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8 22:25 (목)
훈훈한 감동의 손길 … 대학 발전 밑거름으로
훈훈한 감동의 손길 … 대학 발전 밑거름으로
  • 박수선 기자
  • 승인 2007.12.31 22: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진단] 대학 기부문화, 어디까지 왔나

한국사회에서 기부문화는 아직 척박하다. 말은 쉽지만 대가없이 자기 것을 내주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기부를 실천하는 이들이 대단하게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2007년 한해 동안 교수들과 독지가들의 훈훈한 기부 소식에 잠시나마 가슴이 따뜻해졌다. ‘남 일’ 같은 기부를 ‘내 일’로 실천한 이들의 사례를 통해 대학 기부문화가 어디까지 왔나 진단해 본다.

건국대 송명근 교수(의학)는 지난해 교수사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송 교수 부부가 200억원이 넘는 재산을 사회에 쓰겠다고 밝혀 화제가 됐다. 송 교수는 사회 공익사업 중에서도 심장병 연구, 소외된 노인들의 복지, 버려진 고아들을 위해 기부금을 내놨다. 송 교수는 기부 소식이 알려진 이후에도 한사코 언론의 노출을 피했다.

독지가들을 비롯한 ‘김밥 할머니’의 기부 소식이 전하는 울림도 작지 않다.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기부 정신을 실천하는 할머니들은 가진 것이 없다고 탓만 하는 이들을 부끄럽게 만들곤 한다.  지난해 4월에는 광주에 사는 이순례 할머니(85)가 전남대에  10억원 상당의 땅을 기부했다. 이 할머니는 “아들 셋 모두 전남대 의대, 수의대, 법대를 졸업해서 기왕이면 세 아들을 키워준 대학에 기부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5월에는 조명덕 할머니(74)가  한국외대에 14억 상당의 부동산을 기탁했다. 평생 홀로 식당을 하면서 어렵게 모은 자산이었다. 조 할머니는 이전에도 93년부터 매년 3천만원씩 학생들 장학금으로 기부해왔다. 한국외대는 조 할머니의 뜻에 보답하고자 지난해 신축한 법학관에 조명덕 홀을 개관하고 흉상을 설치했다. 또 익명을 요구한 60대 여성이 고대 의료원에 400억 상당의 부동산을 기부해 훈훈한 감동을 줬다. 

기부자들이 대학에 기부하는 데는 미래 세대에 기여하고자 하는 이유가 덧붙여진다. 교수들 중에 기부하고자 이가 있다면 더더욱 인재양성과 학문후속세대 지원에 마음이 동하기 마련이다. 어렵게 학업을 잇고 있는 학부생들에게, 대학원생들에게 남모르게 장학금을 주고 있는 교수들도 많다. 한승무 경희대 교수(동서의료공학)는 지난해 11월 발전 기금으로 1억원을 기부하면서 정년때까지 매년 1억원씩 기부하기로 약정했다.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훨씬 많지만 한 교수는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많이 벌어 더 많이 기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부금은 특허료 등과 연봉을 합해서 마련했고 경희대 고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쓰인다.
이정도 경북대 교수(경영학)는 회갑을 맞아 대학원생들의 장학금으로 발전기금을 기탁하기 시작했다.

“하루 한끼 먹으며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뜻 있게 쓰자고 결심했다”고 한다. 지도하는 대학원생이 하루에 학교 식당에서 한끼만 겨우 해결한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게 계기가 됐다. 이후 매년 1천만원씩 발전기금으로 출연해, 현재까지 약 5천5백만원의 기금을 적립했다. 이 교수는 올해 2월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지만 정년 이후에도 총 1억원 적립을 목표로 제자사랑을 실천해 나갈 계획이다.

강단을 떠나면서 손 떼묻은 장서를 기증하는 노교수의 모습은 후배, 후학들의 귀감이 된다. 부산대는 2007년 한 노학자로부터 7천여 점에 이르는 고서와 고문서들을 기증받았다. 이병혁 부산대 명예교수가 기증한 자료로 1천3백여 권의 고서와 3백여 점의 희귀 고문서가 포함됐다. 부산대는 그의 호 ‘于溪’를 딴 ‘우계문고’를 도서관에 설치하고 자료이용을 위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경상대에서는 황소부 명예교수가 5천여권을 기증했다. 

대학으로 기부금이 많이 몰리는 배경에는 각 대학들이 경쟁적으로 발전기금 확대에 뛰어든 것도 있다. 1천억원 발전기금 모금 달성이 총장들의 단골 공약이 됐고 1년에 수백억원의 기부금을 모으고 있는 사립대도 있다.  일등공신은 기업이다. 외연 확장 등 대학 발전을 위해 재정적 기반이 필요한 대학과 우수인재 확보를 필요로 하는 기업의 요구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기업들의 대학 발전기금 기부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행하는 장학사업의 하나이기도 하다. 지난 한해 동안에도 기업들의 대학 기부는 꾸준히 이어졌다. 지난해 11월 세중나모여행은 63억5천만 원을 고려대, 국립중앙박물관 등 교육 문화기관에 기부했다. 금호 아시아나는 지난해 11월 연세대에 50억원을 기부했다. 대한해운은 한국해양대학교에 5억원을 기탁했다. 금호건설이 건국대에 20억원을, 현대중공업이 서울대에 교육환경 개선을 위해 13억원을, 한국야쿠르트가 한국외대에 10억원을 기탁했다. 

최근에는 기부 내용도 변화하고 있다. 기업의 경우 대학내 민간자본유치사업(BTL)이 활발해지면서 건물을 지은 뒤 기부 체납하는 형식도 늘고 있다.  건국대가 2006년 전국대학 가운데서 발전기금 모금을 가장 많이 할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조선대는 지난해 5월 하정웅 광주시립미술관 명예관장으로부터 작품 89점을 기증받았다. 하 명예관장은 개교 60주년을 맞은 조선대 미술관의 연구자료로 활용하고 미대생들의 기량 발전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마음에서 기증했다.

이상헌 고려대 교수(재활의학) 연구팀은 이례적으로 연구를 통해 획득한 새로운 치료법 특허권을 기부해 화제가 됐다. 기부 금액을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특허권에 관한 이익금 중 일부는 발전기금으로 쓰이게 된다.                           

박수선 기자 susun@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