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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위원회 같은 강하고 독립적인 '고등교육위원회' 필요"
"방송위원회 같은 강하고 독립적인 '고등교육위원회' 필요"
  • 김봉억 기자
  • 승인 2007.12.31 12: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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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특별 좌담 : 새로 출범하는 ‘이명박 정부’의 대학교육, 어디로 가나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교육정책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이 당선자는 대선 공약으로 대학 자율성 확대를 강조하면서 ‘교육부 관치 해소와 기능 축소’를 강조했다. 교육개혁 과제 1순위로 교육부가 떠오른 셈이다. 지난 16대 대선에서도 교육부 개혁을 첫 손에 꼽았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작지만 강한 정부’를 지향하면서 어떻게 정부조직을 개편할 것인지 이목을 끌고 있다. 교육부의 기능 축소를 통한 ‘슬림화’ 작업과 과학기술부와의 통합여부도 관심거리다. 교육부 개편을 비롯한 대학 자율성의 실상과 대학입시제도 개선, 대학재정지원 방안, 사학비리 근절 방안 등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대학교육정책 방향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전체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섣부른 개혁 조치가 나오지 않도록 의견이 쏟아졌다.

□ 지난 2002년 대선에도 교육부 개혁이 교육정책의 핵심과제였다. 이번에는 정부조직 개편부터 메스를 든 차기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긴급 좌담회를 열었다. 대학운영 책임자인 총장과 교육학계의 대표, 교수단체 대표와 함께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대선 공약 자문 교수가 세 시간 가까이 새 정부의 고등교육정책을 전망했다.

●일시 ·장소 : 2007년 12월 27일 오후 1시 뉴서울호텔
●사회 : 이영수 교수신문 발행인(경기대 명예교수, 교육학)
●진행·정리 :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참석자 : 서정화 한국고등교육정책학회장(홍익대 교육학과), 윤정일 한국교육학회장(서울대 교육학과), 이진우 계명대 총장(철학), 최영철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이사장(단국대 일어일문학과)

사회 : ‘이명박 정부’가 대학 자율권을 확대하는 방법의 하나로 교육 관치를 대폭 줄이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교육부 기능과 권한의 축소도 예상되고 있다. 이 밖에도 대학재정지원, 대학입시제도, 학생선발 자율권, 사학분쟁조정위원회 등 고등교육정책과 관련된 얘기를 해보자. 오늘 나온 얘기들이 정책 입안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내가 장관이 된다면’이라는 생각으로 논의해 주길 바란다. 우선, 윤 교수께서 대학 자율의 역사부터 짚어 달라.

윤정일 : 해방 이후 우리나라 대학의 초창기에는 대학자율권이 컸었다. 정부의 제도가 미비한 탓도 있었겠지만 대학들이 학생선발에서부터 자율권이 있었다. 사립대에서 청강생 모집을 하게 됐는데 학생정원보다 오히려 청강생 모집이 더 많았다. 이런 기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규제정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정부 규제가 늘어난 것이다. 정부 규제는 대학들이 자초한 일이다. 정부는 학생을 염두에 두고 이런 저런 규제를 계속 늘려왔다. 최근 들어서 대학들이 정부 규제가 너무 강하지 않느냐는 지적을 하고 있다. 대학에 있어 보면 각 대학에 맡겨두면 잘 할 텐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정부는 아직도 대학이 미숙하다거나 그대로 내버려두면 그 피해가 학생들과 국민에게 가기 때문에 통제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국립이나 사립을 막론하고 세계적으로 이렇게 통제하는 나라가 어디 있나. 가장 문제되고 있는 문제가 학생선발 방법이나 ‘3불 정책’ 등 대학입시 정책과 관련해 규제가 심하다.

사회 : 대학 자율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야 하나.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이진우 : 정부 규제와 간섭이 어떤 측면에서 보면 대학이 자초했다는 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우리나라 고등교육기관의 발전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일이다. 정부에 대학자율권을 달라고 하니까 외국 대학 총장들은 전혀 이해를 못한다. 도대체 무슨 자율권을 의미하느냐고 되묻는다. 최근에 논의되고 있는 자율성이 너무 입시제도에만 국한돼 있는 것은 너무 편협한 이해다. 대학을 운영하는 데는 네 가지 필수 요소가 있다. 좋은 교수진과 훌륭한 교육과정, 교육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재정적 뒷받침, 이를 밑거름 삼아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는 것이다.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려는 것은 대학의 본능이자 주어진 과제다.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75%를 담당하고 있는 사학의 경우 교원인사권은 대학에 맡겨져 있고, 교육과정 편성 등 자율권이 많이 확대됐다. 그러나 학생선발권과 대학재정 등 핵심적인 두 가지가 획일적 규제에 묶여 있다. 입시제도는 학생선발권 문제뿐 아니라 사회정치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보완책을 강구하면서 학생선발 자율권을 보장해야 한다. 대학재정이 미흡한 상황에서 대학이 수익사업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자율성도 필요하다.

윤정일 : ‘3불 정책’ 등 학생선발과 관련된 입시제도뿐 아니라 대학 전반에 규제가 깔려 있다. 정부는 자율권을 다 넘겼다고 하지만 넓은 운동장을 놔두고 한쪽에 펜스를 쳐놓고 거기서만 놀아라고 하는 식이다.
사회 : 대학 자율성을 마치 법인의 자율성으로 오인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이진우 : 우리가 원하는 것은 ‘대학’의 자율성이다. 정부로부터의 자율뿐 아니라 대학 내적인 자율도 동시에 언급돼야 한다. 현행 체제에서는 수익사업을 하려고 해도 학교에서 할 수 없다. 학교기업을 설립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법인은 설치해 운영할 수 있으나 법인이 맡아 하게 되면 정부 규제를 사학이 자초하게 되는 측면도 생긴다. 돈 문제가 결부돼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사학에서 수익사업을 통해 남는 수익을 교육에 재투자할 수 있는 제도만 만들어지면 대학이 기업을 설립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오히려 통제할 수 있는 법인도 있고 감독관청도 있기 때문에 대학에 자율권을 주는 게 훨씬 더 구성원들에게 이익이 된다. 자율성을 강조할 때 법인의 자율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학법 (재)개정 때 외부 인사들이 이사회에 들어오느냐 마느냐를 놓고 논란이 불거졌는데 법인의 정체성을 보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다면 많은 부분을 학교 자치로 옮겨 오는 게 좋다.

사회 : 새 정부가 추진하려고 하는 정책 가운데 ‘교육부 관치 해소’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어떤 이유에서 ‘관치’라는 말이 나왔는지, ‘교육부 폐지’까지 거론되고 있는데 어떤 배경에서 나온 것인가.

서정화 : 대학이 자율성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한계가 있다. 한계가 생긴 이유는 자율성을 대학에 많이 줬다고는 하지만 대학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 우선은 대학 인사, 재정관리 등에서 불신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있다. 너무 획일적인 중앙집권적 관리에 대학이 익숙해 있지 않았냐는 것이다.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측면에서 공정성에 치중하다보니 자율성이 아무래도 제한돼 있었다고 생각한다. 학생선발을 비롯해서 재정운영, 학사관리 등 전반에 걸쳐 있다. 스스로 경쟁력 있는 교육을 하고 운영해 인력을 길러내야 하는데 그렇게 못했다. 앞으로 개방화 사회에서 대학의 자생력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율성의 폭을 넓히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의 교육운영방식은 아무래도 관료주도적인 방식에 많이 의존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관료 주도적 방식을 걷어내고 창의적이고 경쟁력 있는 인력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대수술이 불가피하다. ‘관치’라는 표현을 쓴 것은 시대적인 흐름에 부응하기 위해 강조한 의미로서 지나친 간섭으로부터 탈피해 과감하게 규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에서 ‘관치 철폐’라는 말이 나왔다고 본다. 자율적으로 대학을 운영함으로써 자생력을 높이고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주자는 뜻에서 ‘자율성 강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고 본다. 대학에서 자율성을 수용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교육부에 기대는 모습도 개선돼야 한다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윤정일 : 사실 자율권을 충분히 행사할 수 있는 대학이 있는가 하면 제대로 행사할 수 있는 역량도 없이 아직도 ‘남용’하고 있는 대학도 있다. 최근 불거진 편입학 문제도 그렇다. 자유롭게 편입생을 뽑을 수 있도록 해주니까 교수나 직원 자녀가 입학하는 걸 보면 국민들은 교육부가 감독 책임을 소홀히 한다고 지적한다. 대학도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도록 스스로 자정활동을 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도 대학에 자율권을 줘도 좋다고 할 것이다. 자율성을 줘 봤더니 이런 문제가 일어났다고 하면 다른 대학들도 할 얘기가 없다. 그래서 선별적 자율성이니 획일적 자율성이니 이런 얘기가 나올 정도다. 내가 장관이라면 무턱대고 자율권을 주기가 힘들 것 같다. 대학도 협의체 같은 곳에서 서로 감시감독 하고 투명한 행정이 자리를 잡아야 하고, 제대로 된 절차가 마련돼야 한다.

서정화 : 자율성 가운데서도 인사, 재정, 학생선발이 핵심이다. 정부에서 자율성을 확대해 준다고 해도 대학에서 활용하지 못한다면 대학과 정부에 대한 신뢰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에 정부가 전적으로 대학에 못 맡기는 측면이 있다. 앞으로 대학이 자생력을 키울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문제가 생기면 엄정하게 규제하거나 행정지도를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진우 : 일부 대학이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대학도 자율성을 행사할 수 있는 정도로 성숙하다. 비리가 발각됐을 때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적 제재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부분이 미비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관치는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정부 감독기관이 제시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법치국가가 전부 법률적으로 제재하는 것도 좋은 사회는 아니다. 큰 줄기만 정해놓고 잘못됐을 때 확실히 제재할 수 있는 문화가 정책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문제가 있으니 정부가 다 하겠다고 하면 영원히 못한다. 문제없는 나라가 어디 있나. 이런 식이라면 자율경영은 어렵다.

서정화 :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대선 공약은 대학이 학생선발시 정부가 관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학생부 및 수능 반영을 자율화하겠다는 것이다. 또 입학사정관제도, 고급심화과목제도 등을 지원하는 것이다. 대학입시 문제는 대교협이나 전문대교협에 이관해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꿔 대입전형기본계획 수립부터 이곳에 일임하자는 게 대학입시 자율화의 첫 번째 단계다. 두번째 단계는 현재 평균 7과목을 응시해야 하는 수능과목을 4~6개 과목을 선택해서 응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대학 자체 학생선발능력과 제도적 기반이 구축되었다고 판단되는 시점에서 대학입시를 완전히 자율화하겠다는 것이다. 완전한 자율화 단계에 이르기 전까지 본고사는 금지된다. 대학재정지원 집행기능도 학술진흥재단에 맡기고 교수 연구비나 학생 장학금을 늘려 객관적인 지표에 따라 지원할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이 대선공약에 포함돼 있다. 국립대 법인화도 단계적으로 원하는 대학부터 추진하도록 하고 법인화 이후에도 충분한 재정지원을 보장한다는 것이 골격이다.

이진우 : 입시제도와 관련된 교육부 기능을 대교협에 이관시키는 것은 겉으로 보면 대학 자치기구에 이관시키니까 자율권이 주어지는 것 같지만 문제는 복잡하다. 대교협은 전국 200여개 회원교 회비와 정부지원으로 운영된다. 회원 대학도 처지와 실정이 모두 다르다. 서울지역의 상위권 대학이 있는가 하면 학생모집이 어려운 대학이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수도권소재 대학과 지방대도 상당히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독일의 경우 대교협과 같은 기구의 회장은 총장을 역임했거나 그에 준하는 경력을 갖고 있는 인사가 전임제로 맡고 있다. 대교협은 국립대와 사립대가 돌아가면서 맡는다. 이해관계가 개입된다. 입시제도를 포함해 모든 사안에 있어서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적다는 얘기다. 대선 공약대로 이관된다면 대교협의 구조를 자율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편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도 동시에 제시해야 한다. 대교협에 이관만 한다고 자율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서정화 : 대교협 내의 이해관계도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이런 이유로 못 하면 항상 정부에서 결정해야 하느냐는 반론도 나온다. 자율적으로 가인드라인을 정할 수 있는 지침을 만들고 분위기를 형성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나오지 않겠나.

사회 : 그럼 교육부의 고유기능은 뭐가 남게 되나.

윤정일 : 교육부 기능 개편은 예전에도 나왔던 말이다. 초중등교육은 지방에 맡기고 대학 관련 기능은 대교협보다는 ‘고등교육위원회’ 식으로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교육부는 시도 교육청이 하기 힘든 균형발전이나 직업교육, 재정문제, 평생교육, 교육통계 정보관리, 정책관리 등을 맡아야 할 것이다. 지방교육 자치법을 보면 교육은 지방의 책임으로 이미 돼 있다. 교육부는 과학기술분야와 문화, 체육, 청소년, 관광 등 예전 문교부가 갖고 있던 기능을 통합시켜 이름은 ‘교육문화부’같이 쓸 수 있을 것이다. 교육부가 슬림화된다고 해도 고유 기능은 살아 있고 다만 업무량이 줄어들어 인력이 축소될 수 있을 것이다.

이진우 : 지금 정부조직 개편 방안 중에 하나로 거론되고 있는 교육부와 과학기술부의 통합안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일본은 문부과학성, 영국은 교육기술부로 돼 있다. 21세기는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데 교육기능을 빼고서는 과학기술자를 양성할 수 없다. 두 부처를 합쳐 얻을 수 있는 시너지 효과가 크다고 생각한다. 교육부의 슬림화는 정부부처의 중복기능을 합리적으로 통합해 효율성 있게 재편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교육부 정책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해체해야 한다’는 등의 감정적인 대응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회 :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관치행정을 줄이고 자율적 형태로 정부조직을 개편하겠다는 방향은 공감한다. 다만 어떻게 실현하느냐가 문제다.

서정화 : 시대적 요구가 자율과 경쟁기조다. 자율성의 폭을 확대할 경우 당분간 상당한 진통은 있을 것 같다. 부작용도 나올 수 있지만 불가피한 과정으로 봐야한다. 진작부터 대학에 자율성을 확대하고 보장했다면 지금쯤은 대학의 역량이 더 커졌을 것이다. 더 이상 획일적인 규제는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을 수 없는 한계 상황에 와 있다.

최영철 : 정부 조직을 축소, 통폐합해서 효율성을 높인다고 하지만 교육의 결과는 결국 미래의 경쟁력으로 나타난다. 효율성만 따져 축소화시켜 통폐합한다는 것은 협소한 시각이다. 좀 더 멀리 넓게 볼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

윤정일 : 대학 관련 기능은 ‘고등교육위원회’ 같은 곳에서 맡는 게 좋을 것 같다. 고등교육정책, 학술진흥정책 등을 맡는 교육부와는 별도의 독립기구인 고등교육위원회를 설치하고 잘못하면 위원회에서 자체적으로 징벌하는 식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관치보다는 자율 독립기구를 활용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방송위원회처럼 강력한 권한을 갖지만 자체 정화능력을 갖추고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그런 성격의 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

서정화 : 교육부를 없앤다거나 해체한다는 말은 적절하지 않은 표현 같다. 책임과 권한을 이양하고 위임하면 기능이 줄어들기 때문에 조직이 슬림화 될 것이다. 제안하신 대로 비슷한 위원회가 설치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대통령 직속으로 심의 권한을 갖춘 법정기구로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윤정일 : 대학 재정지원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예전부터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도입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법률로 고등교육재정을 확보하도록 하는 것이다. 문제는 사립대에 대한 지원 문제인데 재정지원을 받으면 정부는 반드시 통제하려고 한다. 그래서 관치란 말도 나온다. 미국 대학은 직접 지원보다는 연구비, 장학금 등으로 지원한다. 그 이유는 정부의 통제를 배제하기 위해서다. 새 정부가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제정해 대학교육비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이진우 : 대학의 염원이다. 이외에도 대학재정을 확충할 수 있는 여러 방안이 있다. 정부가 맡아야 할 부분을 대학에 넘겨놓은 것들이 많다. 국가유공자 장학금제도는 사학법인에서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국가가 지원해야 하는데 사학에 넘겨 추가적인 재정 부담이 된다. 이런 제도들만 면제해 줘도 사학에는 상당한 재정확대가 가능하다. 대학이 하는 교육사업에 면세를 적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요즘 기숙사를 지을 때 BTL 방식으로 지으면 이중 세 부담을 안게 된다. 이런 부분도 정부에서 세제 지원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겠나. 직접적인 지원이 아니라고 해도 교육사업과 관련된 세제 지원을 면밀하게 검토해 간접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는 방안이 구체적으로 모색됐으면 좋겠다. 사학에 운영비를 지원해달라는 말은 안 한다. 적어도 장학금이나 간접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또 일부에서는 사립대가 적립금을 쌓아 두고도 왜 등록금을 올리느냐고 한다. 실질적으로 재정이 넉넉해야 교육투자가 가능하다. 적립금을 자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사립대는 숨통이 트일 수 있다. 또, 사립대와 국립대가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사회 : 사립대 적립금의 주식투자가 가능해졌다. 그런데 정작 불안해서 잘 안하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윤정일 : 적립금을 쌓아두기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활발하게 교육투자가 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쌓아놓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

사회 : 대학재정지원과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공약은 또 무엇이 있나.
서정화 : 취업 100% 대학프로젝트에서 밝힌 대로 취업률이 높은 대학에 재정지원을 더 하겠다는 공약이 있다. 학생들 취업에 더 신경 쓰라는 얘기다. 똑같이 지원하지 않고 평가인증을 받은 대학에 성과중심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저소득층 학생 대상으로 장학금을 제공하는 ‘맞춤형 장학제도’도 제시했다. 학자금 융자제도를 강화해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등록금 무이자 융자를 늘리도록 했다. 또 하나는 대학에 대한 기부금 세액공제다. 국회의원들에게 후원하면 10만원 돌려받는 것과 유사한 제도를 대학에 도입해 기부금을 늘여 교외 장학금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내용이다. 또 연구비 지원 규모도 늘리고 철저한 경쟁원칙에 의해 배분하고, 인센티브를 높여 간접비 비중을 50%까지 단계적으로 높이겠다는 등이 재정지원 방안이다. OECD 국가 평균 1.1% 수준까지 올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회 : 실현 가능한 방안인가.

윤정일 : 관건은 GDP 대비 6%의 전체 교육재정을 확보해야 한다. 대통령의 결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을 제정하면 교육재정이 상당히 늘어나게 된다. 이런 재정확충이 전제돼야 이 당선자의 공약 실현 가능하다. 고등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제경쟁력이다. 교육재정도 부족하지만 학생 1인당 교육비, 외국인 교수·학생 수 등 국제화 수준이 여전히 미흡하다.

 
이진우 : ‘취업률 100%’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취업률을 따질 때 대학을 세분화시키는 게 필요하다. 연구중심대학과 교육중심대학을 나눠야 하고, 교육중심대학 중에서는 연구를 병행하는 대학, 그렇지 않은 대학이 있다. 또 산학협동을 통한 현장중심 교육을 중점으로 하는 대학이 있다. 취업률은 대학의 성격에 따라 달리 적용돼야 한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고용효과가 늘어난다. 대학문제는 아닌 것 같다. 취업을 고등교육기관에 요구한다면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현장 중심적 교육을 하라는 얘기일 것이다. 획일적인 취업률을 요구하는 것은 하나의 ‘관치’다.

서정화 : 취업률 20% 미만 대학이 95개, 80% 이상 대학이 20개 정도다. 취업률을 높이는데 신경을 더 써달라는 것이다. ‘취업률 100%’라고 표현한 것은 대학마다 취업률 목표를 더 높이자는 취지가 아닐까.

최영철 : 취업률을 높이려면 일자리 창출 등 사회경제적인 여건과 함께 잘 조정을 해줘야 하는데, 이런 것은 안 해놓고 취업률만 무조건 올리라고 해버리면 모든 책임을 대학에 전가하는 것이다. 국가가 대학에 강제하면, 대학은 다시 학과별로 강제하게 된다.

이진우 : 일부 대학은 각 학과, 교수별 재정지원 방식을 학생등록률로 결정한다. 취업률로 추가 재정지원을 하게 되면 이제 교수들은 학생모집 하러 고등학교로 가고, 취업률 올리려고 현장 기업체까지 가게 된다. 교수가 제대로 된 교육과정을 이끌 수 있겠는가. 아니다. 사회가 대학에 요구하는 것은 현장에 필요한 어떤 지식을 시대 흐름에 맞게 연구해 달라는 것이고, 우수학생을 유치할 수 있는 맞춤식 교육과정을 제공해 달라는 것이다.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본다.

윤정일 : 기술 수준이 급격히 변화고 있는 실정이다. 변형이 가능하도록 제너럴 스킬을 기르는 게 필요하다. 모든 대학이 맞춤형 교육을 하기엔 곤란하다.

사회 : 대학이 너무 많다. 대학설립을 자제할 필요가 있지 않나. 

윤정일 :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수요는 공급을 창출하고, 공급은 수요를 창출한다. 21세기 정보화 지식기반사회는 고급인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부강한 나라가 될 가능성이 크다.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직업을 만들고 또 적응할 수 있다. 

서정화 : 현실적으로 고등교육 진학률이 82.8%로 세계 최고다. 이미 지방 전문대학 중에 60~70%밖에 못 채우는 대학이 많다. 경영이 어려운 한계 사립대의 퇴출제도가 공약으로 제시돼 있다. 평가인증을 받지 못하고 경영이 힘들어 존폐위기에 놓여 있는 사립대의 경우, 퇴출 기준을 만들어 법률적, 재정적 인센티브를 마련해 구조조정을 촉진하겠다는 방법이다.

사회 : 대학입시제도 개선은 어떻게 생각하나.

윤정일 : 대학에 맡기라고 말하고 싶다. 입시철만 되면 정부에서 틀어쥐고 있다. 입시제도와 관련해 ‘3불 정책’을 말하는데 본고사의 경우는 대학자율에 맡기더라도 본고사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할 수 있다. 고교등급제는 고교별 차이와 특성을 인정하는 제도라고 해야 한다. 기여입학제의 경우는 사회정의에 어긋난다고 해서 금지하고 있지만 고교등급제나 본고사 금지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서정화 : 사실 입시제도를 교육부에서 많이 관여하고 간섭하게 된 것은 초중등학교교육의 정상적 운영, 기획균등 실현, 교육의 질관리 등 국가적인 관점에서 이제까지 움켜쥐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15번인가 바뀌었다. 이제는 대학에 자율 역량을 길러주고 맡겨야 한다. ‘3불 정책’을 폐지하자는 게 아니다. 대학입시의 자율화다. 3불 정책과 대입자율화는 서로 다른 것이기 때문에 병립할 수도 있다. 기여입학제와 같은 경우 국민정서를 고려해 시간을 가지고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진우 : 기본적으로 대학에 맡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양한 입학사정자료를 개발해야 한다. 지금은 고교 내신을 믿지 못하고 유일하게 믿는 게 수능인데 이번에 총점이 공개가 안 돼 혼란을 겪고 있다. 하나 틀려 당락이 결정된다면 어느 지원자나 학부모가 동의하겠나. 입학사정자료를 다양화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공교육을 강화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윤정일 : 평준화제도에 문제가 있다면 사학은 평준화에서 해소시켜야 한다. 원래 사학의 특징을 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평준화제도를 원하지 않는 사학은 자사고처럼 학생을 자유롭게 뽑도록 하고 일반고교는 사교육비 감축을 위해 입시준비를 철저히 시키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 학교에서 못하게 하니까 학원가서 공부한다. 시험을 보고나면 진학담당 교사에게 묻지 않고 대성학원, 종로학원 기획실장을 부른다. 이런 나라가 어디 있나.

사회 : 고등학교 교육 정상화도 중요하다.

이진우 : 모든 대학에 연구년 제도가 있다. 지금 교수들의 연구년 제도 활용 목적이 많이 바뀐 것 같다. 자녀 교육 때문에 나가는 경우도 많다. 연구년 나갔다가 기러기 아빠가 돼서 돌아온다. 재정부담도 클 뿐더러 마음도 반으로 나눠져 있다. 방학 때면 자녀들과 함께 외국에 나가 있다가 학기 시작 직전에 돌아오는 교수도 있다. 고등학교 교육 부실문제는 고등교육기관에도 커다란 손실이다. 제대로 된 고등학교를 만들어야 하고, 대학도 제대로 된 대학을 만들어야 한다.

윤정일 : 고등학교를 경쟁적으로 키워야 한다. 외국 사립학교가 들어와도 경쟁해서 이길 수 있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귀족학교도 생길 수 있다. 대신 저소득층 학생을 뽑고 장학제도도 확충해야 한다. 공립학교 망하니까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사립학교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면 공립학교도 자연적으로 경쟁력이 올라갈 수 있다.

 
이진우 : 국제학교 설립도 검토했었지만 현 상황에서는 인가가 안 된다. 영어로 교육하는 국제학교 만들면 인재 배출과 함께 학생들이 외국에 안 나가도 된다. 다양성이 관건이다. 자율은 다양성에 바탕을 두고 이뤄진다.

사회 : 교육부가 올해 주요 과제로 추진하려고 했던 고등교육평가원 설립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윤정일 : 대교협에서 주기적으로 평가하고 그 기능을 좀 더 보완하는 방향이 좋을 것 같다. 정부가 주도하는 새로운 평가기구를 만들어서 얼마나 더 쥐어짤 생각인가. 대교협도 그동안 미흡한 점이 많았지만 노하우를 많이 쌓았다. 평가인증까지 하느냐는 더 논의해 봐야 할 문제지만 고등교육평가원처럼 새 기구를 만들 필요는 없다.

이진우 : 대교협은 이해관계 때문에 제대로 평가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심을 불식시킬 수 있도록 공공성을 확대하자는 차원에서는 가능하다고 본다.

 
사회 : 마지막으로 새 정부에 꼭 바라는 게 있다면.

이진우 : 참여정부가 가장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정책 중 하나가 지역균형발전정책이다. 새 정부도 고려해야 할 중요한 정책이다. 수도권에 너무 집중이 될 때 나타나는 사회적 폐단도 크다. 지역 인재들이 지역에서 활용될 수 있는 고등교육과 지역의 경제구조를 연관시켜 지방대가 발전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해 줬으면 좋겠다. 지역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가 지역에 마련된다면 이런 문제를 해소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지방대에 돈을 많이 쏟아 붓는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장기적인 틀을 마련해야 한다.

최영철 : 무엇보다 교권이 확립돼야 사교육비 절감은 물론 공교육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립대 경영 투명성도 필요하다. 재임용심사에서 탈락하면 다시 복귀하기가 쉽지 않다. 이와 관련한 후속조치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교권이 훼손되지 않는 장치를 마련하고 사학법도 손질해 다시 개정했으면 한다.


윤정일 : 가장 핵심은 교육재정 확보다. 다른 것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GDP 6% 이상 교육 재정을 확보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GDP의 6% 확보하는 일을 소홀히 하면 고등교육분야 공약 실천은 힘들어 질 것이다. 교육수준을 글로벌 기준에 맞춰 향상시키는 작업도 서둘러야 한다.

서정화 : 교육에서 두 마리 토끼가 형평성과 수월성이다. 이명박 당선자는 수월성을 많이 강조할 듯하다. 형평성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를 적절히 조화시켜야 할 것이다. 경쟁도 좋고 자율도 좋지만 이와 동시에 교육복지라든지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 균형발전 등 중요한 가치를 접목시켜 새로운 교육운영 패러다임을 구축해야 한다. 또 이명박 당선자도 본질을 직시하고 원칙에 충실하면서 변화와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또 섬기는 리더십을 발휘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는 경영자나 행정가들에게도 매우 시사적인 내용이라고 본다.

사회 :  오늘 이 좌담에서 오고간 깊은 고뇌의 목소리가 한국 대학의 자율·책임 확대에 어떤 형태로든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오랜 시간 좌담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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