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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새로운 휴머니즘을 위하여
학이사:새로운 휴머니즘을 위하여
  • 박호성 서강대
  • 승인 2001.11.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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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1-27 10:07:16

역사적으로 볼 때, 앞으로의 세계는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는 ‘개인주의’와 개인에 대한 개입을 통해 공동체적 결속을 지향하는 ‘집단주의’또는 ‘국가주의’의 대결로 점철되리라 예측된다. 이런 의미에서 세계사적 성감대인 한국사회는 지금 이중적 시련에 봉착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요컨대 상호모순관계에 빠져있는, 서로 얽히고 설킨 두 과업이 동시 해결을 촉구하는 사회적 문제로 자리잡고 있다는 말이다.

곧 개체적 자유회복과 집단적 연대구축의 동시적 구현이 바로 그 과제다. 한국인은 작게는 가문, 혈연, 문벌, 학연, 크게는 지역공동체와 민족공동체에 이르기까지 그 규모에 따라 유형과 속성을 달리하는 다양한 공동체에 연루되어 그 집단의 자의식에 지배당하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인의 이 소집단 애국심은 타집단에 대해 가지는 불신, 경계심, 공포심과 자기 집단에 대해 지니는 무조건에 가까운 아량, 이해심, 무비판적 종속감 그리고 무분별한 정실주의로 나타난다.

우리는 지금, 마치 유럽의 근대사에서처럼, 이러한 집단적 신분질서로부터의 개인의 해방, 즉 개체적 자유회복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인간적 공생과 민족적 연대를 회복하기 위해 개인의 진정한 해방위에 우뚝 선 공동체주의에 호소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는 요컨대 개체적 해방을 지향하는 개인주의와 집단적 연대구축을 촉구하는 공동체주의를 동시에 추진함으로써 인간적 해방과 인간적 연대를 동시에 실현하는 균형잡힌 사회체제를 구축해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유럽과는 달리 우리 민족은 휴머니즘 시대를 체험한 적이 없다. 그런 민족에게 ‘인연’이란 것은 지극한 인간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옷기만 스쳐도 인연’이라 하지 않았던가. 과연 이보다 더 지독한 인간 사랑이 또 어디에 존재할 수 있겠는가. 서양인들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살벌하게 가르쳤다면, 우리 선조는 ‘이웃사촌’이라 일렀다. 얼마나 정답고 훈훈한 인정이었겠는가. 우리들에게는 바로 이 ‘이웃 사촌’이라는 따스한 삶의 정서가 곧 종교의식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인간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인간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하는 것에만 전념해왔다. 이를테면 우리는 서로 돕고 아껴야 할 이웃을 관리의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참담한 ‘경영학적’현실 속에 살고 있다는 말이다.

르네상스 시대 최초의 역사적 휴머니즘은 신으로부터의 인간의 해방을 지향했다. 요컨대 그것은 존엄한 자율적 인간 존재로서의 회귀를 열망하는 인간적 몸부림의 표출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신휴머니즘’은 이처럼 형식적으로 선포되기만한 인간 존엄성을 진정으로 재탈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의 이 ‘공동체적 휴머니즘’은 특수한 한국적 상황에서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근원적인 모순인 계급문제 및 민족문제에 의해 가장 직접적으로 고통 당하는 인간집단의 해방을 지향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오늘날 ‘독주’의 자유만 있지, ‘공생’의 연대의식은 찾기 힘들다.더구나 전 세계를 단일시장화하는 ‘세계화’의 확산과 더불어 물신주의가 동시에 세계화하고 있다. 한마디로 국제적인 차원으로까지 비약하여 ‘거인’의 독주만 옹호되고 권장되는 실정인 것이다. 그리하여 도처에 자신만의 발가벗은 사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시장형인간’만이 활개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현실속에서 나는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자유주의적 ‘거인주의’가 횡행하는 개인주의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거 봉건 사회나 구공산권을 지배하던 공동체적 인간 연대의 혼을 다시 불러내는 ‘역설’을 창조해낼 수는 없을까하고.

한 사람만이 ‘역설’에 대해 꿈꾸면 이는 꿈일뿐이지만, 만일 많은 사람들이 ‘역설’을 꿈꾼다면 그것은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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