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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의 이데올로기화는 끝났는가
파우스트의 이데올로기화는 끝났는가
  • 김혜진 기자
  • 승인 2008.03.24 14: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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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향_ 요헨 골츠 세계괴테학회 회장의 ‘오늘날 파우스트 논쟁’

한국괴테학회(회장 전영애 서울대 교수)의 초청으로 요헨 골츠 세계괴테학회 회장이 방한했다. 그가 지난 22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한국괴테학회 춘계학술회의에서 발표한 기조강연 ‘파우스트-파우스트적인 것: 오늘날의 테마’는 괴테의 본고장인 독일과 세계에서 논의되는 파우스트 연구의 최신 쟁점과 동향을 담고 있다. 주요 내용을 정리한다.

전쟁과 분단의 시대부침으로 『파우스트』 해석은 양극단을 오고갔다. 그러나 파우스트의 속성을 드러내는 ‘파우스트적인 것’의 본래 의미는 슈베르테가 『파우스트와 파우스트적 요소』(1962)에서 지적한 것처럼 가치중립적 차원의 ‘파우스트 인물에 속하는 것’이다.

 
파우스트를 탄생시킨 17~18세기 대부분의 문학작품들은 파우스트를 경고나 경악의 이미지로 그려왔고, 그에 내포된 파우스트적 특성은 곧 부정적인 것이었다. 괴테의 『파우스트』 출간(1790)은 이러한 지형에 변화를 가져온다. 독일 제국의 성립(1780~1781)은 괴테의 것을 빌어 파우스트의 부정적 이미지를 정반대의 영웅적 이미지로 격상시켰고, 나치가 권력을 장악했을 때 파우스트는 지배이데올로기에 노골적으로 동원됐다. 필자가 살펴본 바에 따르면 서독에서도 동독에서도 슈베르테 이후 ‘파우스트적인 것’이라는 개념은 자취를 찾아볼 수 없다. ‘파우스트’는 파우스트 문학과는 직접적 연관성 없이 공허한 이데올로기로 간주됐다.

파우스트-파우스트적인 것의 구별 시도
독일에서 파우스트 연구는 최근까지도 ‘파우스트적인 것’을 구별하는 연구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알빈 빈더가 2003년 개정판으로 출간한 『파우스트적 세계』는 중립적 구분을 시도한듯 보이지만, 이데올로기적 유산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파우스트적’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성찰하지 못했다.
이러한 시도는 해외 연구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88년 『파우스트와 독일인들』을 출간한 빌리 야스퍼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그 이전의 파우스트, 그리고 독일 사회 전통 속에서 보고자 시도했다. 그가 보기에 괴테의 파우스트는 계몽과 이성이 아니라 독일의 재앙으로 귀착되는 행보의 갈림길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파우스트학’이라고까지 명명한 2차 대전 이후까지의 해석에 있다고 보았다.

니콜라스 보일은 야스퍼에 비해 훨씬 타당성 있는 면모를 보여준다. 2004년 3월 발표한 ‘파우스트와 파우스트적인 것: 괴테와 토마스 만의 경우’를 보면 보일에게 파우스트적인 것은 파우스트의 병적 증상을 나타내며 인물에 대한 괴테의 비판적 시선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보일은 괴테의 파우스트적 인간상을 독일 교양시민계급의 병적 징후에 대한 신호로 파악했다. 그리고 괴테가 문학적으로 거리를 취하는 데서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와 비교의 토대를 마련한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 인본주의가 점차 독성이 있는 씨앗을 배태하고 있었다’고 파우스트를 그린 토마스 만은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섭취하고 있었다. 토마스 만은 자신을 배출한 조국 독일을 부인할 수 없다. 이에 비해 보일은 파우스트와 레버퀸이 독일의 운명에 대한 비유적 형상화라는 테제에 단호히 거리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데올로기화와 비판적 해석 사이의 애매한 경계
최근 논의인 요헨 슈미트·미하엘 예거의 연구들도 이상의 전통과 맥을 같이 한다. 이런 연구들이 기반하고 있는 슁스의 “이데올로기를 벗어나 냉정하게 텍스트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하긴 하지만 “이데올로기화가 완전히 끝났다”라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정치학자 오스카 넥트의 다음과 같은 최근 주장은 우리에게 시사점을 제공한다. “색깔 덧입히기와 비판적 텍스트 해석을 가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역사를 지속적으로 고쳐써야 한다는 것은 오늘날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는 새로운 사건이 아니라 새로운 견해들이 생겨나기 때문이며, 과거의 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조망·평가할 수 있는 관점들로 인도하는 ‘시간의 동지’가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우리의 것일 수 없는 시간을 살아가는 ‘동지’만이 이를 밝혀줄 수 있을 것이다.                                               

정리=김혜진 기자 khj@kyosu.net

▶ 요헨 골츠는 누구
요헨 골츠(Jochen Golz, 1942~)는 1999년부터 현재까지 3차례 째 세계괴테학회 회장을 연임하고 있는 ‘괴테의 대가’다. 예나대학에서 독문학과 인도네시아학을 전공했다. 1991년부터는 바이바르 고전문화재단 독문학 분과 편집장을 역임했다. 1994년부터 작년까지 바이마르 고전문화재단의 괴테-쉴러 아카이브 원장을 지냈다. 괴테, 쉴러 등에 관한 논문들과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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