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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수상] ‘인정 투쟁’과 ‘이질성의 포용’
[독서수상] ‘인정 투쟁’과 ‘이질성의 포용’
  • 교수신문
  • 승인 2002.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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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22 13:55:08
분석철학의 전통을 이어받은 미국의 사회윤리학은 참으로 정교하기 그지없다. 낙태에 관한 찬반 논변이나 권리의 충돌에 관한 철학적 논변을 들여다보노라면, 그 정치하고 세밀한 논리 전개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태아는 과연 잉태된 지 몇 개월 후부터 인간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인지. 아직 주체로서 자아 의식이 없는 태아도 인간으로서 권리를 지닌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산모의 권리와 태아의 권리가 충돌할 때는 누구의 권리가 우선하는지. 이처럼 인간이 ‘이성’으로 생각해낼 수 있는 거의 모든 가능한 경우들이 이들의 논변에 담겨있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그처럼 정교하고 세밀한 논변도 현실 앞에서는 무기력하기만 하다. “내편에 서지 않는 국가는 모두 적으로 간주하겠다”는 부시 대통령의 골목대장 같은 선언 앞에서 미국의 윤리학자들은 쥐죽은 듯 잠잠하기만 하다. 또 제네바 협정이나 유엔의 규정을 무시한 채 전개된 6백여명 아프간 포로들에 대한 대량 학살 앞에서도 이들은 “내가 언제 인간의 권리에 대해 고민했던가”하는 식으로 입을 다물어버린다.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효력을 발휘할 수 없는 ‘이성’이라면 과연 진리의 수호자로서 자격이 있는 것일까. 또 자기가 필요할 때만 동원되는 ‘보편’이라면 과연 ‘자기 정당화’의 구호와 다른 점이 무엇일까. 그토록 세계를 향하여 ‘인권’을 강조하며 ‘문명’의 종주국으로 행세해온 나라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이 정도의 일이었던가 참으로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하버마스는 ‘이질성의 포용’에서 “차이를 인정하는 포용”을 이야기하고, 악셀 호네트는 ‘인정 투쟁’에서 “상호주관성을 통한 차이의 인정”을 강조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자기 정체성’과 ‘주체의식’을 지닌다는 점이다. 따라서 동물의 세계에서 약자는 강자에게 자리를 내어주고도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는다. 그것이 동물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약육강식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다. 아무리 약자라도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받기 위해 투쟁하고, 심지어는 이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까지 한다. ‘존재의 이유’를 상실하고서는 살아야 할 필요 자체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작금에 진행되는 세계화는 무한 경쟁을 통하여 약육강식과 자연도태를 당연시하던 제국주의 시기 ‘사회 진화론’의 再版이다.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란 동물의 왕국에서나 통용될 법한 약육강식의 세력다툼이 아니라, 지구인 상호간의 차이에 대한 인정과 이해를 통하여 서로의 아픔과 고통에 동참하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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