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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복지국가인가? … 진보의 고민 밝히다
‘어떤’ 복지국가인가? … 진보의 고민 밝히다
  • 교수신문
  • 승인 2007.12.10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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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강평기]사회경제학계 공동학술대회 ‘대한민국, 시장국가인가 복지국가인가’

지난 달 30일 국민대에서 진보적 사회경제 학술단체들이 모여 ‘대한민국, 시장국가인가 복지국가인가’를 주제로 전환기 한국사회를 진단하는 자리를 가졌다.
경제·노동·복지 분야의 진보적 학술단체들이 함께 모여 교류하고 연대하는 공동 학술 대회가 출범한 것은 3년 전인 2004년부터였다. 이런 자리가 마련된 바탕에는 길게 보아야 할 대안 체제든 당면 대안 정책이든 경제, 노동, 복지라는 세 축이 상호 연계되면서 ‘보완성’을 가져야 한다는 공통된 문제의식이 있었다. 한국산업노동학회, 한국사회경제학회, 한국사회과학연구회, 비판복지학회, 대안연대회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참여사회연구소 등의 참여를 시작으로 올해로 4회를 맞았다. 올해는 최근 창립된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참여가 돋보였다. 공동 주제 발표와 토론 시간이 대폭 늘어난 것도 큰 변화였다.

위기의식 또는 대안적 복지한국의 길
이번 대회 ‘시장국가인가 복지국가인가’라는 주제에는 한편으로 신자유주의적 재편의 완성으로 치닫는 시장 한국의 어두운 진로에 대한 짙은 위기의식이, 다른 한편으로 혁신주도 경제와 사회경제적 시민권이 선순환하는 대안적 복지한국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는 요청이 짙게 배여 있다. 짧게는 97년 이후 10년, 길게는 87년 이후 20년을 어떻게 볼 것인지가 문제의 중심에 놓여 있었다.
대부분의 발표자들은 97년 이후 자유주의 정부가 양극화 심화와 시장국가의 길을 닦아 놓았다는 견해를 보였다.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사회학)는 축적 체제 자체가 자유시장적 자본계급 전제주의로 짜여 조정양식면에서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는 실패가 예정돼 있었다고 보았다.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원은 한국이 자산운용 특화 금융허브를 겨냥하는 금융 빅뱅을 시작했고, 이는 금융 부문만의 변화가 아니라 한국경제와 사회 전반에 걸쳐 새로운 개방시장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내다 보았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경제학)는 자유주의 정부에서 조세정책은 감세가 기조였다고 짚었다. 이에 대해 토론자였던 이재은 경기대 교수(경제학)는 ‘자본감세·노동증세’가 더 정확한 말이라고 고쳐 주기도 했다. 이상이 제주대 교수(보건학)는 참여정부에서 양극화 성장체제가 구조화, 내재화되면서, 보통 사람들은 민생의 5대 불안(일자리 불안, 보육 및 교육 불안, 주거 불안, 노후 불안, 건강 불안)으로 고통 받게 됐다고 힘주어 말했다. 정준호·이병천 강원대 교수(경제학)는 또 다른 각도에서 한국의 ‘탈추격’ 생산-복지체제가 인간 배제적이고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체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동 주제 발표가운데 홍장표 부경대 교수의 견해는 상당히 달랐다. 그는 양극화 성장체제는 이미 87년 이후 출현했고 97년 들어 심화됐다고 설명했다. 또 시장의존형 개혁은 불균등하게 진행되었으며, 그 때문에 양극화 원인도 주주자본주의로 돌리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고임금-고생산성 부문에서 저임금-저생산성부문으로 저진로 산업 구조조정이 일어났다는 견해도 흥미로왔다.
그렇다면 대안은 있는가. 혁신 주도 성장, 양질의 일자리, 그리고 보편적 복지가 선순환하는 대안의 길이 논의되고 토론됐다. 홍장표 교수는 고진로 성장경로 진입을 위한 혁신과 사회통합의 산업정책을 제시했는데, 이는 혁신투자와 인력 개발투자가 활성화되도록 하는 중소기업 관계금융 체제, 평생 교육 훈련 체제를 포함하는 것이다. 정세은·이상이 교수는 사회투자국가론을 비판하면서, 이미 『복지국가혁명』이라는 저작에서 선보인 바 있는 ‘역동적 복지국가’의 정책 대안을 제출했다. 이것은 아동·여성 복지, 노인복지, 사회서비스, 보편적 의료보장, 교육복지, 노동복지 전반을 아우르는 방대한 프로그램이다. 이들은 적어도 필요 재원의 절반 정도는 재정의 효율화와 재배치, 조세정의의 확립을 통해 조달가능하다고 낙관한다. 정준호·이병천 교수는 배제된 자들에게 공평한 시민적 몫(stake)을 쥐어 주고 공적 협력을 위한 경험과 훈련을 쌓는 질적 단절을 통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종합 토론에서는 다행히도 큰 합의가 있었다. 그것은 대한민국이 사람에 투자하는 사람중심 경제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경제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재벌 개혁과 북구형 사회복지국가
그렇지만 역시 재벌 개혁 문제가 뜨거운 감자였다. 장상환 경상대 교수(경제학)는 재벌과 외국자본이 ‘긴장적 협력 관계’에 있고, 이들이 힘을 합쳐 중소기업과 노동자를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재벌 체제를 해소하고 북구형 사회복지국가로 가야한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홍종학 경원대 교수(경제학) 또한 재벌개혁의 중요성을 역설했는데, 그는 보편적 복지보다는 학습복지와 교육 혁명에 더 방점을 찍었다. 그가 이날 토론에서 문국현 후보를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노동자의 경영 참여와 성과 공유에 대해 언급한 것은 흥미로운 대목이었다.
한편 정승일은 사람중심경제와 보편적 복지국가로 가야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하면서도 다분히 주주자본주의 대 재벌의 대립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보였다. 그가 보기에 반독점 규제에 대해 엄격한 것은 미국 민주당식 진보이고 유럽의 사회민주당들은 반독점에 대해 실용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종합 토론은 삼성 비자금사건이 진행중인 상황에서 한국사회의 진보적 전환을 위해 재벌 개혁이 어떤 중요성을 갖고 있는지, 뿐만 아니라 그것이 어떤 복합적, 중층적 전선을 갖고 있는지를 다시금 일깨웠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이번 공동 학술대회에는 ‘어떤 복지국가인가’라는 물음을 갖고 깊이 파고든 글들이 발표됐음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비정규직, 실업, 빈곤 문제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서 한국의 실정에 맞는 기본소득 모델을 제시한 조정재 경북대 강사(경제학)의 대안 고용 모델론, 탈상품화 영역의 확대와 노동시간 단축 및 일자리 나누기 등을 통해 삶의 방식을 새롭게 재구성해야 한다는 강수돌 고려대 교수(경제학)의 문화사회- 민중복지론이 주목된다. 또한 최근 교육부와 전경련이 합작하여 경제 교과서를 만드는 해괴한 일이 벌어졌는데 이를 비판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장상환 경상대 교수의 글이 발표됐다는 것, 그리고 국내 경제학자로서 최초로 <사이언스>에 논문을 발표해 세계학계에 한국경제학자의 존재를 알린 최정규 경북대 교수가 자신의 논문을 소개하고 동료의 논평, 격려와 함께 시샘(?)을 받기도 했다는 소식을 같이 알려 드린다.

이병천 / 강원대·한국사회경제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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