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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고전]<23> 백낙청의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1』(1978)
[우리시대의 고전]<23> 백낙청의 『민족문학과 세계문학 1』(1978)
  • 류찬열 / 강원대
  • 승인 2001.12.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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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13 10:34:37
류찬열 / 강원대 강사·국문학

‘창작과비평’의 창간을 두고 김윤식 교수는 “아무도 이 얄팍한 잡지에 70년대 문학을 부분적으로 폭파할 폭약이 장전되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고 술회한 바 있다. 또한 고종석 씨는 “서정주는 정부다, 라고 후배 시인 고은이 선언했을 때의 그 맥락에서 백낙청 씨는 하나의 정부다”라고 평가한 바 있다. 김윤식 교수와 고종석 씨의 지적처럼 ‘창작과 비평’을 이끈 백낙청 교수는 60년대 참여론의 한계를 극복하고 7, 80년대를 관통한 민족문학론의 전위에 서 있었다.

문학적 실천 역설로 창비의 기초 마련

창비 창간호에 실린 백낙청 교수의 장편 논문 ‘새로운 창작과 비평의 자세’는 그가 창비의 창간을 주도했고 책임 편집을 맡고 있었다는 의미에서 창비의 창간 목적과 방향에 대한 출사표로서 읽힌다. 총 4장으로 구성돼 있는 위 논문은 각 장마다 순수·참여론의 쟁점들에 대한 심화된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위 논문에는 ‘문학의 순수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 ‘문학의 사회기능과 독자’, ‘한국의 문학인은 무엇을 할까’, ‘회고와 전망’이라는 소제목이 각각 달려있다. 소제목에서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듯이 위 논문은 60년대 순수·참여론의 쟁점들을 차분히 분석하면서 새로운 이론적 모색을 제시하고 있다.

위 논문을 통해 백낙청 교수가 주장한 내용을 정리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1장에서는 참여론이 순수도 하고 참여도 하자는 절충론으로 환원되지 않기 위해서는 문학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구체적 분석이 필요하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2장에서는 문학의 오락성 문제에 대한 세밀하게 검토하면서 문학적 실험성을 통해 잠재적 독자를 현실적 독자로 확보할 것을 역설하고 있으며, 3장에서는 통일의 의지가 문학하는 자세의 전제돼야 하며 우리의 문학하는 자세는 우리 삶의 전 국면에 걸쳐 있다고 주장했다.

위 논문의 중요성은 문학적 실천을 역설함으로써 창비의 이론적 심화과정의 핵심을 이루는 억압적 현실과의 부단한 싸움의 정신적 기초를 제공했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문학적 실천에 대한 강조는 그의 평판작 ‘시민문학론’으로 이어진다. 이미 ‘새로운 창작과 비평의 자세’에서 단초가 마련된 시민의식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통해 우리 문학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시민문학론’은 60년대 4·19정신의 퇴조에 대한 일종의 위기의식으로 쓰여졌다.

따라서 이 논문은 4·19세대로서의 자기 확인과 4·19정신의 회복을 위한 지적 투쟁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와 더불어 주목되는 것은 백낙청 교수가 문학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자신의 고민을 ‘시민’ 개념과 ‘시민문학’ 개념을 토대로 객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분석 방법론의 모색은 민족과 현실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줬고, 이를 토대로 민족문학론을 구상하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70년대 비평활동을 전개한 평론가 중에서 백낙청이라는 존재는 단연 돋보인다. 70년대 백낙청 비평의 성과가 집약되어 있는 평론집이 바로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이다. 이 평론집에는 그가 선취한 중요한 비평적 키워드가 무궁무진하다.

60년대 말 ‘시민문학론’을 통해 문학의 사회적 기능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한 그는 지속적으로 문제의식을 심화시켜 왔다. 민족문학론, 민중문학론, 제3세계 문학론 등으로 이어지는 7, 80년대 비평적 쟁점들 거의 대부분이 그의 작품이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김수영을 모델로 전개된 ‘시민문학론’에도 이미 맹아적 형태로 잠복돼 있던 민중에 대한 관심은 ‘민족문학 개념의 정립을 위해’에 와서는 민족문학론과 민중을 정립시키려는 보다 심화된 단계로 발전했다. 이러한 심화된 민중개념에 대한 탐구는 서구적 인식을 극복하려는 시도와 결합되는데, 제3세계 문학론이 바로 그것이다. 백낙청 교수의 제3세계 문학론은 리얼리즘론의 서구 편향을 지양하고, 독자적인 리얼리즘론을 탐색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가 됐다.

‘시민문학론’을 거쳐 ‘제3세계문학론’으로

물론 23년을 격한 현재의 시각으로 볼 때, 초기 백낙청 비평의 한계를 지적하기는 쉽다. 특히 서구적 근대를 단일하고도 유일한 근대로 상정하고 있다거나, 민족문학 담론의 폐쇄성과 배타성을 지적하거나,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이해의 단순성을 문제삼는 등 그 비판의 방향과 강도는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백낙청 비평의 현재성은 자신의 비평적 성과와 한계를 끊임없이 반성적으로 이론화하는 자기 성찰적 비평행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그가 심혈을 기울여 이론화하고 있는 분단체제론은 백낙청 비평의 원숙한 결정체이다.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을 다시 읽음으로써 우리는 백낙청 비평의 시원과 그 시원에서 발원한 커다란 강물의 도도한 깊이와 넓이를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백낙청 (1938∼)

경북 대구 출생. 경기고 졸업과 동시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브라운대에서 영문학과 독문학을 전공했고 미국 하버드대에서 로렌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6년 계간 ‘창작과비평’을 창간해 편집인과 발행인을 역임했고, 1996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을 지냈다. 현재는 서울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시민방송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민족문학과 세계문학’Ⅰ(1978)·Ⅱ(1985), ‘인간해방의 논리를 찾아서’(1979), ‘민족문학의 새 단계’(1990), ‘분단체제 변혁의 공부길’(1994), ‘흔들리는 분단체제’(1998) 등이 있다. 제2회 심산상(1987), 제1회 대산문학상(1993), 제14회 요산문학상(1997)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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