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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지적 경이감을 체험할 수 있는 행복한 시간
[나의 강의시간]지적 경이감을 체험할 수 있는 행복한 시간
  • 교수신문
  • 승인 2007.12.10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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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는 학생들은 어떤 학생들이었을까. 언젠가 읽었던 마리 퀴리전에서 본 소르본느 유학시절의 마리 스클로도프스카(마리 퀴리)같은 학생? 잘 알려진대로 그녀는 대학 시절 무 한 쪽으로 끼니를 때우며 추운 파리의 겨울을 온기 없는 다락방에서 몇 해나 보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침착하고 위엄 있는 학자의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도 이국에서 고생을 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지 않던가. 나는 그녀처럼 열정적이고 호기심이 많은 학생들을 그리며 강의실에 들어가곤 했다.
그러나 실제로 강의실에서 눈 앞에 앉아 있는 학생들은 슬프게도 마리 스클로도프스카가 아니었다. 왜 별이 떨어지고 새는 왜 안 떨어지는지, 태양은 밤에 어디로 가는지, 왜 달의 모양이 변하는지, 바람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알고 싶은,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지적 호기심을 가진 그런 학생들이 아니었다.
TV를 보는 것처럼 수동적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해야 효과적으로 상호소통할 수 있을까?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나는 국내외 교수법 책과 논문을 읽기 시작했다. 교수법과 학습법 특강이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그래서 내가 찾은 방법은 대략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가장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방식인 교수주도의 교육, 강의중심의 교육, 암기력을 테스트 하는 교육, 면대면(face to face) 교육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새 시대에는 학생주도의 교육, 토론 중심의 교육, 창의성을 키우는 교육 그리고 가상대학 강의와의 혼합형(Blended Teaching & Learning) 교육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몇 년전부터 내가 하고 있는 모든 과목의 강의를 이런 방식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내가 강의하고 있는 과목 중 하나인 ‘영화로 보는 세계경제사’에서 하는 방식을 예로 들어본다. 나는 첫 번째의 화·목요일에는 2개조의 조원전원 발표 및 전원토론에서 도우미 역할을 하고 다음 주에는 강의를 해서 해당 챕터를 마무리한다. 조별 발표나 토론, 시험, 리포트 등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정답을 말하려 하지 말고 네 생각을 말해 봐”이다. 철벽같은 암기 교육을 깨고 배움의 즐거움과 스스로 필요한 지식을 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과 창의성을 키우려 노력하고 있다. 교수와 학생들이 사용하는 모든 자료는 가상대학에 올려 서로 공유하고 상호소통한다. 혼합형 교육을 하면 공간의 한계를 뛰어 넘고 다양한 교육자료를 복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수업방법을 실현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나는 학생들이 혼자서 개괄하기 어려운 세계경제사의 흐름을 잡아주는 일과 세계경제사와 영화 주제를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생각할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해서만 강의한다. 수업은 학생들이 주도해 이끌어 가도록 하고 나는 수업이 원활히 진행되도록 돕는 학습촉진자 역할을 하고 있다. 학생이 주도적이 돼야만 창의력과 집중력이 향상돼 효과적인 학습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전공과목인 ‘경제사상사’ 등의 강의도 비슷한 방법으로 진행하고 있다.
나는 2~3년전 언론매체에 소개된 리처드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 같은 그런 매혹적인 강의를 해보고 싶다. 해당 학문 전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 뛰어난 유머감각, 그리고 학문에 대한 열정, 지식을 전달하는 것 이상의 감동을 전해 주는 강의. 잘 알려진 주제라도 완전히 자신의 언어로 소화한 후에 전달하기에 항상 영감과 깨달음의 감동을 주는 강의. 수학이나 전문용어를 어지럽게 늘어놓지 않고 지극히 일상적인 사례들로부터 최첨단의 물리 개념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내는 그만의 독특한 강의. 열정적이고 단순 명쾌해서 일생에서 잊지 못할 경험이 되는 강의. 자신의 분야에서 학문적 성과를 이뤄낸 교수들에게까지 아직도 수많은 영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그런 강의.
학생들에게 나의 강의시간은 강의실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한 상호소통의 열기, 지적 경이감을 체험할 수 있었던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기억됐으면 좋겠다.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대학은 이 지상에서 존재할 수 있는 곳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영국의 계관시인 존 메이스필드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그런 상황이 다가 오길 꿈꿔본다.
   
홍덕기/전남대·경제사상사

필자는 전남대 경제학부에서 ‘경제사상사’, ‘경제학설사’, ‘영화로 보는 세계경제사’ 등을 강의하고 있다. 2000년에는 경영대학 교육우수교수로, 2006년에는 전남대 교육우수교수로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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