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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과거, 상처 그리고 (불)가능한 치유
[문화비평]과거, 상처 그리고 (불)가능한 치유
  • 김소영/한국예술종합학교·영화이론
  • 승인 2007.12.10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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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본 두 편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파국과 재앙, 치유와 재현이 그 내용이다. 
2007년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원더풀 타운’이라는 태국 영화를 봤다. 아딧야 아사랏이라는 신인감독의 작품이었는데 태국 남부의 타쿠아 파이라는 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영화는 느릿하고 온화하며 물 흐르듯  진행된다. 해안가는 평화롭고, 길가는 한적하다. 
방콕에서 파견돼 온 젊은 건축가는 아름다운 이곳에서 모텔을 운영하는 젊은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문제는 있다.
그 여자의 모텔은 신축되는 리조트 타운에 밀려 숙박객을 잃어가고 동생은 동네 깡패다.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문제보다는 마음에서 우러나와 혀에서 구르는 듯한 타이어의 미묘한 악센트를 살리고 이 휴양지에 부는 바람을 느끼게 하며, 두 남녀의 예정된 사랑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그러나 영화의 후반부,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다. 깡패인 동생이 누나의 연인을 폭행, 살해하는 것이다. 동네의 깡패들과 함께 그는 바다로 가 시체를 떠내려 보낸다. 너무나 순식간에 이러한 폭력이 일어나기 때문에
영화에 호감을 느끼던  관객으로서는 최선을 다해 이 상황을 이해하려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문득 이 영화의 느린 시간의 흐름에 어떤 긴장을 만들어내던 매듭이 무엇이었던가를 생각하게 된다.
모텔 주인인 여자는 쓰나미가 이 마을을 휩쓸고 지나갔음을  말한 적이 있다. 감독이 밝힌 바에 따르면 쓰나미로  8천명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죽었다고 한다. 2004년의 일이었다. 그러나 아딧야 아사랏 감독이 2006년 이곳을 방문했을 때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쓰나미의 피해가 복구돼 길은 정갈하고, 쓰러진 건물은 재건축되고 코코넛 나무 잎은 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었으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외형적 복원은 이루어졌으나 내면의 치유는 이루어지지 않은 셈이다.

그래서 영화의 저자,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막 깨어났지만 집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리고 모든 것이 마비돼 있는 듯이 보였다. 사람들은 할 일없이 여기저기에 앉아있고 젊은이들은 무리지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가 하면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 일상적인 모습들이 나에게는 기묘하게도 슬픔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나는 그 느낌을 영화 속에 담아내려고 했다. ‘원더풀 타운’은 내 나름의 쓰나미 영화인 셈이다.”‘원더풀 타운’과 함께 올해 내 마음을 붙잡았던 것은 한국의 정치적 쓰나미, 80년대를 다룬 ‘과거는 낯선 나라다’라는 다큐멘터리다.
아직 극장 개봉을 하지 않았다. 영화적 작업 혹은 예술 작업은 어떠한 재앙과 상처 그리고 치유의
(불)가능한 과정을 다루는 경우가 있다. 
김응수 감독의 다큐멘터리 ‘과거는 낯선 나라다’가 그렇다. 이 다큐엔 한국의 1980년대와 오늘이 있다. 1986년 분신했던 김세진과 이재호 기념 사업회와 함께 만든 이 다큐멘터리는 당시의 갖가지 영상자료를 보여주고 그에 대한 부산한 해설을 곁들이는 대신, 당시 그들과 열정을 함께 했던 소수의 사람들과 이재호의 아버지 그리고 감독 자신에 대한 인터뷰만으로 이루어진다.
카메라는 이들의 모습이 보이기 전 푸른 새벽녘 나무들이 늘어선 길로 서서히 트래킹을 해나가고 대화의 시작 부분을 들려주는데, 감독은 꼼꼼하고 단호하게 살아남은 자의 낮은 증언을 듣고 기억과 외상(트라우마)을 묻는다. 풀 숏과 클로즈업으로 이뤄진 인터뷰 영상은 지루하다 싶을 만큼 이들의 말과 작은 반응을 잡아낸다.
민족자주 운동의 기폭제가 됐던 그 사건은 이 다큐멘터리에서 ‘사건’이라기보다는 낯선 과거다. 이 낯선 과거, 화석화된 공간을 어떻게  역사화 하며 또 당대의 일상 안으로 불러올 것인가. 
영화는 고통스러운 이 과정을 숨죽이며 만들어간다.  문화비평에서 내가 이 두 영화를 불러내고 있는 것은 ‘경제’ 그리고 ‘성공’에 대한 욕망이 춤추는 2007년 말 대선 정국 속에서 이 영화들이 다루는 과거, 상처 그리고  (불)가능한 치유의 과정이 그 광란의 춤의 속도를 멈추게 할 수는 없을까 생각해서인 것 같다. 온통 투기

자본과 부동산 정책의 향방이 관심사인 세태 속에서 이러한 근심이 ‘낯선 나라’ 일수는 없을 것이다.

김소영/한국예술종합학교·영화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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