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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에세이]쥐 이야기하다 ‘쥐 뜯어먹은 머리’ 안 만드신 어머니 생각 절로
[신년에세이]쥐 이야기하다 ‘쥐 뜯어먹은 머리’ 안 만드신 어머니 생각 절로
  • 교수신문
  • 승인 2007.12.31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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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는 戊子年, 쥐띠의 해라하여 쥐에 얽힌 여러 이야기들이 說往說來하고 있다. 쥐는 무엇보다 남다른왕성한 번식력을 지닌 多産하는 동물로, 지금부터 약 3천600만 년 전에 지구에 나타났다고 하니 우리의 大兄임에 두 말할 여지가 없다.

 
세계적으로 약 1천800종이나 되는 가장 번성한 고등동물로, 포유류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고 한다. 한 마디로 포유류(짐승무리) 중에서 제일 성공한 놈이다.
여기서 성공했다는 말은 살지 않는 곳이 없고(남극을 제외하고) 개체수가 많다는 뜻이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지만, 그래도 자식 많은 집안이나 나라가 昌盛한다. 중국과 인도가 말하지 않는가. 우글우글 천덕꾸러기로 여겼던 씨알들이 곧 국력이렷다! 언제나 수업시간에, ‘아들 딸 구별 말고 5에서 7명!’하고 외쳤을 적에 남학생들은 푸근한 마음으로 비시시 웃는데, 여학생들은 놀라 나자빠지면서 나를 짐승으로 취급했지. 내 이렇게 될 줄 알고, 적어도 셋은 낳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느라…….

쥐 하면 집 주위에 사는 집쥐와 들쥐, 생쥐, 시궁쥐들을 일컫는데, 다람쥐나 날다람쥐 역시 이들의 사촌뻘이 된다. 쥐는 분류학적으로 포유강, 설치목(쥐목)에 들고, 다시 다람쥐 科와 쥐 과로 나뉜다.

여기서 ‘齧齒’라는 말은 ‘갉아대는 이빨’이란 뜻이다.
쥐는 위, 아래에 끌 모양을 하는 앞니 한 쌍씩이 나있으며 그것들이 끊임없이 자라는 까닭에 그것을 닳게하느라고 계속 딱딱한 나무나 전선을 쓸고 갉아댄다.
헌데 설치류들은 딱딱하고 야문 곡식이나 열매, 나무줄기들을 먹는지라 이가 쉬지 않고 자라지 않으면 줄어 없어져서 몽당 이빨이 된다. 그럼 어떻게 되겠는가.

사람도 그렇지만, 쥐가 성공한 원인 중의 하나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아무거나 먹어대는 雜食性에 있다. 잡식성인 동물이 일반적으로 성공한다는 말이다. 사람도 요것조것 음식 가리는 사람은 성질머리가 고약하다. 쥐는 야행성으로 곡식, 메뚜기는 물론이고 배가 고프면 제 놈들끼리도 잡아먹는다.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한배에 6~7마리를 낳고, 6주 후면 젖을 떼고, 그것들이 한 달 후면 다시 새끼를 밴다니 말 그대로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흔히 ‘쥐꼬리만 한 월급’이라고들 하는데, 틀린 말이다.
들쥐꼬리는 몸길이보다 짧지만 집쥐꼬리는 몸통보다 훨씬 길기 때문에 결코 쥐꼬리를 짧다고 할 수 없다. 쥐가 징그럽게 느껴지는 것은 이 꼬리가 길어 그렇다. 뱀이나 지렁이 등 몸이 가늘고 긴 것에서 혐오감을 느끼지 않는가. 어쨌거나 쥐꼬리는 높은 곳을 감고 오른다거나 전깃줄에서 몸의 균형을 잡는데 큰 몫을 한다.

해질녘에 이쪽 바지랑대에서 저쪽 끝으로, 귀신같이 빨랫줄을 타고 쪼르르 내달리는 재주꾼 쥐!
쥐 하면 신체 어느 국부에 경련이 일어나 부분적으로 근육이 수축돼 기능을 일시적으로 잃는 현상을 말하기도 하는데 다리에 나는 쥐(cramp)도 그렇지만 필자가 가끔 당하는 위경련도 배를 쥐어짠다. 무척 아프다. 암튼 녀석들이 어둑해지면 쥐 오줌으로 얼룩진 시골집 천장에 우르르 몰려다니니, 벌떡 일어나 담뱃대로 꽝꽝 쳐서 쫓기도 했지만 ‘서생원님’하며 달래기도 한다. 놈들은 발정기면 한 마리의 암놈 뒤를 여러 마리 수놈들이 서로 차지하겠다고 그렇게 요동친다.

뿐만 아니라 광의 흙벽을 뚫고 들어가 곡식을 축내고, 다락방에 침입해 솜이불에 새끼 낳고 오줌똥을 깔겨 놓는 밉상스런 쥐새끼들이다. ‘쥐 본 고양이’라거나 ‘고양이 앞의 쥐’란 말이 있다.
쥐의 天敵은 고양이다. 사람들 사이에도 천적이 있는지라, ‘쥐뿔 나게’ 허풍을 떨다가도 그 사람만 나타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쥐구멍을 찾는다. 그런데 요새 와서 유전자에 변이를 일으켜 고양이를 무서워하지 않는 쥐를 만들었다고 한다. 쥐도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고양이를 물겠지만 그저 그래볼 뿐이다. 그런데 집에 고양이를 키우면 ‘쥐 죽은 듯’ 조용하지만 실제로 쥐는 살금살금 오가면서
고양이 집 가의 고양이 똥을 먹는다고 하지 않는가.

누가 뭐래도 쥐와 고양이는 같이 살아가는 것, 쥐가 없으면 고양이는 뭘 먹고 살겠는가.
쥐 털은 보통 검거나 회색을 내는데 별나게는 하얀 놈도 있으니 흰쥐다. 검은색소인 멜라닌을 만드는 유전인자가 돌연변이로 없어진 놈으로 실험쥐로 많이 쓴다.
동식물 이름에 ‘쥐’자는 그렇게 많이 붙어있다. 쥐똥나무, 쥐오줌풀, 쥐눈이콩, 쥐며느리, 쥐치박쥐 등이다. 쥐 눈은 작아도 새까만 것이 아주 초롱초롱 빛나고 맑다. 되레 사람 중에 몹시 교활해 잔일에도 약게 구는 얌통머리 없는 ‘쥐새끼 같은’이가 쌔고 쌨다.

우리나라 집쥐는 발정기에만 짝짓기를 하고는 헤어진다.
미국 들쥐의 한 종인 프레리밭쥐(Microtus ochrogaster)라는 놈은 암수가 일부일처로 한 평생을 같이 산다. 사실 일부일처로 사는 동물은 조류에 많고(특히 오리 무리가 그렇다) 포유류는 3%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요상하게도 금실 좋기로 이름난 원앙새도 DNA지문검사를 해 봤더니 40%는 지아비의
유전자가 아니고 어미가 새서방질을 해서 낳았더라고 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미국 들쥐도 딴 놈의 자식들이 태반이나 된다고 한다. 무릇 암놈이 건강한 수놈의 여럿 유전자를 받으려드는 것은 자연현상이다!

그리고 일부일처인 미국 들쥐의 교미시간이 다른 一夫多妻나 一妻多夫인 쥐보다 훨씬 길었다고 하는데, 긴 시간 교미를 하므로 암수의 사회적 결합력이 강해진다고 본다.
즉 성적행동은 가족의 결합력을 향상시킨다는 것이다. 또 암놈이 발정을 하는 데는 수놈의 페로몬이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하여, 인간살이에서도 肉情을 경시할 수가 없다는 증거일 터! 쥐라는 놈이 부부의 의미를 여러모로 생각해 보게 한다.

쥐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생뚱맞게도 어머니가 가위질해 싹둑싹둑 내 머리카락 잘라주던 어린 옛날이 문득 생각난다, 하나도 ‘쥐 뜯어 먹은 것’ 같지 않게 맨둥맨둥 깎아주셨던 어머니가. 서른에 나를 낳으셨으니 살아 계셨으면 올해 아흔아홉, 白壽잔치를 해드릴 터인데….

권오길 / 강원대 명예교수·동물학

필자는 중앙대에서 ‘한국산 육산패류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 『꿈꾸는 달팽이』를 시작으로 『생물의 죽살이』, 『생물의 다살이』 등의 저서를 통해 과학을 일반인들에게 쉽게 풀어 써 자연을 가까이 대할 수 있도록 하는 전령을 자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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