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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숙은 ‘주체적 여성’이 되자고 말했다”
“한정숙은 ‘주체적 여성’이 되자고 말했다”
  • 교수신문
  • 승인 2008.03.31 1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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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를 만나다]한정숙 서울대 교수(서양사)

교수신문 <비평> ‘저자를 만나다’는 최근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길)를 출간한 한정숙 서울대 교수(51세·사진)를 주목했다.
고대 그리스부터 근대 초까지 역사 속 여성상을 조명하는 한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차별을 넘어서는’ 주체적 여성의 활력을 보여줌으로써 ‘차별의 역사’를 위주로 접근해왔던 여성사 연구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주고 있다. 러시아사 전공자인 그의 관심이 어떻게 여성사로 뻗어 나올 수 있었고, 또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지난 26일 서울대 교정에서 한 교수를 만났다.


독일 튀빙겐대에서 혁명 전후 시기 러시아의 인민주의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한 교수는 일찍부터 헬무트 슈나이더의 『노동의 역사』(한길사 1982), 마르크 블로크의 『봉건사회』(한길사 1986, 개정판 2001)를 비롯해 서양사에 관한 여러 책들을 번역했다.
『유라시아 천년을 가다』(사계절 2002) 등을 공동 저술하는 등 러시아-유라시아 역사를 관심영역으로 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여성적 기지로 승리하기(2006)’, ‘사포와 여성적 세계(2006)’, ‘러시아 제국의 두 학술원을 이끈 여성 총재(2005)’ 등의 논문을 내는 등 여성사 연구에 활력을 보이고 있다
.

올랭프 드 구주는 프랑스 혁명 와중에 여성 참정권을 요구하다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현재의 시선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굴종의 삶에도 수많은 ‘아무개’ 여성들은 목소리 한 번 내보지 못하고 역사 속에 묻혀갔다.

“여자들은 왜 이렇게 바보같이 살았을까.” ‘서양문화사’ 수업을 듣던 어느 여학생의 항변이다. 한정숙 교수의 이어지는 단상은 이랬다. “여성들이 바보같이 살기만 했을까. 다만 지배질서를 바꾸는 현실적 힘을 형성할 수 없었기 때문에 목소리들이 묻혀 버린 것은 아닐까.”

한 교수가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를 집필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다. 그는 이 책에서 정치적·사회문화적·성적 남성지배 구조에 함몰되지 않고 주체로서 살아가고자 했던 역사 속 여성들의 이야기를, 목소리를 복원하고자 했다.

 
실존 인물이었음에도 전설 속으로 들어가 버린 고대 그리스의 여성 시인 사포.
그녀는 여성적 목소리로 노래하고 시를 지었다. 남성에게 적극적으로 사랑을 말하기도 하고, 남성에 종속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가 아닌 ‘여성사회’를 예찬하기도 했다. 사포에게 시를 쓴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며 인간의 개인적 죽음을 넘어서 영원한 기억 속에 남을 수 있게 해주는 주체적 표현이었다. 그것을 그녀는 자신의 이름으로 당당히 표현했고, 작품 속에 스스럼없이 자신을 드러냈다.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 안티고네는 국가보다 존엄한 인간의 영혼을 부르짖다 죽음을 맞이했다. 국가에 대한 시민적 결속을 강요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 테바이의 통치자 크레온은 ‘반역자’ 폴뤼네이케스에게 매장 금지라는 형벌을 내렸고,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안티고네는 주검을 묻는다. 이처럼 이 책에 등장하는 역사 속 여성들은 여성이 ‘온전한 존재’로 인정받을 수 없었던 현실에서 여성주체의 문제를 탁월하게 각인시키고 있다.

“역사 속 인물들을 보면 여자들이 정말 새로운 방식으로, 그리고 자신들의 힘으로 전쟁을 종결시키고 평화를 회복하거나, 흐트러진 민주주의 질서를 다시 회복하는 등 자신의 힘으로 상생의 질서를 회복하는 통쾌한 면면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의 인물 해석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여성들이 억압 속에 웅크려 있지만은 않았음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한 교수가 보기에 역사 속 여성은 남성보다 ‘결핍’되지 않은 온전한 주체였다. 다만 “비판적 의식이 있어도 이를 확산시키고 힘들을 결집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전혀 갖지 못했을 뿐”이다.

‘차별의 역사’가 아닌 ‘차별을 극복하는 역사’의 발견

이전의 여성주의 운동은 남성중심사회에 대한 법적·정치적 억압에 대한 평등한 권리 주장과 그 대안 마련에 치중했다. 최근 ‘여성적인 것’의 가치를 주장하는 목소리에 차츰 힘이 실리고 있지만, 여전히 여성주의 연구는 여성이 얼마나 억압당했는가, 남성이 여성을 어떻게 지배했던가의 분석에 무게를 둔다. ‘여자들은 왜 그렇게 바보처럼 살았느냐’는 물음은 여성주의 운동이 이룬 성과임과 동시에 한계를 보여주는 반응인 것이다. 한 교수의 이번 저작은 그 주체성에 주목하고 있어 새로운 시야를 제공한다.

“억압당하고 희생당했다는 것을 넘어 해결책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남성들이 여성의 권익을 지켜준다고 해봐야 그들의 시선으로 현재의 불균형은 극복될 수 없어요. 여자들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거기에 스스로 답하고 싶었습니다.”
조곤조곤하지만 당차게 이야기하는 이 시대의 여성 ‘한정숙의 목소리’다. 억압의 원인과 구조, 그 지속의 메커니즘을 밝히는 것이 극복을 위한 필수조건이라 하더라도 이에 저항하는 주체가 없다면 그러한 구조는 극복되지 않고 지속되지 않을까. 이 책은 여성이 주체로서 의식적으로 자신들을 내세우기 시작한 근대 여성주의 이전에도 이미 여성이 주체였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여성의 역사를 복원하고자 했다.

주체적 여성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녀가 힘주어 말하는 것은 남성적 지배 구조 속에서 남성적 가치관을 구현하려했던 대리남성의 이미지를 거부하고 대안적 주체성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여성이 주체가 된다는 것은 여성이 누구인가를 여성 자신이 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전쟁 영웅으로 우리에게 기억된 잔다르크,
혁명의 대의를 품고 스스로를 남성화시켰던 과거의 여성 투사들은 ‘주체’가 되기에 미흡하다. 여성들이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 남자들 못지않게 인간의 보편적 특질로서의 ‘남성적 특질’을 갖고 있으며 이와 같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남자들에게 인정받으려 했던 과거 여성주의 운동은 한 교수에게 혁신의 대상으로 겨냥된다.
그것은 오히려 여성들 스스로 여성적인 것을 부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씩씩한 글쟁이’ 피장이 들려주는 여성의 목소리


그녀는 개중에도 가장 애정을 갖는 인물로 ‘중세 말의 씩씩한 숙녀 글쟁이’ 크리스틴 드 피장을 소개한다. 상기된 얼굴로 프랑스 최초의 여성 직업적 문필가 피장의 삶을 들려주는 그녀의 모습 속에서 그녀가 바라는 주체적 여성의 상이 그려진다.

“피장은 남편과 사별한 후 문필 활동을 시작해서 대담하고도 당당한 논리를 전개했던 인물이에요. 그녀가 지은 『숙녀들의 도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에 대응하는 여자들의 나라를 그려낸 작품인데, 발상이 너무 신선하지 않나요? 거기에 악녀로 낙인찍힌 메데이아, 소크라테스의 부인 등이 나오는데, 여성에 대한 억압이 없는 그녀들의 도시에서 악녀들의 명예가 회복되죠.” 남성의 사회적 능력에 기대지 않고, 사회적 발언에 당당히 나서는 동시에, 억압적 질서를 직시하면서도 문필가로 즐겁게 살아가는 피장의 모습이 그녀가 바라는 여성의 삶이다.

한 교수가 피장에 강조점을 두는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그녀는 피장이 책 속의 다른 인물들과 달리 시민계급 출신의 여성이라는 점을 주목한다. 한 교수는 이미 책의 서두에서 스피박의 논의를 지적하며 ‘여성의 억압’에 관한 일반론에 ‘여성 일반’이란 있을 수 없다는 반론을 염두하고 있다. 그녀의 답은 이렇다. “정말 잘 먹고 잘 사는 여성들과 경제적 빈곤층의 남성들의 삶에서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상숭배 돼서는 안 되죠. 다만 ‘분열시켜서 지배하라’는 말처럼 고통 받는 소수자들이 같이 인간적인 삶을 만들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성과 계급의 문제를 충돌하는 것으로 사고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이 시대의 여성, 한정숙
러시아 역사가인 한 교수와 여성사의 접점은 무엇일까. 한 교수와 함께 여성학을 공부해 온 김영희 카이스트 교수(영문학)는 “다른 분야로의 관심이 아니라, 자신의 학문에 깊이 천착한 결과”라고 한 교수의 ‘외도 아닌 외도’를 설명한다.

무릇 학문이란 추상의 세계가 아닌 현실의 세계에서 끌어올린 성찰이어야만 한다.
러시아 역사, 그 중에서도 현대사 연구를 도맡아하는 그녀이지만 여성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교수의 여성사 연구는 김영희 교수의 말대로 “학문에 대해 투철하게 파고드는 학자로서의 근본자세”에서 어긋남이 없다. 인문학이 냉대 받는다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지만, 그런 기본적인 정신이 아직 자취를 감추지 않았는지 그녀의 연구는 제도적으로도 지인에게도 인정받고 지원받아왔다. ‘서양문화사’ 수업에서 시작된 여성사
논의는 방송통신대 강의로 초대됐고, ‘서양의 역사와 고전에서 여성 주체 찾기’라는 제목으로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후배인 이남희 서울대 강사(여성사)의 제안은 출간을 진척시킬 현실적 계기가 됐다고 한다.

“역사학뿐만 아니라 학문 자체가 남성적입니다. 남성 인물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한다든지, 주제 선택에 있어서도 정치경제적 사건들만이 현존했던 역사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문화사·일상사 등의 끊임없이 새로운 역사서술을 하는 이유도 그에 대한 반성에 있습니다. 여성의 시각으로 ‘이런 삶을 살았노라’ 들려주는 작업은 역사를 재구성할 가능성을 주고 있습니다.” 그녀의 여성사 연구가 역사학에 활력을 불어넣는 지점이다.
결혼하기 두려워하는 여성의 마음을 노래하는 사포의 시 속에서 그리스의 결혼 제도 모순을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정치경제적 접근이 아닌 일상의 경우들이 구조적인 모습을 훨씬 잘 드러낼 수도 있다고 한 교수는 설명한다.

지식의 영역에서도 한 교수는 남성적 가치관을 집요하게 문제삼았다. 과연 ‘여성적인 것’의 힘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녀는 ‘相生의 힘’이라고 답한다.
“너와 나를 배타적으로 구별하고 타자를 억압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여성적인 것’의 힘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체첸에 ‘병사들의 어머니’라는 모임이 있습니다. 그들은 체첸 반군과 러시아군 모두의 어머니로서 전쟁의 종결에 목소리를 높입니다. 특정한 누군가를 위한 삶이 아니라 전체의 삶을 향한 목소리가 여성들의 목소리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교수는 여성 기자에게 당부를 전한다. “불합리한 상황이 닥친다고 해도 ‘욱’하고 ‘퍽’하며 흥분하지는 마세요. 젊은이들에게 피장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그녀가 소송에 휘말리고 손가락질 당하면서도 ‘끈덕져야 하고 강해야 하는 동시에 현명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감성을 가라앉히고 냉정하면서 논리적으로 대응하는 것들이 필요합니다. 상대를 먼저 이해하고 설득해야지 판을 깨고 나가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

 글·사진 김혜진 기자 khj@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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