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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리니지’를 아시나요?
[문화비평]‘리니지’를 아시나요?
  • 교수신문
  • 승인 2007.12.24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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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게임을 해보셨는지요? 플레이스테이션, 닌텐도DS, PSP, 컴퓨터, 상관없습니다.
이른바 비디오 게임, 그 중에서도 롤플레잉 게임이나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을 해보셨는지요. ‘파이널 판타지’류의 RPG, 다마고치류의 애완동물 키우기 게임, 그리고 최근 심즈류의 생활 시뮬레이션 게임 등등 말입니다. 혹 아니시라면, 자식들과 다툼은 없으셨는지요. 게임의 ‘가짜’ 주인공을 키우기 위해, ‘진짜’ 시간을 허비하는 자제분들과 말입니다.

오늘날 소위 비게임세대와 게임세대의 갈등과 대립은 얼마나 흔한 일인지요. 한 번 상상해볼까요.
어머니가 계십니다. 우리 자신일수도, 아니면 말 그대로 우리의 어머니일 수도 있습니다. 그 분이 보시기에, 자식과 연관된 가장 중요한 일은 열심히 공부해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렇기에 힘찬 내일을 위한 충분한 잠은 기본이지요. 그런 어머니께서 자식이 밤 열두시까지 게임에 몰두하는 것을 보셨다고 해봅시다. 맨 처음의 반응은 차분한 타이름입니다. “얘야. 컴퓨터 끄고, 그만 자야지.”

여기서 멈추면 얼마나 가족이 화목할까요? 하지만 게임은 자녀를 착한 아들딸로 만들지 않습니다. 시간은 왜 또 그렇게 빨리 흐르는지요. 밤 두세 시가 되는 건 순간입니다. 그 때, 잠드셨어야 할 어머니가 어쩐 일인지 방문을 여시고 ‘폐인’화된 자식을 보셨다고 해봅시다. 어머니의 반응은 어떨까요? 이 지경에 이르면, 어머니의 반응은 대부분 즉각적이고 원시적입니다. 컴퓨터의 코드를 일거에 뽑으시는 거죠. 가끔은 언어적·물리적 폭력과 함께 말입니다. 그 때 자식의 반응은 어떨까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곱게 잠자리에 들까요? 아니지요. 차라리 칠흑의 암흑이지요. 세이빙 포인트를 찾지 못해 미처 저장도 못했는데, 그 동안 애써 모은 아이템, 공격력 500/내구력 무한의 그 막강한 화염검은 어쩌란 말입니까. 無로 돌아간 순전한 徒勞. 다시 반복해야 할 가시밭길, 다시 처단해야 할 그 무수한 괴물들. 허무한 운명에 대한 자식의 분노는 마침내 아파트 전체를 울리는 절규의 한 마디로 토해집니다. “엄마~~!!”
 

참으로 그렇지요. 비게임세대가 볼 때, 환희와 분노, 슬픔과 좌절 등 격한 감정의 분출은 실생활에서 현존하는 대상과의 접촉을 통해 야기됩니다. 애완동물의 경우도 마찬가지지요. 우선 애완동물이란 무엇입니까.
살과 뼈로 만들어진 것. 안으며 진짜로 따스하고, 아플 때엔 진짜로 병원에 데려가며, 놀아줄 땐 진짜로 꼬리치는 것. 진짜로 배설물을 여기저기 흘려놓기에 가끔은 진짜로 혼나는 것. 이것이 애완동물이며, 감정의 교류란 바로 이 같은 진짜와의 만남을 통해 생겨나는 거지요.
 

그렇기에 비게임세대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째서 그들의 자녀가 가짜 애완동물에 그토록 중독되는지. 코드가 뽑혀 컴퓨터의 가짜 인물이 갑자기 사라졌을 때, 그들이 왜 그렇게 광분하는지. 심즈 시리즈의 주인공은 밥 먹고 일하며, 심지어 사랑하고 결혼해 아이까지 출산하니까요.

차이는 단지 그들의 삶이 모니터 상에서만 이뤄진다는 점인데, 바로 여기서 비게임세대와 게임세대의 갈등이 비롯됩니다. 비게임세대가 볼 때, 이 모두는 코드가 뽑혀지면 소멸될 ‘버추얼’의 가상세계입니다. 하지만 동물을 기르고 주인공을 성장시킨 게임세대에게, 이 모두는 ‘리얼리티’의 실제 세계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교차와 융합! 오늘날 가상현실의 세계가 리얼해질수록, 바로 ‘그 넘의 컴퓨터’ 때문에,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현실에서 벌어집니다. 아이템 현금거래가 그 좋은 실례인데, 리니지 2 게임에서 사용되는 물리공격력 581, 마법공격력 132, 공격범위 500의 드라코닉 보우-포커스는 무려 천사백만 원에 판매됐다고 합니다. 참으로 기막힌 세상이지요. 온라인상의 분쟁이 오프라인에서의 실제 싸움으로 비화되기도 하고, 악성댓글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이 생겨날 정도니까요.

문제는 코드를 암만 뽑아도, 컴퓨터의 자판기를 암만 치워버려도,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해결의 출발점은 이해와 인정입니다.
가상현실은 또 다른 현실이며, 거기 그곳에서의 희로애락은 여기 이곳에서의 희로애락만큼이나 실재적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를 통해 단절된 두 세대 간의 소통과 대화가 시작되며, 바로 그 때서야 우린 이 버추얼 리얼리티 시대의 ‘새로운’ 문제들을 풀기위해 손잡을 수 있으니까요.

김현식/ 한양대·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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