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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가 키운 베스트셀러의 시대, 역량이 문제다
미디어가 키운 베스트셀러의 시대, 역량이 문제다
  • 교수신문
  • 승인 2008.03.0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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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기의 출판소사_ ③ 2000년대의 출판사들<끝>

방송은 힘이 세다. 문화방송 오락정보 프로그램 ‘느낌표’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코너에서 선정한 국민계도 독서캠페인용 추천도서는 2000년대 초반 베스트셀러의 산실이었다. “MBC특별기획 ‘책을 읽읍시다’ 선정도서” 딱지는 놀라운 위력을 발휘한다. 그 딱지가 표지에 붙으면 판매량이 열 배, 스무 배 급증하는 건 예사였다. 예전의 베스트셀러는 더 높은 판매고를 올렸다.

‘느낌표’ 추천서의 첫 ‘수혜자’는 공교롭게도 창작과비평사다. ‘창비아동문고’를 통해 첫 선을 보인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은 방송을 타기 전에도 얼마간 독자의 호응을 얻었다. 첫 번째 ‘느낌표’ 선정도서가 되기 전까지 두 권짜리 『괭이부리말 아이들』은 2만5000부를 찍었고, 주로 전문적인 독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느낌표’ 추천도서 『괭이부리말 아이들』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그 기세를 푸른숲에서 펴낸 공지영의 『봉순이 언니』가 이어받는다. 방송을 타면서 『봉순이 언니』는 교보문고 週間판매기록을 갈아치운다. 週當 4천500부가 팔렸는데 당시 베스트셀러의 주간판매량은 400~700부 선이었다.

‘느낌표’ 선정도서는 모두 23종이다. 열네 번째 보림의 『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까지는 국내저자가 ‘행운’의 주인공이었다. 번역서는 인디북의 『톨스토이 단편선』, 현대문학의 『내 생애의 아이들』(가브리엘 루아), 동녘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바스콘셀로스), 이렇게 3종이다. 모든 선정도서가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기본이어서 필자는 독서 잡지 <책과 인생>에 연재하던 ‘베스트셀러 따라잡기’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괭이부리말 아이들』과 『봉순이 언니』를 필두로 웅진출판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박완서), 청년사의 『아홉살 인생』(위기철), 현암사의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전우익), 도솔출판사의 『야생초 편지』(황대권), 그리고 『톨스토이 단편선』과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장안의 밀리언셀러가 됐다.

‘느낌표’ 열풍 前後
2002년 베스트셀러 종합목록 상위권은 온통 ‘느낌표’ 선정도서의 차지였다. 하지만 출판 서점가에 ‘느낌표’ 광풍이 불기 전에도 화제작은 있었다. 2000년과 2001년엔 최루성 강한 대중소설이 많은 독자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밝은세상은 조창인의 『가시고기』와 『등대지기』로, 생각의나무는 김하인의 『국화꽃 향기』와 이용범의 『열한번째 사과나무』로 독자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이 시기 이른바 본격작가의 베스트셀러 소설 또한 통속성에 호소한 혐의가 없지 않은데 이룸에서, 펴낸 윤대녕의 『사슴벌레여자』와 문학동네 刊 신경숙의 『바이올렛』이 그런 ‘작품’이다.

花無十日紅이요 權不十年이다. ‘느낌표’ 선정도서의 기세가 아무리 대단하다한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게 마련. 한스미디어는 사이쇼 히로시의 『인생을 두 배로 사는 아침형 인간』으로 ‘느낌표’ 현상 이후의 서점가를 평정하며 새내기 출판사로서 만만찮은 역량을 과시한다. 고전적인 베스트셀러 이론에선 타이밍을 중요시했다. 청아출판사의 『이슬람』은 운 때 절묘하게 들어맞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9.11테러 직전 출간돼 이슬람문화에 대한 독자의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해 주었으나, 책의 완성도는 약간 떨어진다.

임프린트와 외국출판사의 국내진출
임프린트는 자회사 성격의 독립출판브랜드를 말한다. 2000년대 중반부터 제법 규모가 있는 출판사들은 출간장르의 다양화와 출판영역의 다각화를 꾀하는 측면에서 임프린트 출판을 활성화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웅진씽크빅 단행본 그룹(www.wjbooks.co.kr) 산하에는 갤리온·노블마인·NEW RUN·씽크하우스·웅진주니어·웅진지식하우스·웅진문학에디션 뿔·프로네시스·리더스북·웅진윙스 같은 임프린트가 있다. 위즈덤하우스(www.wisdomhouse.co.kr)의 브랜드로는 위즈덤하우스·예담·예담프렌드·열번째행성·조화로운삶·역사의아침·잉크·스콜라 등이 있으며, 문학동네 출판코퍼레이션(www.munhak.com)은 문학동네·문학동네어린이·애니북스·아트북스·북하우스·알마·이콘·해나무·글항아리 들이 산하에 있다.

비슷한 시기 거대 다국적 출판사 두 곳이 국내에 진출하는데 랜덤하우스중앙으로 닻을 올린 랜덤하우스는 램덤하우스 코리아로 분리 독립한다. 반면, 베텔스만 북클럽을 교두보 삼았던 베텔스만의 베텔스만 코리아는 대교출판과 제휴하여 대교베텔스만이 된다. 베텔스만 코리아는 『다빈치 코드』로 국내 독자들의 인지도를 높였다.

재출간 붐
필자는 외국 사상가의 번역서 현황에 좀 밝은 편이다. 그래선지 얼마 전, 어느 출판인으로부터 재출간도서 전문 출판브랜드의 기획위원을 맡아달라는 청을 받았다. 정중하게 사양했지만 요즘 출판에서 복간도서의 비중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마침 <한겨레 21>(2008년1월 24일자 제695호)은 관련기사를 게재했다. 이 기사에서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는 “다시 내려면 의미가 있어야 한다. 장단점을 살피고 의미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마음산책은 까치에서 펴냈던 페터 회의 『눈에 대한 스밀라의 감각』을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으로 제목을 바꿔 재출간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동녘의 『하얀 아오자이』는 『사이공의 흰옷』(친구, 1986)에서 제목만 바꾼 건 아니다. 작가 이름을 정확히 하고 작품을 온전히 복원했다. 사이언스북스를 통해 4반세기만에 다시 나온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새로운 사실을 일깨운다. 아래 인용문의 첫 번역은 뜻빛깔이 꽤 다르다.

“현대 (정치적) 제3세계의 커다란 문제는 고등 교육의 기회가 주로 부유층의 자녀들에게만 주어진다는 것이다. 부유층 출신은 당연히 현상 유지에만 관심이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일을 하여 무엇을 만든다던가, 또는 기존의 지식 체계에 도전하던가 하는 일을 매우 어려워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런 나라들에서 과학이 뿌리 내리기는 지극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대학출판부, 이를 어찌할 것인가
역사가 오래된 외국대학은 대학출판부 또한 오랜 연륜을 쌓았다. 대학출판부의 역사가 깊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 수준을 자랑한다. 정부수립 이후 하나둘씩 생겨난 우리나라 대학출판부의 역량은 많이 아쉬운 게 사실이다. 10년 전, ‘대학출판부’를 특집으로 다룬 <출판저널> 창간 11주년 기념호는 전문편집자의 부재와 판매부진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최근 한 대학출판부에서 나온 책은 얼핏 서문만 펼쳐보아도 오자가 수두룩하다. 맞춤법은 물론이고 띄어쓰기도 엉망일 뿐만 아니라 표지를 비롯한 전체적인 편집이 조악하여 책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
10년이 흐른 지금 그런 사정이 나아졌다고 보기 어렵다. 세칭 명문대 출판부에서 지난해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출간한 연구 성과물을 보자. 이 책은 문장부호 사용과 참고문헌 표기에 일관성이 없다. 공저자들은 우리말에 서툰 기색이 역력하나 편집자는 이를 손볼 줄 모른다. “고급의류점에 들려” “원리를 깨드리지” “동시에 치룰 수 없음” 같은 표현이 버젓이 나온다.

무척 안타까운 노릇이나 좌절하긴 이른다. ‘해방둥이’ 을유문화사가 건재하고 여러 출판사들의 움직임 또한 활기차다. 돌베개·그린비·궁리출판·사회평론·바다출판사·뿌리와이파리·에코의서재·책과함께·달팽이출판·산처럼 같은 곳이 그런 출판사라고 할 수 있다. 지면관계상 열 곳을 꼽았지 이보다 훨씬 더 많다.

최성일 /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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