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명한 영국의 맑스주의 비평가이자 맨체스터 대학에서 문화이론 교수로 교편을 잡고 있는 테리 이글턴이 재임용 문제를 놓고 소속 대학과 마찰을 빚고 있다는 전언이다.
2월 7일자 <가디언>이 전하는 소식에 따르면, 오는 6월 정년을 맞는 이글턴에게 대학 당국이 ‘수훈교수’(distinguished professor)의 지위를 부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글턴 본인은 이 사실에 발끈하고 있고, 주변에서도 황당한 대학 당국의 행보에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맨체스터 대학의 말은 이렇다. 이 대학은 작년 기준으로 3천만 파운드 상당으로 재정적자가 불어났는데, 이를 만회하기 위한 구조조정 때문에, 올해 정년을 맞는 이글턴도 불가피하게 그 고려대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글턴이 누군가. 1960년대 이후 영국의 비평을 이야기할 때 빠트릴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이글턴이다. 이른바 ‘이론’을 문학비평에 도입해서 인상과 정서에 의거했던 전통적 비평방식을 해체하고 새로운 비평의 흐름을 주도했던 장본인인 것이다. 맨체스터 대학이 제시하는 해임 사유가 궁색해지는 대목이다.
이런 대학 당국의 ‘핑계’보다 최근 저명한 소설과 마틴 에이미스와 이글턴 사이에 벌어진, 전무후무한 ‘문학논쟁’ 때문에 이글턴이 ‘괘씸죄’에 걸려 위기에 처한 것이라는 ‘뒷담화’가 힘을 얻고 있다. 이글턴과 마찬가지로 올해에 정년을 맞이하는 두 명의 노벨상 수상 교수들에 대한 대학 당국의 태도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은 이런 의심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맨체스터 대학은 이글턴으로부터 ‘반이슬람 작가이자 네오 파시스트’라고 신랄하게 비판당한 소설가 마틴 에이미스를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임용했는데, 이 때문에 이글턴에 대한 재임용이 영향을 받고 있다는 추측이다. 대학 당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글턴을 해임하면서 에이미스의 연봉도 올려주고, 에이미스의 심기를 거스르는 요인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에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을 테다.
물론 에이미스에 대한 이글턴의 비판은 참으로 신랄한 것이다. 이런 이글턴의 ‘까칠함’은 크리스토퍼 히친스에 대한 비판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대체로 이들은 좌파 편향이었다가 영국의 주류세력에 투항한 작가들로 평가받는데, 최근 들어 이글턴은 이와 같은 ‘변절’ 작가들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점차 높여오고 있다. 논쟁의 발단은 2006년 9월에 <가디언>의 일요판인 <옵저버>에 실린 에이미스의 ‘공포주의의 시대’라는 글이었다. 이 글에서 에이미스는 테러 방지를 위해 무슬림의 이동을 제한하고 통제해야하며, 테러리스트들을 찾아내 박멸하기 위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한다는 입장을 지지하는 태도를 취했다. 이에 대해 이글턴은 2007년에 나온 자신의 저서 『이데올로기 개론』의 개정판 서문에서 에이미스를 ‘인종주의자’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논쟁은 <가디언>으로 번져서 진행됐는데, 이글턴이 2007년 10월자 <가디언>에 “역겨운 견해를 나무라는 것은 괴팍한 짓이 아니다”는 요지의 글을 기고했고, 이에 화답해서 히친스가 “에이미스는 인종주의자가 아니다”는 옹호성 글을 실으면서 절정에 달했다. 확실히 이 논쟁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른 판단이 나올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그러나 히친스의 주장처럼, 에이미스의 글이 명백하게 근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전제하고 있다고 해도, 완전하게 무슬림을 타자로 간주하는 ‘서방의식’에서 자유롭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특히 여전히 산타클로스를 믿고 이빨 요정을 믿는 자신의 어린 딸을 예로 들면서, 서방세계의 개인주의를 찬양하는 에이미스의 논조는 순진한 느낌마저 자아낸다. 이글턴이 에이미스를 비판했던 지점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바로 이렇게 ‘탈이데올로기적인 것’이라고 믿는 그것이 바로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이글턴의 주장이다.
그 이유가 어떠했든, 맨체스터 대학이 이글턴을 수훈교수로 임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여러 가지로 상식 밖의 일이다. 특히 대학 당국이 이 문제를 ‘대학 경영’의 논리로 비화시키는 모습은 툭하면 신자유주의 개혁을 만병통치약처럼 들먹이는 작금의 현실을 그대로 비쳐주는 것 같아 씁쓸할 따름이다. 아무리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고 해도, 이런 조처가 부당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영국의 이글턴에 비견할 만한 미국의 프레드릭 제임슨도 정년을 맞은 지 오래됐지만, 듀크 대학에서 여전히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런 대가들에게 종신직을 보장하는 것은 해당 학교로 볼 때 당연한 일이었다. 따라서 안팎에서 맨체스터 대학의 행보는 의구심의 눈초리를 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번 이글턴의 사례로 인해, 앞으로 영국 대학의 정년 제도를 현실에 맞게 재정비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글턴을 둘러싼 해프닝은 돈이 되는 것만 남기고 돈이 되지 않고 귀찮은 것은 없애버려도 좋다는 그 뿌리 깊은 ‘나쁜 믿음’ 때문에 발생한 것이기도 하다. 여하튼, 신자유주의 논리가 여러 가지를 못 쓰게 만들고 있다.
이택광 / 경희대·영문학
필자는 英 셰필드대에서 ‘유토피아 사이의 심미성’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영어영문학회 편집위원, 한국비평이론학회 편집이사 등을 역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