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8 11:10 (목)
[화제의 책] 한길사에서 펴낸 ‘예술과 사상’ 시리즈
[화제의 책] 한길사에서 펴낸 ‘예술과 사상’ 시리즈
  • 교수신문
  • 승인 2001.12.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1-12-13 10:20:33
고대 그리스이래 전 세계 미술을 망라하는 초대형 미술사 시리즈의 초국적 출판 대열에 한길사가 합류했다. 소위 공동출판 형식으로 제작된 이 ‘예술과 사상’ 시리즈는 영국의 파이돈 출판사가 저작권 문제를 포함하여 기획·집필에서 레이아웃과 인쇄까지를 담당하고, 미국 독일 프랑스 그리스 중국 일본 등 출판에 참여한 각국의 출판사가 번역과 배급을 맡는다. 판권은 기획사 소유다. 이러한 출판형식은 저작권이 출판 비용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미술서적에 특히 많이 이용되는 방식으로, 국제 출판 시장의 새로운 흐름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시리즈는 총 140여 권으로 기획됐고, 1997년부터 지금까지 25권이 출판된 상태. 이번 달에 한길아트에서 나온 한국어판은 그 중 여섯 권으로, 사조로는 ‘다다와 초현실주의’와 ‘인상주의’, 지역으로는 ‘그리스 미술’과 ‘인도 미술’, 인물로는 ‘고야’와 ‘달리’가 포함됐다.

각 권은 일단 흥미로운 정보와 도판으로 독자를 설레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역사와 문화와 종교를 안다면 미술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한 필자의 말대로, 당대의 맥락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다. 시리즈의 성격을 “전문가를 위한 학술서라기보다는 일반독자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진지한 개설서”로 규정한 필자도 있다. 물론 전체 기획은 미술 작품을 최고의 문화적 성취물로 특권화시키는 근대적 예술관을 견지하지만, 그러한 예술관과 모순되는 각종 견해나 사실을 배제하지 않는 것도 이 시리즈의 장점 중 하나다.

‘그리스 미술’에서는 “그리스 미술가에 대한 일화들이 대부분 로마 시대 기록에 나오는데, 현대 미술가의 삶이 투자 가치를 높이기 위해 꾸며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로마인들도 탐욕스럽다고 할만큼 그리스 산 골동품 특히 조각상을 수집하면서 그리스 미술가의 생애를 멋지게 꾸며냈다”는 회의적 미술사관도 소개되며, ‘다다와 초현실주의’는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가 지금 급진적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이것들이 광고와 패션에 흔히 등장하는 언어가 되어버린 현재, 예술적 실험과 정치적 해방은 분리돼 버렸다”는 비관적 결론에 이른다.

특히 ‘인상주의’는 사조의 배경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면서도(“인상주의 회화는 중상류층의 시각적 과시문화의 전형이며, 여가와 소비와 스펙터클에 근거한 도시생활이 시각적 정체성을 획득하는 계기였다”), 인상주의 취향을 긍정하고 그 전제 철학을 지지하는(“인상주의 미술은 쾌락과 자유의 관계를 재확인해주며, 원칙을 옹호하는 것이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 유쾌한 형상을 부여했다”) 미묘한 긴장을 드러낸다.

이 시리즈의 최대 장점은 시원한 도판이다. 세계에서 가장 인쇄 여건이 좋다는 싱가폴에서 제작했고, 무엇보다 처음 보는 그림이 많다. 어쩌면 책의 주인공은 그림이고, 글은 한 권의 책으로 엮여있는 캡션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전시회 리플렛을 연상시키는 깔끔한 좌우여백도 캡션의 인상을 강화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누구나 답답하게 느끼는 상하여백. 공동출판 형식에 따라 세계의 모든 판본에서 도판의 위치가 같아야 한다는 제약이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레이아웃에 좀더 일관성이 있었다면 한결 유쾌한 감상이 되었을 것 같다.

김정아 객원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