조선사회 내부의 자생적인 자본주의 발전이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의해 그 싹이 잘리고 뿌리가 뽑혔다는 당시 한국 학계 일반이 공유했던 ‘자본주의맹아론’을 단순한 학자들의 희망사항이자 ‘오렌지 밭에서 사과를 찾는’공염불에 불과하다고 했다. 또한, 같은 논지를 식민지기로 확장시켜, 경방을 비롯한 일제하의 조선인 기업이 일제의 온갖 억압에도 불구하고, 조선인 스스로의 자본과 기술만으로 성장했다는‘민족자본론’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반면, 저자는 당시 한국 학계의 통설과는 달리 사회경제적 변화의 동력은 조선사회 내부가 아닌 외부(일본)에서부터 왔으며, 일제의 조선 지배가 오히려 식민지기 조선의 자본주의적 변혁과 함께 사회 전반의 근대화를 촉진시켰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조선인 자본가는 경제발전에 대한 참여가 결코 배제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개발권력=조선총독부의 의도적인‘협력적 자본가 개발정책’에 의해 조선인 자본가의 성장이 촉진됐다는 한국적 근대의 식민지적 특질을 강조했다.

이러한 저자의 시각과 논지는 1960년대 중반 이후 ‘아시아의 다음 거인’이라 회자됐던 한국경제 발전의 원인에 대해 당시 국내외 학자 대부분이 외자와 원조, 선진기술의 도입, 높은 투자율, 적절한 경제정책, 양호한 국제경제 환경 등을 지적했던 것과는 달리 장기지속이라는 역사적 안목에서 그 기원을 심층적으로 탐구하고자 했다. 이 책의 원서는 출판과 동시에 구미학계에서 ‘치우침 없는 한국사 연구’라는 호평과 함께 미국의 한국학 연구 수준을 크게 끌어 올린 획기적인 업적으로 평가받았고, 여러 학계로부터 권위있는 학술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 반면, 한국학계에서는 저자가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거나 ‘미화’했다는 격렬한 비판과 함께 심지어 한국 역사학계를 대표하는 대중 역사저널지 ‘역사비평(2002년 여름호)’에서 저자의 인격과 연구의 동기가 공개적으로 공격받기도 했다. 즉, 롤랑 바르트의 유명한 표현처럼 포스트모던적인 ‘저자의 죽음’을 방불케 하는 상식 수준을 넘어서는 거친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국내외 학계의 엇갈린 평가를 초래했던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부 ‘한국 자본주의의 발흥’은 개항 이후 1920년경까지 조선사회 전체의 사회경제 변동과 함께 전라북도 고부군의 소지주에 불과했던 고창 김씨가가 1876년 개항을 계기로 하는 대일 미곡수출 시장 확대를 배경으로 1910년대 후반에는 대지주로의 성장 과정과 함께 방직업을 중심으로 근대 산업자본으로 전환해 나가는 자본축적 과정을 다루었다. 즉, 고창 김씨가는 1876~1919년에 걸친 면제품의 수입과 미곡수출의 새로운 시장 환경을 배경으로 대지주로 성장할 수 있었고, 1919~1945년에 걸쳐 산업자본으로 전환해서 새로운 성장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었다. 그 배경으로는 당시 일본유학을 경험한 김성수를 비롯한 ‘신세대의 등장’과 1919년을 전후한 미가폭락과 달리 면공업 수익률 호조라는 ‘경제 환경의 변화’, 그리고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하는 조선총독부의 협력적 자본가 양성이라는 ‘지배정책의 변화’를 지적했다.

다음 저자의 핵심적인 주장을 담은 제2부 ‘성장의 유형’에서는 신생기업 경방의 비약적인 성장과정을 생동감 있게 재현하고 있다. 즉, 1919년 설립 초기 단순한 직포업체에 불과했던 경방이 경영의 불안정성을 극복하고, 1930년대 중반 일본의 면방적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규모 기업체로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 나아가, 1930년대 후반에는 일제의 대륙팽창에 편승해서 만주에 대한 대규모 자본수출마저 가능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경방은 자본조달, 원료와 설비구매, 기술획득, 노동자의 통제, 제품 판매 등 경영의 문제에 직면했지만, 이들 경영과제는 조선총독부 권력과 일본인 기업과의 긴밀한 유착과 의존 그리고 협력관계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제3부 ‘자본가 계급과 사회’에서는 조선인 자본가 계급과 민주주의·민족주의 등 시민사회와의 관련을 논하고 있다. 먼저, 경방의 경영진은 직공들을 어떻게 대우했는지를 다루었는데, 경방의 노동자들은 12시간·2교대 근무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저임금 그리고 가혹하고 모욕적인 노동규율을 강요당했음을 묘사했다. 이러한 비참한 노동조건은 대규모 직공 파업으로 이어졌지만, 경방 경영진은 직공들의 요구를 민족주의라는 미명하에 순종을 강요했고, 결국에는 일제의 경찰력에 의존해서 폭압적으로 진압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경방의 김씨가를 포함한 조선인 자본가 계급은 인종차별에 대해서는 분개하면서도 일제에 대한 동화의식도 강했다는 것이다. 1920년대 자본가 계급의 민족주의는 협력적 자본가 개발정책에 의해 빈껍데기가 되면서 점차 동화돼 나갔고, 193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일제의 황민화와 내선일체 정책을 전폭 지지하기에 이르렀으며, 그 와중에서 고창 김씨가도 예외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마지막, 결론에서 저자는 이상과 같은 일제의 식민지 공업화의 유산이 해방 이후 한국 사회 전반에 남긴 긍정과 부정의 영향을 총괄하고 있다. 즉, 일제의 식민지 유산은 해방 이후 한국경제 발전의 특징이던 정부의 민간경제에 대한 압도적인 우위와 일본자본주의에 대한 종속을 본질적으로 규정했다는 것이다. 즉, 식민지기 공업화와 그 경험은 해방 이후에도 ‘한국사회의 살아있는 일부’가 됐고,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이 주도했던 경제개발정책의 원형이자, 고도성장의 주요 동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반면, 식민지 자본주의는‘개발독재는 경제적 효율성과 함께 수익률도 높을 수 있다’는 권위주의적 정치철학을 각인시킴과 동시에 길거리 민주주의를 불가피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1960년대 이래 한국의 경제개발은 여러 측면에서 식민지 조선의 개발모델을 연상시킨다고 결론지었다. 

이상, 이 책은 1980년대 국내 역사학계를 크게 앞서는 새로운 시각과 치밀한 실증으로 식민지기 조선인 자본의 성장 궤적을 구체적으로 구명하고, 그 역사적 의의를 ‘제국의 후예’라는 선명한 이미지로 재현하고 그 역사적 의의를 분명히 했다. 즉, 한국 최초의 근대적 자본가 계급을 대표하는 경방이 일본제국주의와의 협력과 의존관계를 통해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시혜론적 성장유형과 함께 식민지 근대화의 경험이 1960년대 박정희 경제개발의 모델이 됐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자극적인 결론이 양극단을 오가는 엇갈린 평가와 함께 1990년대 이래 국내외 학계를 뜨겁게 달군 ‘식민지 근대화 논쟁’의 불씨가 됐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극단적인 평가와는 무관하게 이 책은 경방에 대한 단순한 사실의 수집과 나열 수준에 그치지 않고 당시 시대 상황을 선명한 문제의식에 기초한 탁월한 비유와 유려한 문체로 그 전체상을 성공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또한, 이 책은 일제에 의한 사회경제적 변화와 조선인의 대응, 민족주의와 일제 지배정책의 변화, 조선인 자본가 계급의 동향, 전시기 조선인 사회의 계급적 분열 등 한국 근현대사의 핵심적인 주제를 일관된 관점에서 검토했다는 점에서 역사 연구의 한 전범을 보여 주고 있다. 나아가, 이 책은 출판과 함께 일본과 중국지역 연구가 판치던 미국의 동아시아 학계에서 한국학에 대한 연구 관심을 자극하고, 한국학의 시장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또한, 우리로 하여금 미국의 한국학 수준을 가늠하고, 국내 학계를 되돌아보게 하는 자기반성의 계기가 됐다.        

이상과 같이 획기적인 시각과 자극적인 논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갖는다. 첫째, 경방을 비롯한 식민지기 조선인 자본가 계급의 성장이 일제의 지원과 협력의 결과였다는 제국주의 정책결정론 혹은 일방적인 외인론적 시각의 문제이다. 즉, 일제의 적극적인 자금과 기술지원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용·흡수해서 조선인 스스로의 자기계발로 연계시킬 수 있었던 조선 사회에 축적된 사회적 능력 혹은 경방 자체의 경영능력을 무시했다는 비판을 불가피하게 한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현재 세계적으로 심각한 빈곤에 시달리는 많은 저개발국이 일본과 같은 시혜적인 제국주의 지배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설명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둘째, 경방을 식민지 조선인 자본의 전형으로 파악할 수 있겠는가 하는 대표성의 문제이다. 종래 전시기 조선인 자본에 대한 연구사적 함의는 일제의 가혹한 전시수탈과 억압으로 전면적인 후퇴와 몰락이 불가피했다는 전시몰락론이다. 이러한 전시몰락론은 식민지기 조선인 자본의 끈질긴 성장을 논증했던 허수열교수조차도 지지했던 일반론이었음을 상기한다면, 전시기 경방의 비약적인 성장은 조선인 자본 가운데서도 극히 예외적인 사례가 되기 때문이다. 셋째, 경방이 성장 과정에서 직면했던 자본조달과 기술획득 등 경영상의 문제를 총독부 권력과 일본인 기업과의 지원과 협력관계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었다는 이 책의 핵심적인 주장과 관련이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의하면, 식산은행을 중심으로 하는 식민지 금융기관의 금융거래와 원료·제품 거래와 관련한 일본인 기업과의 관계가 반드시 경방의 성장을 지원하는 특혜금융 혹은 호혜거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오히려 시장금리를 반영한 통상적인 금융거래이자, 상호이익을 추구하는 시장거래 일반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독창적인 과제 설정에도 불구하고 실증상의 심각한 오독과 오해를 포함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논어 위정편의 ‘학이불사즉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연구 시각의 창의성만이 강조되고, 이를 지지하는 실증상의 정확성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경시하는 구미학계의 학술 동향을 보여주는 또 다른 의미에서 대표적인 연구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적지 않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종래 억압과 저항, 수탈과 착취의 판에 박힌 민족주의사관에 대신해서 탈민족주의의 장기근대의 관점에서 한국적 근대화의 탐구 영역을 시공간적으로 크게 확장시켰다는 의의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시장경제의 발전과 진화의 요소로서 경제제도와 그 역사적 경로의존성의 중요성을 환기함으로서 자본주의 발전의 다양성과 일반성을 이해하는데 커다란 시사점을 제공하는 것이라 하겠다. 현재 한국사회는 세계 10대 경제 강소국임에도 불구하고, 신임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이념의 갈등을 넘어서자고 호소하고 경제의 선진화를 가로막는 심각한 국론 분열의 양상이다. 이를 고려하면, 한국적 근대화의 특질로서 대외 지향성을 지적한 저자의 현대적인 논지는 18년이 흘러간 작금의 현실에서도 그 자기성찰의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하겠다. 이는 원서의 서두에서 인용한 저명한 정치철학자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인간은 무거운 짐을 지고 떠도는 방랑자와 같이, 경험(역사)이라는 등짐으로 지고 산다”는 유명한 경구와 같이, 역사와 고전의 무게를 절감하게 하는 역작이라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저자가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거나 변호한 것이 아니라 한국적 자본주의의 출현과 발전의 역사적 기원을 밝힌 본격적인 연구라는 점이다. 따라서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금번 한국어판 출간을 통해서 저자의 죽음을 절감하게 했던 더 이상의 오해나 억측이 없는 정당한 평가 그리고 실증에 입각한 이성적인 비판의 계기가 됐으면 하는 것이 평자의 바람이다.


정안기 /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경제사

필자는 교토대에서 ‘戰前 戰時 종방콘체른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근대 동아시아 역사상의 재구성』, 『근세 일본의 경제발전과 근면혁명』 등의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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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2015-09-19 14:18:38
에라이 이 미친 놈아, 할짓이 없어 왜노 뒷구녕을 빨아먹냐! 고려대 교수라는 놈이 밥쳐먹고 한다는 소리가 식민지 근대화론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