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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 저자인터뷰] 정수일 전 단국대 교수
[이메일 저자인터뷰] 정수일 전 단국대 교수
  • 권희철 기자
  • 승인 2001.1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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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13 10:37:00

△독자 입장에서는 두 권의 책을 어떻게 분별할지 답답할 수 있을 텐데.

“우선 6년 전에 교단을 떠난 사람이 ‘교수신문’의 지면을 이용하는 것이 무리가 아닐까 망설여진다. 변변찮은 두 책을 나눠 출판하게 된 이유는 책 내용이 서로 다르고, 또 덩치가 좀 크다보니 그렇게 됐다. 모두 ‘문명교류사’의 학문적 정립을 시도해 쓴 책이다. ‘씰크로드학’은 문명교류의 통로로서의 씰크로드를 통한 교류상을 학문적으로 정리해 본 책이다. 지금까지 씰크로드에 관한 연구는 주로 교통사적 및 지역학적 접근에 머물렀지 문명교류 통로로서의 실체에 관해서는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름대로 체계를 잡아 ‘학’으로의 정립을 시도했다. ‘씰크로드학’이 문명교류사의 핵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고대문명교류사’는 통시대적인 문명교류사(즉 ‘문명교류통사’)의 고대편으로서 고대(문명교류의 시원으로부터 기원후 5∼6세기까지)에 있었던 교류의 역사적 전개를 권역별로 다루고 있다.”

△‘교류’라는 개념이 핵심인 듯한데, 기존의 연구사에 비춰 볼 때 어떤 의미가 있나.

“교류가 저술의 핵심이고 전편을 관류하는 원줄기이다. 물론 기존의 연구사에서 교류란 개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저 ‘문화의 교류’에 한정된 개념이었다. 이에 상응하게 정치에서는 관계(사)나 교섭(사), 경제에서는 교역, 군사에서는 교전이란 개념이 통용됐다. 그런데 문명사관에서 보면 정치나 경제, 문화, 군사는 문명을 구성하는 제반 요인들로서 그 개개 요인들간의 만남이나 어울림은 ‘문명교류’라는 개념으로 통괄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이러한 교류의 개념은 보다 고차원적이고 통합적인 개념이 되겠다. 여기에서 유념할 것은 문명이란 인간의 육체적 및 정신적 노동에 의해 창출된 결과물의 총체로서 그 생명은 결과물에 대한 共有이며, 문명의 교류는 본질적으로 이러한 공유성을 바탕으로 한 이질문명간의 교류란 점이다.”

△한편 ‘교류’는 실제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수평적이지만은 않다. 교류를 중심으로 보면 문화적 폭력이라든가 충돌에 대해 적절히 설명하기 힘들지 않을까.

“수평적이란 말을 ‘대등’이나 ‘동격’이란 말로 이해할 때, 교류는 결코 수평적인 것만은 아니고 수직적으로도 이뤄진다. 그것은 공존이라는 문명의 속성에 기인한다. 교류의 이러한 이중성을 무시할 때 문화적 폭력이나 문명충돌이 자행되게 마련이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폭력’과 ‘충돌’은 문명교류라는 大河의 어느 한 굽이에서 일어나는 소용돌이로서 구경은 교류에 의해 완충 내지는 무마, 흡수되고 마는 것이다.”

△한반도를 실크로드 범위에 포함시키고 있는데.

“이를테면 씰크로드의 ‘한반도연장설’인데, 나름대로 출토 유물과 기존 노선에 근거해 오아시스육로와 해로의 동단이 한반도까지 연장된 것으로 추정하고, 이에 관한 논문을 두 번의 관련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한 바 있다. 미흡하나마 그 내용은 이 두 책 속에 있다. 단 초원로의 연장에 관해서는 발표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씰크로드의 한반도연장에 관해서는 앞으로 계속 연구를 심화해야 할 것이다.”

△이 책들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점은.

“강조라고 하기보다 지향하고 싶은 것은 인류의 염원인 공생공영의 실현이나 인류 보편사(universal history)의 전개는 오로지 문명의 교류로만 실현 가능하지 않겠는가 하는 점이다.”

△현재 학회활동 등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공부하는 작업은 있는지.

“전공과 관련된 학회활동은 거의 없다. 정말로 同硯들을 만나 함께 공부하고 연구하고 싶다.”

△최근 국내학계에는 ‘탈식민주의’라든가 ‘세계체제론’ 등의 논의가 활발히 펼쳐지고 있다. 이에 대한 평가는.

“위에 말한 사정으로 인해 최근의 국내 학계 동향은 통 모르고 있으니, 유구무언일 수밖에 없다. 과문이지만, 정치적 함의가 짙은 ‘세계체제론’ 같은 논의도 문명교류적 접근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생각해본다.”

△집필하면서 불편한 점은 없었나. 또 향후 계획은.

“남들도 겪는 불편이었다. 문제는 풀라고 생기는 법이다. ‘불편’과 ‘문제’는 오히려 硏學의 기회를 제공해줬다. 또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짜놓은 것은 없으나, 지금 생각으로는 ‘문명교류통사’의 중세편과 근현세편을 계속 쓰고, ‘씰크로드학’의 속편으로 ‘신씰크로드학’을 펴내려고 한다. 그리고 이미 펴낸 ‘신라·서역교류사’에 이어 동학이나 후학들과 함께 ‘고려·서역교류사’와 ‘한국 근현대대외교류사’도 써냈으면 한다. 그밖에 자료수집이 7할 정도 된 ‘문명교류사사전’을 마무리 짓는 일도 남아있다. 몇 권의 욕심나는 외국어 원전도 번역하고 싶다. 從心의 문턱에 다가선 사람으로서 과욕 같기도 하다. 과욕은 滅慾이라고 했다. 하다가 멸하면 누군가가 뒤를 이어 해주었으면 하는 심산에서 이렇게 만용 같은 과욕을 부려본다.”

권희철 기자 khc@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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