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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계약제의 전제조건
[대학정론] 계약제의 전제조건
  • 논설위원
  • 승인 2001.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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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13 10:15:27
교육공무원임용령의 시행에 맞춰 내년부터 대학에도 계약제와 연봉제가 확산될 전망이다. 그동안 무사안일에 젖은 교수들의 직무자세를 바로 잡고 연구열을 고취시키려는 고육지책에서 비롯된 발상이다. 따라서 그 근본 취지에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교수집단만이 예외를 인정받을 수 있는 타당성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각 대학에서 부분적으로 시행해 왔던 계약제와 연봉제의 도입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가지 부작용을 고려해 볼 때 전면적인 확대실시는 득보다 실을 초래할 가능성이 훨씬 많아 보인다. 그 근본 원인은 대학사회의 특성을 무시하고 긍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한 정책 담당자들과 대학 경영자들의 성급한 강제성에서 비롯되어진다. 지금까지 짧은 기간내에 뚜렷이 드러난 부작용의 사례들을 유형별로 제시함으로써 이의 보완을 촉구하고자 한다

첫째, 계약제와 연봉제의 근간이 되는 교수의 능력과 성취도를 평가함에 있어서 각 대학의 위상과 각 학문의 특성을 세심히 고려하지 않고 거의 획일적으로 측정하는 잣대의 불합리한 설정이다. 가령 어떤 대학은 사회에 나설 기능인을 배출하는 데에 설립 취지를 두는가 하면, 다른 대학은 연구중심의 인력을 양성하는 교육목표를 가진다. 이러한 경우, 두 유형의 대학교수들은 필연적으로 자신의 직무내용을 달리할 수밖에 없다. 또한 학문의 영역에 따라서도 단기적인 연구업적을 내는 분야가 있는가 하면, 한가지 주제에 매달려 십 수년을 전념하는 분야도 있기 때문에 매년의 업적평가는 무의미할 수도 있다.

둘째,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양적평가의 부작용이다. 우선 연구업적을 일정기간내에 계산함으로써 요구조건을 채우기 위해서는 졸속한 연구성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 심지어 최근의 연구저널을 살펴보면 대학원 학위논문을 쪼개어 학생과 교수의 공동집필로 내는가 하면, 두 세사람의 교수가 서로의 논문을 공동집필한 것처럼 꾸며 총점을 배가시키는 웃지 못할 현상까지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가까운 사람끼리 십 수명이 모여 학회를 구성한 후 임용이나 승진시기에 맞춰 자비로 논문집을 출간하는 임시 방편이 유행처럼 번지는 판이다. 이러한 현상은 공동연구나 세부학문의 발전이라는 근본취지와는 동떨어진 업적 부풀리기의 편법일 뿐이다. 자칫 연구성과가 부진할 경우에는 남의 논문을 베껴 적당히 재구성하려는 경향도 엿보인다.

셋째, 교수의 업적을 평가하는 핵심이 되는 연구성과 이외에도 교내 활동이나 사회적 기여도의 항목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이다. 강의나 학생지도의 측면은 교수로서의 직무에 당연히 포함되겠지만 교내의 보직 경력이나 사회적 활동이 요구됨으로써 요즘 정부기관에는 무슨 위원회나 평가 교수단에 자기 이름을 넣어 달라는 주문이 밀려든다는 비웃음마저 사고 있다. 심지어 상당수 대학에는 발전기금을 헌금한 것 마저 평가기준에 산정하는 사례까지 있다고 한다.

위에서 열거한 유형들은 아직까지 극히 일부분에 국한된 현상이라고는 하겠지만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라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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