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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확장? 방향이 틀렸다
시설확장? 방향이 틀렸다
  • 한광야/ 동국대· 건축공학부
  • 승인 2008.02.25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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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개발 대안_ 지역사회 밀착형 대학캠퍼스

매년 매스컴에서 발표하는 살기 좋은 일등 도시인 취리히와 하이델베르그, 캠브리지, 프린스턴 등의 작은 도시들, 글로벌 경제와 문화를 주도하는 뉴욕, 런던, 보스턴, 도쿄 등의 대도시들. 이들의 공통점은 대학이 도시의 전부이고, 또 대학들이 넘쳐나는 도시들이다. 물론 대학도시에는 최근 해리포터의 성공으로 개교 600년 만에 벼락처럼 세계 최고의 관광명소가 되어버린 옥스퍼드도 있다.

우리나라 전체인구의 약 7~8%가 대(학)학생, 교원, 직원이다. 여기서 취학전 인구와 노년인구를 감하면 전체인구의 10~15% 이상이 대학교에 직간접적으로 관계된다고 예측된다.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한 유럽 대학들
지식사회와 첨단 생산활동 덕이라고 할까. 지난 1990년대 초부터 서양의 도시와 대학의 행정가들과 정책결정자들은 이러한 대학의 존재가치를 실감하며 대학을 중심으로 도시와 지역사회를 재구성해왔다. 이제 대학의 성장이 그 도시의 존폐를 결정하고 지역사회의 부와 행복을 주도하는 DNA가 됐다. 그런데 과연 대학캠퍼스는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가. 다양한 서양 대학캠퍼스의 성장궤적을 보면 우리의 그것과 현저히 다른 점들이 발견되며 여기서 몇 가지 교훈을 얻고자 한다.

첫째, 우리의 대학성장은 그야말로 개발이 목적인 캠퍼스의 시설확장이다. 여기에 기존 캠퍼스를 버리고 신도시 개발예정지로 미련 없이 이전하는 최근의 상황이 안타깝다. 하지만 모범사례로 평가되는 다수의 대학교들이 추구하는 대학의 성장이란 이런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대학과 주변의 지역사회와 일체화된, 통합된 커뮤니티의 구축으로 방향을 결정했다.

실제로 대학캠퍼스들이 지역사회의 가장 낙후된 장소와 동네로 치고 들어가고 있다. 오랫동안 해묵은 대학과 지역사회의 ‘증오의 관계(town and gown)’를 풀기 위해 버려진 초등학교를 다시 세우고, 교직원들이 지역사회에 정착하도록 주택구입 보조금을 지불하고, 저소득층의 커뮤니티를 위해 교내식당에 일자리를 만들고, 주변의 버려진 공장부지와 수변공간을 재생했다. 캠퍼스 내부를 향하던 대학건물들의 출입구가 점차 등졌던 지역사회로 옮겨서 설치됐다. “우리(대학)가 지역사회에 슈퍼마켓까지 열어주어야 하나요?”라는 위원회의 질문에 총장은 “YES”라고 말한 한 대학교의 일화가 있다.

대학캠퍼스의 성장은 정부의 정책과 시장의 개발기회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그리고 대학캠퍼스는 그 지역사회에 뿌리내리고 성장해야 한다. 나는 이를 동료교수님의 용어를 빌어 ‘지역사회 밀착형 대학캠퍼스’라고 부른다. 지역사회 밀착형의 대학캠퍼스는 낙후된 주변의 지역사회 속으로 파고들어가 지역사회의 중심이 되고 자랑이 돼 단순한 ‘그들만의’ 지적활동의 장 이상이어야 한다.

둘째, 최근 급속히 일기 시작한 대학 캠퍼스내의 민간개발 참여가 우리를 매우 불안하게 한다. “과연 우리 대학들은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 걸까? 그렇지 않으면 캠퍼스마저 무분별한 기숙사 개발로 또 하나의 고층아파트 촌으로 망쳐 놓지는 않을까?” 많은 기대 속에 적지 않은 우려도 낳는다. 무엇보다 대학의 재학생을 이용해 외지에 기숙시설을 개발하고 미래의 캠퍼스를 조성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서양의 대학은 캠퍼스의 기숙시설을 개발의 도구가 아닌 교육의 시스템으로 이해했다. 이러한 특성은 대학을 유니버시티의 정의 보다는 ‘컬리지’의 정의를 살펴봄으로 확인된다. 컬리지는 ‘일정한 규율을 정하고 이를 함께 지켜가면서 살아가는 공동체’를 의미한다. 대학은 함께 ‘먹고, 생활하고, 공부하는’ 사회적인 커뮤니티이다. 

대학캠퍼스는 사회적인 네트워크 속에서 타인과 함께 사는 방법과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는 시스템이다. 대학의 교실에서 지식이 전달되고 공유된다면, 캠퍼스는 미래 사회의 시민들이 함께 사는 방법을 배우는 학습의 장이다. 나는 몇 년 전 시험감독을 하면서, 답안지에 자기의 학번을 적지 못한 파트타임 박사과정생이 잠시 후 동기생들이 모이자 연속된 학번을 함께 확인하며 자신의 학번을 찾아내는 흥미로운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식당에서도 학생들의 대학교육이 이루어진다”는 한 기숙대학 교수의 교육철학이 있다. 이러한 캠퍼스는 떠난 후에도 애정으로 다시 찾으며, 끊임없이 기부하게 되는 캠퍼스일 것이다.

셋째, 대학캠퍼스는 그 대학이 갖는 독특한 건학이념과 교육의 철학과 방향, 가치관을 상징하는 형태와 양식의 공간이어야 한다. 따라서 이 대학과 저 대학의 캠퍼스와 건물이 같을 수 없다. 또한 대학캠퍼스는 어떤 미적 기준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건강해야 한다. 학생들의 영혼과 몸이 함께 성숙됐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기억과 시간이 구석구석 배어있는 장소들이기 때문이다. 기능상으로도 보편적이되 특별할 수 있어야 하며, 또 문화적으로도 포괄적이어야 한다. 

소음에 뒤덮인 거대한 주차장
나는 몇 년 전 한 대학캠퍼스 답사에서 지난 150년 동안 고집스럽게 고딕건축양식으로 전체 캠퍼스 건물을 지었고, 또 지금도 캠퍼스 코어에는 고딕양식으로 기숙사를 건축하는 것을 확인하고 감동한 적이 있다. “고딕양식이 우리의 교육철학을 가장 잘 상징화한다고 믿어 시작했고, 그리고 지금도 그 믿음으로 그렇게 짓는다”고 그들은 자랑했다. 100년 전의 교육철학이 시간이 지난 후 그리 많이 달라질 이유가 없다.

우리의 대학캠퍼스는 지난 1994년도부터 급속도로 볼품없는 주차장으로 변화됐다. ‘황금알을 낳는 주차장’에 대한 대학의 애착이 캠퍼스 전체를 주차장으로 바꾸었으며, 결국 전국의 대학캠퍼스가 주차장으로 변화됐다. 또한 복잡한 현수막과 광고홍보물, 그리고 교내 행사의 소음까지 혼란한 대학의 가치와 정신을 말해주고 있다. 그뿐인가. 우리의 대학캠퍼스는 기숙시설의 무차별 민간개발에 따라 빠르게 아파트 단지로 변해가고 있다. 

대학을 만들 것인가? 대학캠퍼스를 개발할 것인가? 앞으로 얼마나 더 넓은 부지를 찾아 대학을 옮길 것이며 또 얼마나 높고 큰 건물을 지어야 좋은 대학캠퍼스가 만들어 질까. 이 과정에서 대학은 지역사회로부터 멀어지고 결국 지역의 아이덴티티와 문화의 다양성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수많은 도시개발에 앞서 모두가 자랑하고 살고 싶어 하는 하나의 대학도시와 지역사회이다.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 우리사회의 부와 행복을 책임질 것이다.

한광야/ 동국대· 건축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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