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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눈치 저 눈치 보다 어느새 파김치
이 눈치 저 눈치 보다 어느새 파김치
  • 강연희 기자
  • 승인 2001.1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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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취재] 어느 시간강사의 하루
안대희(가명)- 철학전공. 올해 나이 43세, 8년째 강의를 하고 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 둘과 부인과 함께 부천에 살고 있다.
아침 7시 아이 둘의 싸움소리에 눈을 떴다. 싸움의 발단은 자전거에 있었다. 친구네 집에 가서 본 자전거가 못내 부러웠던 모양이었다. 중고라도 한 대 사주고 싶지만 생활비를 생각하면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아침 8시 아침을 대충 먹고 서둘러 집을 나온다. 오늘은 S대에 오전 강의가 있는 날이다. 마을버스를 타고 전철역에 도착하니 서울로 출근하려는 사람들로 만원이다. 전철을 갈아타고 다시 버스를 타 학교에 도착하니 오전 10시. 바삐 강의실로 걸음을 옮겨 강의실 문을 열었다. 숨을 돌리고 나서 교실 안을 찬찬히 둘러보니 학생수가 70여명 정도 눈에 들어온다.

출석을 부르고 지난번에 강의한 내용을 다시 확인한 후 강의를 시작한다. 벌써 15분이 흘렀다. 오늘 강의내용은 고대철학의 주요 쟁점. 손가락에 분필가루를 가득 묻히면서 내용을 설명하고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순간 교실 안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진다. 혹시라도 눈이 마주칠까 눈초리가 땅을 향한다. 이런 순간 맥이 풀린다. 혹시 강의를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에게 회의가 든다. 시계바늘이 11시 15분을 가리킨다. 수업을 마칠 시간이다. 작년부터 1시간 15분씩 일주일에 두 차례 강의하도록 학교방침이 바뀌었다. 적은 강사료로 생활하는 시간강사로서는 매우 불편한 제도이다.

그래도 강의는 계속된다

강의를 마치고 공중전화를 건다. 여태껏 강의부탁을 해보지 않았는데 당장 다음학기 강의가 계속있을지 예측을 할 수 없다. 자리를 잡고 있는 선배에게 강의자리를 부탁하고 나니 묘한 기분이 든다. 그래도 다음 학기 강의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기운이 난다. 과사무실에 들러 사물함을 확인하고 나서 11시 50분 교수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는다. 오늘의 메뉴는 설렁탕. 값은 3천5백원.

다시 버스를 타고 전철을 갈아타고 다음 강의를 할 학교로 간다. 다행히 전철 안에 빈자리가 있어 자리를 잡고 앉아 강의 준비안을 들여다본다. 어제밤 강의준비로 늦게까지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고 정리했더니피로가 밀려온다. 자신도 모르게 순간 잠이 들고만다.
안내방송소리에 잠이깬다. 아직도 목적지까지는 한참이다.

전철역에서 내려 학교로 가는 마을버스에서 학생들을 만났다. 교수님이라고 반갑게 인사하는 학생들의 반응에 약간 혼란을 느낀다. 내가 정말 교수인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담당하고 있지만 직업인으로서 교수인지 아닌지 의문이 든다.

학교에 도착하니 오후3시. 강의는 오후 4시에 있다. 그래도 이 학교는 강사들을 위해 강사실을 배정해주고 있어 오갈데 없는 신세는 면한다. 강사실에서 자료를 복사하고 한쪽 자리에 앉아 책을 꺼낸다. 화장실을 가려고 자리를 나섰다. 그런데 정면에 있는 교수 연구실 문이 반쯤 열려있다. 순간 책으로 빽빽이 둘러싸인 방과 컴퓨터와 책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너무나 부럽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다른 것보다도 개인의 연구실을 갖고 싶다는 바램에 발걸음을 떼지못한다. 집에 가서는 아이들때문에 그리고 협소한 집안 구조로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방을 가질 수 없고 이미 과정을 마쳐서 학교로 가서 연구를 할 수도 없다.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공간 필요

오후4시 4층 강의실로 향한다. 오늘 수업은 토론식 수업이다. 20명의 학생들이 토론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다. 주제는 주5일제근무.
준비한 학생들의 발제가 끝나자 찬반의견이 오갔다. 학생들의 토론으로 교실 분위기가 생동감 있지만 교실은 춥다. 내복을 껴입어도 한기가 느껴진다. 영하로 내려가지 않으면 난방이 되지 않는다. 영하로 내려가지 않더라도 초겨울 강의실은 썰렁하다.

학생들의 활발한 토론으로 수업이 늦게 끝났다. 출석을 부르고 다음 시간에 과제를 내주고 교실문을 나서니 6시가 가까워진다.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후배와 약속을 해놓았지만 몸도 피곤하고 술자리에 갈 돈도 여유가 없다. 집에서는 아이들이 기다리고. 하루종일 흐린 날씨가 괜스레 원망스럽다.강연희 기자 allesk@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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