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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존하지 말고 映畵를 극복하라
의존하지 말고 映畵를 극복하라
  • 이유리/ 청강문화산업대·창작뮤지컬프로듀서
  • 승인 2008.03.04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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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무비컬, 어떻게 볼 것인가

2008년 한국 뮤지컬의 거센 물살은 무비컬이고 그 원류는 세계 뮤지컬 시장을 주도하는 미국 브로드웨이와 영국 웨스트엔드이다. 즉, 지금 세계 뮤지컬 시장의 대세는 무비컬이라는 것이다.

무비컬(MUVICAL)은 영화(MOVIE)와 뮤지컬(MUSICAL)이 결합해 생성된 자연발생적인 신조어다. 새로운 사회현상의 원인은 간단하다. 결핍과 욕구다. 무비컬도 마찬가지다. 창작 콘텐츠 산업의 필연적인 과제일 수밖에 없는 소재 고갈과 마케팅 투자 난에 허덕이던 세계 뮤지컬 시장이 브랜드 파워를 지닌 영화 콘텐츠를 뮤지컬 장르로 해체하고 재창조하는 시장 변화를 단행했다. 그 선두에 선 기업이 월트디즈니사였다. 자사의 성공 콘텐츠인 애니메이션영화 ‘미녀와 야수’,‘라이언 킹’을 1990년대 중반에 뮤지컬로 만들어 연타 홈런을 날렸다. 그 도전은 2005년 메리 포핀스, 2006년 타잔, 2007년 인어공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뮤지컬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를 누비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필름과 캐릭터상품과 함께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또는 세계의 각 극장에서 동시에 매일 팔리고 있다. 무비컬의 태동 배경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산업 방식인 ‘원 소스 멀티 유스(OSMU)’의 전형적인 성공 모델인 것이다.

그 성공 요인은 어디에 있을까.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본질을 간파한 월트 디즈니사가 뮤지컬 영화라는 원 콘텐트를 보유했기 때문이고, 이미 세계로 보급된 익숙한 뮤직 넘버를 가창력과 연기표현력이 뛰어난 뮤지컬 배우들에 의해 감동적인 현장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상상력의 극치가 가능한 애니메이션 영화의 볼거리가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무대 공간에서 전혀 다른 문법의 상상력으로 변형 가공됨으로서 관객들에게 새로운 판타지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고, 영화에서 결코 볼 수 없는 생동감 넘치는 화려한 군무를 제공하고 영화와 다르게 음악적 구성이 작품을 결정하는 장르적 속성에 맞는 뮤지컬 전문가를 적절히 기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미녀와 야수’에서 야수가 무대 위에서 한순간에 왕자로 변하는 마술, ‘라이언 킹’에서 영화 속의 동물 캐릭터들과 밀림이 그 콘셉트를 유지하면서도 철저히 아날로그적인 무대 문법으로 영화 이상의 스펙터클을 보이는 점, ‘메리 포핀스’와 ‘타잔’에서는 눈앞에서 와이어를 이용해 사람들이 날아다니고 ‘인어공주’에서는 무대 위가 어떻게 물속이 될까라는 궁금 점을 휠리스를 이용한 화려한 군무와 무대장치 아이디어로 해결해 영화산업의 한계를 자각한 그들의 출구가 되고 있다. 뮤지컬은 영화와 다르게 5년, 10년 간 지속적인 상연 비즈니스 구조를 지녀서 분산 투자와 수익이 가능하며 관람료도 영화의 10배에 이르기 때문이다. 감동적인 성장 영화 ‘빌리 엘리어트’도 뮤지컬의 성공으로 그 브랜드 파워를 유지하고 있는데 만약 뮤지컬화 되지 않았다면 2000년에 그 이름은 성장이 멈추었을지도 모른다. 엘튼 존이 음악을 맡아 화제이기도 했던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영화의 감독인 스티븐 달드리가 직접 연출한 작품으로도 유명한데, 대단하게도 구성에서부터 명장면의 표현 방식까지 영화 문법을 무대 문법으로 과감하게 탈바꿈시켰다. 영화의 클로즈업, 숏샷, 편집의 특성과 한 무대 위에 다양한 시공간이 공존하고 롱샷일 수밖에 없는 뮤지컬의 특성을 구분했다. 한 예술가의 장르에 대한 통찰이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를 성공시킨 것이다.

사실, 영화와 뮤지컬이 공생한 세월은 훨씬 길다. 산업혁명 이후 새로운 계급 집단인 시민 계층이 힘을 발휘하면서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서 귀족의 전유물인 고급 오페라에 대응하는 버라이어티 쇼 형태의 공연 오락물을 발생시킨 게 시작인 뮤지컬이 미국 시장 특성에 맞게 상업화, 대중화되는 과정에서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를 양산했다. 한국의 기성세대에게 뮤지컬이 낯설지 않은 것은 1970년대 말 볼거리가 별로 없던 시절 우리 안방극장을 화려하게 채워주었던 ‘남태평양’, ‘사랑은 비를 타고’, ‘쉘부르의 우산’, ‘7인의 신부’, ‘지붕 위의 바이올린’, ‘마이 페어 레이디’ 등의 뮤지컬 영화들 덕분이다.

뮤지컬과 영화가 이렇듯 공생해 온 이유는 어느 쪽이든 성공한 콘텐츠의 브랜드 가치를 상호 조달할 수 있고 그 검증에 의한 관객 확보가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적인 무비컬 상품은 대부분 영화사에서 직접 제작하고 있다. 그 물살이 거침없이 침투한 한국의 올해 무비컬 시장에서 진행되거나 준비되는 무비컬은 ‘싱글즈’, ‘라디오 스타’, ‘내마음의 풍금’, ‘미녀는 괴로워’, ‘용의주도 미스신’, ‘달콤 살벌한 연인’,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등 10편을 넘어 선다. 3월의 라이선스 뮤지컬 기대작인 ‘나쁜 녀석들’과 ‘이블 데드’도 영화가 원작으로, 무비컬은 올해 뮤지컬 시장의 30% 정도의 비율을 차지한다. 

한국 최초의 무비컬은 90년대에 제작된 창작뮤지컬 프로듀서의 양대 산맥인 윤호진의 ‘겨울나그네’, 송승환의 ‘고래사냥’ 등이지만 이 작품들은 뮤지컬 시장이 생성되기 이전의 너무 이른 도전으로 기록될 뿐이다. 뮤지컬로 적합한 영화 소재를 채택한 2004년의 ‘와이키키 브러더스’나, 지난 해 ‘발랄한 무대 언어를 실현시킨 데 힘입어 성공한 ‘싱글즈’ 등이 한국 무비컬의 본격적인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무비컬 시장은 대체로 영화를 극복하는 대형 무대 스펙터클로 뮤지컬 관객을 개척한 세계시장과는 다르게 중극장 규모로 영화의 내러티브를 단순 무대화해 영화의 유명세에 의존하는 데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그 배경에는 여전히 전문 작가, 작곡가, 연출가 등 뮤지컬 창작 인프라 극복이 현안 과제인 한국 시장 상황도 큰 몫을 한다. 그리고 영세 뮤지컬 제작사들이 검증된 영화 브랜드를 차용해 오는 형태여서 무비컬의 안정된 시장성을 위한 저작권 해결도 직면한 과제이다. 최근 그 돌파구로 문화산업 생태계에서 쇠퇴 단계에 있다는 영화산업 종사자들과 급부상하는 성장산업인 뮤지컬 제작자들이 공생 구조를 형성하기도 하는데 시스템의 결탁에서만 머물러서는 안될 것이다.

영화와 뮤지컬은 비즈니스 방식, 시장 특성, 장르 속성, 표현양식에서 엄연히 다른 본질을 지닌다. 진정한 무비컬의 완성은 그 차이를 화학적으로 재생산하는 궁극적 접근에서 비롯된다. 세계 시장의 성공한 무비컬의 속을 들여다보는 눈이 한국 무비컬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이유리/ 청강문화산업대·창작뮤지컬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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