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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기여·가족·자아실현 ‘話頭’로 … 강단의 삶 허락한 모든 것에 감사
사회기여·가족·자아실현 ‘話頭’로 … 강단의 삶 허락한 모든 것에 감사
  • 교수신문
  • 승인 2008.03.10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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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임 특집] 이렇게 정년을 준비했다_정년 전후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시사IN>발행인

“은퇴 후 3년 일하자” 자원봉사의 기쁨에 빠지다

“조직에 관련된 책 중에 『파킨슨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는데 거기 보면 ‘R-3’이라는 법칙이 있습니다. R은 은퇴라는 용어의 두문자로 뜻은 은퇴를 앞두고 3년 동안 일을 줄여나가라는 것입니다. 저는 은퇴를 앞두고 정리는커녕 일만 벌려 허둥대다가 그만 오늘 정년퇴임이라는 날을 맞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위로하고 정당화시키며 내세운 새 법칙이 ‘R+3’입니다. 은퇴 후 3년 동안은 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2007년 2월 28일 정년 퇴임식에서 제가 했던 교수대표 연설 내용 중 한 부분입니다.


정년을 앞두고 정년 후를 어떻게 준비하겠다는 생각은 거의 안한 채 하던 일을 계속하며 살고 있습니다. 은퇴 직후를 이른바 ‘활동적 은퇴기(active retirement)’라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강의는 계속하고 있습니다. 명예교수 강사료는 2배이니 그 아니 좋을 수가 없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책도 하나 냈습니다. 제 습관이 퇴임식이며 논문증정 등을 싫어하는 지라 제자들로부터 그런 것 하나 받지 않고, 대신 제가 준비했던 책 『국가의 미래』(매경출판사, 2008)를 출간했습니다. 책을 낸 동기이자 계기는 은사 故 이한빈 선생님을 기리고 당신에게 바치기 위해서였습니다. 평생 행정학을 가르치는 일방 당신이 1968년 처음 해람한 한국미래학회의 영향으로 늘 미래를 조감하고 준비하고 싶었기에 그런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나라의 미래가 학문, 대학, 그리고 정부에 달려 있고 또 이들을 새 미래 패러다임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요지의 내용을 쓴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가지는 故 박동서 은사에게도 다른 세 분 교수(김병섭, 최종원, 정광호)와 함께 책을 바쳤습니다. 『장관 리더십』을 준비해 발간했던 것은 1970년대부터 시작했던 선생님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였습니다. 한 직업과 직장을 마무리 하면서 은혜를 입었던 분에 대한 보답으로 정년 후 삶이 시작된 셈입니다. 준비를 했다면 했고 또 그렇지 않았다면 않았던 지난 1년이었습니다.


지난 1년, 정년은 해방이기는커녕 얽매임의 연속이었습니다. 정년 후 하고 싶었던 것은 평소의 조직생활에서 벗어나 그간 하지 않았던 일을 하며 자유롭게 지내는 것, 그리고 봉사였습니다. 같은 일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틀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간섭받고 싶지 않았고, 그리고 평생 은혜를 받아 살아 왔으니 남을 위해 봉사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니 해방이면서도 또 자원해 스스로를 묶는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지요.


박원순 변호사가 상임이사로 있는 ‘희망제작소’에 가서 여러 가지 활동에 참여하고, 미래 공공지도자가 될 사람들을 위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훈련하는 일들을 자원해 하고 있는 것도 스스로 자랑스러운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어렵사리 탄생한 시사 주간지 <시사IN>에 가서도 자원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명색은 대표이사이고 발행인이지만 어려운 재정상태를 고려해 무보수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제가 학교라는 공간에서 평생을 지낸 셈이지만 행정부도, 국회도, 정당도, 국제기관도 조금씩 가서 일을 한 터라 조직이라는 조직은 두루 섭렵한 셈입니다. 늘그막에 언론계에 까지 갔으니 조직이란 조직은 꽤 많이 경험한 것이지요. 그것은 여러 분야의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기도 하고요.


해방이 되고 싶어도 인간 세상에 사는 지라 인간으로부터 해방은 될 수 없나 봅니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산하 ‘좋은 책 선정위원회’에 가서 한 달에 한 번씩 각 장르 전문가들과 함께 청소년들에게, 대학생들에게, 그리고 사회인들에게 좋은 책을 골라 추천하는 일도 즐거움 중의 큰 즐거움입니다. 평생 직업이 책과 뗄 수 없는지라 퇴임 후에도 책과의 인연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지난 1년은 이렇게 보냈습니다. 그러는 일방 서울대를 중심으로 ‘미래학문과 대학을 위한 범대학 콜로키엄’도 구성해 네 차례 모임을 했고, 금년에도 네 차례 이상 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기억, 이성, 상상 등이 토대가 된 학문의 세계가 지속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고 동시에 21세기 지식체계가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기에 여러 준비를 하고 있는 일이 즐겁습니다. 미래세대를 위해 학문에서나 실천에서 그 동안 한 가지 분야에만 얽매어 있어 못했던 것을 좀 더 해 보고 싶은 욕심은 아직 사르러들질 않습니다. 매체를 통해 ‘인터넷 학교’도 하나 운영할 계획입니다.


정년은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삶과 일은 계속되는 것이고 다만 환경이 조금 바뀌는 것일 뿐이기에 변화에 적응하면 된다는 생각밖엔 하게 되질 않으니, 아직 철이 안 든 것이겠지요? 知分, 知足, 知止를 모르고 한 생을 살았나 봅니다.

 

*백인환 부산대 명예교수·산악인

퇴임뒤 백두대간 종주 "마음 비우는 공부 행복"


2005년 2월 말 정년퇴임을 했으니 벌써 3년이 지났다. 이제야 잠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우리들 세대는 복잡다단한 전환기의 시대를 살아왔지만, 건강하게 정년을 맞게 돼 축복받은 인생이었다. 지금은 연금을 받아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으니 모든 일에 감사드리는 마음이다.


먼저 내가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을 사회로 되돌려주는 일을 생각했다. 장학기금 마련이었다. 퇴임 3년 전 1억 원 기부를 선언했고, 그날로 모으기 시작해 퇴임하는 날 목표를 달성했다. 얼마 되지 않는 액수였지만 나에게는 큰돈이었다. 몇몇 지인은 만용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자그마한 주택에 살고 좋은 차도 없고 골프도 칠 줄 모르면서 교수로서 품위유지도 못하는 처지에 무슨 장학기금이냐고. 그러나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어렵게 공부했던 학창시절에 받았던 장학혜택을 되돌려주고 싶은 마음, 교수생활 30여년을 함께 했던 부산대 기계공학 특성화의 발전을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다음은 정년퇴임 기념논문집이다. 많은 연구와 제자양성의 결실로 가장 자랑스러운 자기업적의 표현이라고 생각되기에 논문집 발간은 관례처럼 돼 왔다. 그러나 개인문집을 자손들이 가보로 보존하는 의미는 있을지 몰라도, 아무도 읽고 인용하는 일이 없으니 무용지물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몇 사람만이라도 읽어주는 책을 만들기로 했다. 나의 취미생활(등산)에서 얻어진 기록과 교육현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수필 형식으로 엮어 『산을 오르며 생각하며 -기계공학박사의 산사랑 이야기』(수문출판사)를 출판했다. 판권은 농아인협회에 헌납해 출판기념회를 통해 장애인단체에 조금 도움을 줬다. 뿐만 아니라 책을 받고 밤새워 읽었다는 이도 있어 보람을 느꼈다.


또 정년퇴임식에 관한 문제다. 내가 퇴임할 때까지는 관료주의적인 형태가 수십 년간 답습돼오고 있었다. 축하객이 오고 교수들이 모이고 공동으로 거창하게 축하해 주는듯한 형식이다. 그러나 준비를 위한 행정력과 많은 예산에 비해 내실이 없는 행사가 됐다. 그래서 나는 불참했다. 그 대신 교내에 있는 호텔급 식당에 자리를 마련해 학과 교직원(60여명)을 모시고 점심식사를 대접하면서 재직 중에 주신 협조에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러한 나의 생각을 정리해 정년퇴직을 간소화하는 방안을 대학신문에 게재했다. 그 의견이 받아들여졌는지 다음부터는 정년퇴임의 방법이 다소 개선됐다.


그 후로 정년퇴임을 넘겨 명예교수의 직함을 받았다. 관례에 따라 1년간 연구실을 이용하고 몇 시간의 강의를 담당하면서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준비했다. 어떻게 하면 자유롭게 건강을 유지하면서 여생을 마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취미생활과 운동은 등산뿐이었다. 그래서 1주일에 2일은 강의시간으로 할애하고 나머지는 산을 탔다. 6월 초부터 10월 말 동안 정년퇴임기념으로 백두대간 단독종주를 완성했다. 2005년 한 해 동안 85일간 산행했다. 전공이 기계공학에서 등산으로 바뀐 것이다. 학교의 소속감에서 벗어나 완전한 자유인이 됐으니 마음도 생활도 홀가분했다.


퇴임 2년차, 연구실을 비우고 나니 갈 곳이 없었다. 우연히 A선원에 인연이 닿았다. 화두참선(간화선)을 하는 도량으로서 시설도 좋고 마음에 들었다. 선원장의 지도로 기본과정을 통해 나의 영혼을 보았고 새로운 세상을 맞았다. 매일 9시 반에 선원으로 나가 참선을 하고 점심공양을 한다. 간화선은 마음 다스리는 기법, 즉 마음 비우는 방법을 훈련하는 과정이다. 無位眞人이 되는 공부를 하고 있으니 너무 마음이 편하고 행복하다.


퇴임 3년차는 우리나이로 70세(무인생)가 되는 해. 칠순기념 백두대간종주를 2월부터 9월까지 마치고 제2의 문집을 출간할 예정이었다. 참선하는 마음으로 백두대간 길을 혼자서 묵묵히 걸었다. 그런데 6월 중순, 절반 이상을 마친 시점에 의사가 만류했다. 장거리산행을 삼가하라는 것이다. 계획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칠순을 넘기면서 죽음에 대한 신념을 확립할 수 있었다. 죽음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과정이다. 영혼은 종교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가 될 것이고, 육체는 분해돼 없어지는 것이다. 나는 죽으면 이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의 시신을 의과대학 실습연구용으로 기증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물론 시신폐기물 처리비용과 실험비용도 함께 기탁할 예정이다. 장례는 ‘백인환이 세상에서 없어졌다’는 것을 알리는 추도회 형식으로 하고, 사후에는 제사 없이 적당한 날 가족들이 모여 추모하면서 우의를 나누기 바란다. 이러한 나의 생각에 아직은 쉽게 동의하지 못하는 가족도 있지만 대화를 통해 이해를 구하고 있다.


현직에 있을 때는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으로 너무도 바쁘게 살았다. 퇴직하면 무료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것은 기우였다. 오히려 퇴임이 자아실현의 계기가 됐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됐으니 지금은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하다.

 

*김영태 전남대·윤리교육과

“겉사람은 朽敗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필자는 이따금 ‘시간’처럼 만인에게 공평하게 다가오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며 流水같고 쏜살같은 힘(세월) 앞에서 숙연해지곤 했었다. 세상에는 많은 수수께끼가 있지만 ‘시간’처럼 명확하면서도 이해하기 힘든 개념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과연 시간이 움직이는 것인지 아니면 시간은 아무 말 없이 끄덕도 하지 않고 버티고 있는데 그저 우리들과 만물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고 시간이 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인지, ‘시간’ 혹은 ‘세월’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매우 착잡해진다.


아무튼 인간의 수명과 능력의 유한함을 고려하여 이미 만들어져 시행되어 온 停年이라는 보편적 ‘퇴직’(退職, Retirement)제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따라서 우리는 이 제도를 겸허히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으며 그동안 ‘대학(교)’이라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활기차고 의미있는 터전에서 대과없이 후학들을 지도하며 읽고 싶은 책 마음껏 읽고 게다가 많지도 적지도 않은 급료를 받으면서 20년, 30년 혹은 40년을 안정된 가운데 살아온 것을 생각하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아름다운 캠퍼스, 정다운 강의실, 사랑스런 제자들, 동료교수들, 직원들-이 모두가 이제 한층 더 감사의 대상들로 느껴진다.


‘졸업’이라는 영어 단어에는 ‘graduation(졸업)’과 ‘commencement(시작)’라는 두 어휘가 있듯이 퇴직이라는 영어 단어 ‘retirement’에도 혹시 그와 같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는지를 확인해 보았으나 오직 한 가지 뜻, 즉 “the act of retiring from your job, or the time when you do this”만 있었다. 여기에는 연령과 직결되는 말이 보이진 않지만 ‘retire’라는 동사 설명에서는 “to stop working, usually because of old age, or to make someone do this”로 되어 있다. 우리말 사전에 나타난 ‘停年’의 풀이를 보아도 “일정한 나이에 이르면 퇴직하도록 정해진 바로 그 나이”로 되어 있다. 우리말 단어나 영어 단어에 해당하는 ‘정년’ 혹은 ‘정년퇴임’이라는 단어에는 아무리 눈을 다시 뜨고 보아도 ‘새로운 시작’을 함의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필자는 오히려 이 대목에서 오기로라도 정년퇴임 이후의 삶을 ‘제 2의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싶을 뿐만 아니라 확신한다. 이러한 확신은 나이 먹음의 애석함을 달래보려는 의도가 전무한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 주위에서 실제로 퇴임 후 제 2의 인생을 멋있고 성공적으로 구가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에 갖는 나의 확신이다. 교수들은 정년이 65세이니까 다른 직종에 비해 실제 정년은 긴 편이나 제 2의 인생의 기회는 짧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心, 身, 魂의 건강관리만 각별히 유의한다면 노년의 삶의 질을 얼마든지 드높일 수 있다고 본다. 필자는 이러한 신념을 실현하기 위하여 몇 가지 구체적인 방안을 가지고 있다.


첫째, 몸과 마음에 밴 일을 갑자기 중단하게 되면 나의 몸과 마음에 이상이 찾아올 것이 뻔하기 때문에 수십 년 해오던 일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하려고 한다. 연구실에 소장하고 있는 많은 책들과 자료들을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그 곳을 나의 연구실 혹은 연구소로 삼아 매일 출퇴근하려고 한다. 그래서 지금부터 적절한 곳을 물색 중이다. 그동안 이 핑계, 저 핑계로 읽지 못했던 책과 논문 등을 읽는 등 연구활동을 계속하려고 한다. 점심때에는 정다운 사람들을 만나서 때로는 자장면도 먹고 김밥도 함께 먹으며 담소를 즐기고 오후나 초저녁 시간에는 후학들이나 시민들을 대상으로 내가 열심히 공부했던 인문학 분야(철학, 윤리학, 종교학, 신학, 영어교육)를 다소나마 전파하면서 독회그룹을 이끌고자 한다.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세 번째 박사학위가 될 신학박사(Th.D)과정을 마치고 논문을 쓰려고 한다. 더 나아가 나를 필요로 하는 어떤 대학이 있다면 초빙교수같은 직분을 수행하고도 싶다.


둘째, 육체의 건강에 한층 더 유의하려고 한다. 이 일을 위해서는 그 동안 일주에 1회하던 산행을 2회로 늘리려 한다. 도보와 산행처럼 전신에 좋은 운동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셋째, 그동안 연구, 교육, 봉사라는 대학인의 3대 사명을 조금이나마 실천하다보니 가사조력에 매우 등한했었는데 이제는 가족과 가사에 대해 좀 더 신경을 쓰려고 한다. 가족과 가정처럼 좋은 것이 지상에 또 있겠는가!


넷째, 죽음을 준비하려고 한다. 우리는 보통 ‘죽음’이라는 단어조차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데 살만큼 살아온 나로서는 이제 죽음을 명백히 목전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더욱 깨닫고 좀 더 고결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즉 웰빙에서 웰다잉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노력도 기울이고자 한다. 외국에는 죽음학 강좌가 많이 있고 국내에서도 이미 ‘죽음학회’가 설립되어 죽음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이따금 죽음학회에 참석해 ‘죽음’의 의미와 방법을 배우려고 한다. 결론적으로 한마디만 더 부연한다면 St.Paul의 말 “겉사람은 날로 朽敗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의 삶을 살다가 死後의 生(after life)에 돌입하고 싶다.


*변증남 카이스트·전자전산학과 석좌교수

글쓰기·음악 공부가 있는 ‘나의 학교’ 학생 되고파

남의 얘기 같이 멀게만 느껴졌던 ‘정년’이 어느 새 일 년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내년 이 맘 때면, 30년 넘게 몸담아 있던 곳을 대과없이 마쳐 이런 저런 성취감도 있을 테다. 그러나 정년하는 날이 그다지 기다려지지는 않는다. 대학-대학원 과정을 마칠 때 가슴 설레던 졸업식 날과 달리 마음이 잡히지 않고 그렇게 신이 나지 않는 것은 왜 그럴까. 졸업이 아니라 折業이어서일까. 아니면 내 생의 중요한 반 이상을 혼과 성을 다한 곳이니, 그만큼 정든 곳을 떠나기 싫어서일까. 아니, 훗날이 불확실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철옹성 안에 살다가 대책 없이 미지의 성 밖으로 내보내지는 것 같은 기분도 슬쩍 든다.


그 동안 카이스트란 직장이 일하기 쉬운 곳은 아니었다. 몸담던 전기전자공학과에서 한 분도 아닌 세 분이나 재직 중에 과로로 타계하셨을 때가 있었다. 불현듯 정년까지 무탈하게 퇴임을 한다는 것이 무척 큰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 정년의 날이 무사히 일 년 앞으로 와 있음에 겸손히 감사해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정년까지 1년, 그 동안 나는 좋은 교수로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 해본다. 어느 선배교수의 조언대로, 내 이름으로 출판된 졸작저서들에 대해 성의를 다한 개정판을 써보겠다고 한 약속을 꼭 지켜야 한다. 학교에서는 무엇보다도 후배교수들이 내게 속마음으로 바라는 바를 살펴, 내 머무름의 끝이 깨끗하고 아름답도록 하고, 그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되도록 눈에 보이지 않는 길도 닦아 놓아야 한다. 또 그 동안 여기저기 썼던 잡문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 책이 되면, 정년의 날에 축하해 주는 손님들 앞에 놔둬 원하시면 갖고 가시라 하고, 남은 책들은 『변증남 문집』이라 이름해 자식들과 후세들에게 남겨 줄 요량도 생각해 본다.


그런데 정년이 가까워 오면서, 내 마음 한구석에 무겁게 자리 잡고 점점 끈질기게 일어나는 질문이 있다. “정년 후에 어떻게 지낼 것인가?”하는 것이다. 실은 2, 3년 전부터, 뭔가 계획을 세워보려고 스스로 꽤 애를 써 온 편이다. 그러나 딱하게도 이렇다 할 답변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 은퇴하신 선배교수 몇 분에게 같은 질문을 해봤다. 제자가 창업한 기업의 고문을 하시는 분도 있고, 자기가 설립한 연구소 책임자가 돼 풀타임으로 근무하는 분도 있다. 금년에 그만 둔 어떤 분은 외국 대학 연구교수로 간다고 한다. 다른 학교의 경우, 정년 후에 무보수로 어려운 나라에 강의와 학생지도를 하러 가는 분도 있고, 아예 전문성과 상관없이 향토 자원봉사단원이 되는 분도 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명예교수라고 불리는, 다소 나은 대우를 받는 시간강사가 돼 가르치는 일도 조금씩 하고 또 그 동안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도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갖는다는 말을 듣는다.


내가 정년 후에 이렇게 해야겠다하고 아직 결정을 못하는 것은, 아마도 무의식 속에 더 일하고 싶은 욕심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인 듯하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가능한 곳에서 교수로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몇 년 더 열심히 강의하며 연구하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또 한편 마음이 많이 쏠리고 있는 방향은, 이제부터는 그 동안의 전공과 다른,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배워가며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자유롭다는 것이 자칫 대학생 시절의 방학 때처럼, 방심이 돼 무절제·무계획으로 나태해질까 염려된다. 그런 생활은 가족이나 주변 사람에게도 짐이 될 것이다. 그래서 떠오른 생각은 사이버 가상학교(Imagined Institute)를 설립하고, 스스로 그 학교의 학생이 된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규정과 커리큘럼을 만들고 졸업요건을 정해 운영한다. 그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들은 논리학과 철학을 포함해 문학과 예술 관련과목이 중시되도록 하되, 특히 글쓰기와 음악 과목이 반드시 있도록 하고 싶다. 글 쓰는 법을 잘 배워 내가 창립에 관여한 퍼지학회와 로봇학회의 역사도 쓰고, 내 인생살이 경험이 녹아 든 소설도 써보고, 여러 훌륭한 제자들의 전기도 써서 감동스러운 글로 남기고 싶다. 음악도 정식으로 배워 노래하는 기술을 익힌 후, 가족과 친구들을 초대해 독창회도 갖고, CD도 만들어 나의 컬렉션에 넣고, 클라리넷도 배우고 작곡도 하고 싶다. 시간이 되는대로 미술 과목을 택해 야외로 그림실습을 나가는 생각도 해 본다.


그러고 보니, 정년을 맞아 그 동안의 외골수적인 행보를 일단 멈추고[停], 내게 진정한 성공적 인생이 무엇일까를 다시 따져 보는 것도 매우 의미 있어 보인다. 그래서 그것으로 앞날을 새로이 계획해 도전해 보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면, 정년이 큰 축복일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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