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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현장에서 보는 시간강사 처우 개선
[진단] 현장에서 보는 시간강사 처우 개선
  • 강연희 기자
  • 승인 2001.12.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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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료 인상? 비전 가질 수 있는 청사진부터
우여곡절 끝에 교수노조가 출범했다. 오죽하면 교수들이 노조를 결성할까 하는 의구심 밑에는 ‘신분 불안’ 문제가 작용한다. 그렇다면, 절반의 대학 교육을 떠안고 있는 강사들은 지금 어디에 서 있을까.

지난 4월 대통령의 ‘특별지시’로 마련된 시간강사대책에 강사들의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강사료 인상과 교수정원증원 방안을 골자로 한 이 ‘특별대책’이 실효성을 거둘지는 아직 미지수. 그러나 현장에서 만난 강사들은 이미 그 해답을 알고 있는 듯했다.

교육부의 2002년 예산안을 살펴보면 강사료는 시간당 2만3천원에서 3만원으로 인상된다. 인상이유는 생계비에 미달하는 시간강사의 강사료를 현실화해 생계를 보장하는 한편, 학문연구에 전념토록 하는 데 있다. 그런데 2001년 1조 3천억원에서 2조 3천억원으로 증가한 2002년도 학술연구조성사업 총예산안을 들여다보면 시간강사 연구지원항목의 경우 2001년과 2002년 모두 150억으로 ‘동결’돼 있다. 또한 대학교육 질적개선과 시간강사문제해소를 위해 국립대 교수를 2002년부터 2년간 매년 1천명씩 증원하기로 했지만, 인력증원이 예상되는 곳은 오히려 IT, BT 등 첨담과학분야.

인문학 시간강사는 3D 업종

사정이 이렇다면, 시간강사들은 자신의 처지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특히 인문학 부문의 강사들의 현실인식은 처연할 정도다. 장원태 서울대 강사는 “인문학하는 시간강사들은 인문학이 3D업종에 속한다”고 자조적인 농담을 한다. 어학 부담이 크고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고(difficult), 죽어라 강의해도 먹고살기 막막하며(dangerous) 여기저기 눈치보고 비위맞추며 살기때문이다(dirty).

이 말 속에 시간강사들의 고충과 현실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학위를 받아 강단에 선다는 기쁨도 잠시, 열악한 현실이 그들을 맞는다. 조은평 방송통신대 강사는 “시간당 강사료가 2만5천원 내외이다. 방학중에는 이것마저 지급되지 않아 세식구가 생활하기 어렵다. 그래서 논술이나 번역 등 돈을 벌기위해 다른 일을한다. 그러다보면 전공에 대한 연구를 할수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생활고 문제보다 더 심각하게 인식하는 것은 자신들이 전공한 최신의 이론이나 성과를 심화하는대신 주로 교양 교육에 동원된다는 ‘위기감’이다. 이름을 밝히길 꺼려하는 김아무개 부산대 강사는 “전공과목을 강의해야 자신의 전문영역이 확대되고 그 결과 중견연구자가 되는 탄탄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데 교양과목 수업을 준비하느라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한다”고 지적했다.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해도 아직 총체적으로 학문을 조망하는 실력이 되지 않아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임아무개 강원대 강사 역시 “5∼6년 동안 성격이 유사한 교양 과목을 강의해왔는데, 솔직히 지쳤다. 교양 과목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지만, 전공 과목 강의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러다보니 논문쓰기와 강의가 따로 가고, 정말 부담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이것은 대학교육의 구조적 문제와도 연관돼있다. 올해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대학강사의 강의비율이 전체강좌의 45.1%에 달하고 있다. 이들의 문제는 대학교육의 질과 곧바로 연결된다. 강사료를 올리는 방안만으로는 근본적으로 대학교육의 질을 높일 수도 없고, 시간강사 문제해결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들의 의견이다.

결국 생계와 직결된 강사료인상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강사들에게 일정한 비전을 제시하는 방안 마련이다. ‘신분 안정’을 꾀할 수 있는 대안의 필요성에 강사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강사들로하여금 대형 교양 강의를 하게 내몰고, 비인기 과목은 곧바로 ‘팽’ 당하는 아슬아슬한 곡예를 계속하게 한다. 시간강사 처우 개선 방안들이 강사들에게 인기가 없는 것은 이런 점을 간과했기 때문.

김종건 중앙대 강사는 “강사료가 오르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고용보장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연구활동을 할 수 있는 대학의 지원제도가 전임교원 중심으로 제도화돼 있는 것도 문제다. 더 많은 지원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최소한 1년 이상 강의를 보장해줘야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니 강사문제 해결과 관계없는 첨단과학분야의 증원은 대다수의 강사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임성윤 성균관대 강사노조위원장은 교원증원대책이 현실적으로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6만명의 시간강사들 중 국립대에서 천명의 교수를 증원한다고 해도 계속해서 새로운 강사인력들이 나온다. 발본적 전환 없이는 악순환이 이어질뿐”이라는 지적이다. 윤병태 전국강사노조위원장(영남대)은 정부의 정책 관련자 및 대학 경영자들의 기본 관점에 이의를 제기했다. “정부나 대학은 교육적 관점이 아니라 경영적 관점을 중심으로 강사문제와 교육문제를 바라본다. 한국사회 노동자 중 강사들만큼 비참한 계층도 없다”며 교수와 시간강사로 구분하지 말고 정규직 교수와 비정규직 교수로 분류할 것을 지적했다.

교수들부터 나서자

한편 시간강사문제 해결에 대해 교수들의 의견을 들어보자. 김남두 서울대 교수(철학)는 “시간강사들에게 정식교원의 지위를 부여하고 교원들이 받는 제반 혜택의 수혜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지적하면서 대학 교육을 담당하는 강사들에게 교육자로서의 지위와 품위를 확보해주는 제도 개선 프로그램을 주장했다.

김시업 성균관대 교수(국어국문학)는 대학구조의 편향성에 대해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정부가 시간강사 비율이 높은 대학을 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주겠다고 했지만 대학은 경제의 논리에 천착해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한다”며 결국 정부가 제도적으로 대책방안을 내놓고 대학들을 지원, 유도할 것을 제시했다. 특히 시간강사들이 자신들의 권익과 주장을 하면 비윤리적이라고 보는 사회적 분위기를 깨야하고, 정부와 학교 그리고 시간강사들이 함께 모여 문제에 대해 의논하고 토론할 수 있는 대책기구가 선결조건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의 취임사중 “만난을 무릅쓰고라도 교육개혁은 반드시 성공시켜야한다”는 대목이 있다. 대학교육의 질 향상은 국가경쟁력의 강화와 맥을 같이 한다. 교육개혁문제의 중심에 서있는 시간강사문제에 대해 본질적인 접근과 과단성있는 실천이 필요한 때다.강연희 기자 allesk@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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