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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규모 예산이 필요한 이유
지금, 대규모 예산이 필요한 이유
  • 교수신문
  • 승인 2007.12.10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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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_ 내년 고등교육예산 ‘1조원’ 증액 무산되나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성장은 놀랍다. 지난 10여 년간 이례적 속도로 팽창을 거듭한 결과 고졸자의 대학 진학률이 85%를 넘어 세계 최고다. 이 진학률은 세계경제포럼의 국가 경쟁력 평가에서 12단계 도약(지난해 23위에서 올해 11위로)하는 데 일부 기여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상당수 사람들이 우리의 전문대학과 대학, 그리고 대학원의 교육과 연구여건 및 교육·연구의 품질에 만족하지 않고 불만을 행동으로 드러낸다. 해외와 국내에서 훈련받은 우수한 인재들은 임금과 다른 고용조건이 동일하다면 국내보다 해외 대학이나 연구기관에서 자리 잡기를 원한다. 우수한 고졸자도 국내 대학을 기피한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고등교육의 재정을 보면 그 의문이 아주 단순하게 풀린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고등교육기관이 고품질의 교육과 연구를 통합해 자기역할을 할 수 있기까지 일정한 시기의 대규모의 공공자금이나 사회적 기부금이 집중적으로 투입돼 체질을 개혁함으로써 품질의 극적 전환을 이뤘다. 시장중심 원리가 상대적으로 가장 지배적으로 관철되는 미국에서도 1870년부터 1940년대 사이에 주정부와 중앙정부의 집중적인 투자가 있었고, 또 개인들의 막대한 사회기금이 모여 세계 최고의 고등교육기관들이 연구와 교육이 통합되는 훔볼트의 이상을 실현하게 됐다. 1~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집중된 연구자금과 계속된 재정지원으로 우수한 체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켰다.

한편 고등교육 품질 전환을 위한 공공의 투자는 고등교육기회를 서민에게 확대하기 위한 개방형 대학(community college)에도 적용됐다. 주정부 주도로 이들 학교를 세우고 투자함으로써 직업교육과 서민층의 고등교육의 기회를 폭넓게 제공하되 그 품질을 낮추지 않았다. 현재 이들 대학의 교수 1인당 학생의 수가 4년제 대학보다 오히려 적다. 이는 기회확대와 고품질 유지가 균형 있게 발전한 사례다. 그 결과 천문학적 수준인 미국 대학들의 재원비율은 공공재정이 42.8%, 기부금 등 민간재원이 20.4%이고 가계부담은 36.7%에 지나지 않는다. OECD 국가 평균의 공공재원 비율은 76.4%이고 민간재원의 비율은 23.6%에 지나지 않는다. 한편 미국의 경우 정부지원을 거의 받지 않는 독립사학의 비율이 대학수준에서는 26.4%이고 전문대학 수준에서는 14.6%에 지나지 않는다. OECD 평균은 미국 보다 크게 낮아 각각 13.4%와 11.7%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공공재원 비율은 23.2%이고 나머지는 민간재원인데 그 중 가계 부담이 56.7%로 매우 높다.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지 않는 독립사학의 비율이 전문대학의 경우 85%이고 4년제 대학의 경우 77.5%이다. 이 상황에서 우리 사회의 고등교육은 품질 고양을 위한 전면적이고 획기적 조치들을 요구하고 있다. 전임교수 1인당  학생수는 2006년 현재 대학 36명, 전문대학 69명이다. 이는 OECD 국가의 2배를 넘는 수준이다. 대학은 다목적 기관으로 그 역할은 교육, 연구, 사회적 지도력 형성, 그리고 봉사까지 매우 폭넓으며 혁신기반 경제의 기관차이고 민주주의의 기지다.

고등교육기관들이 혁신적이고 민주적인 사회가 요청하는 품질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자면 체질 개혁이 필요하다. 국가의 재정지원을 받지 않는 사립학교 위주와 가계재원으로 지탱하고 있는 고등교육기관으로는 이 체질 개선은 매우 어렵다. 정부가 최근 시도하는 방식 하나는 교수 1인당 학생수 규제다. 학생들의 등록금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교수 1인당 학생수 규제는 결국 지속적인 등록금 인상과 공정한 규칙까지도 포기하는 기여 입학제 도입 시도로 이어진다. 헌신적, 사회적 기부는 확대돼야 하지만 고등교육기관의 획기적 체질 개선과 품질 전환을 위해서는 가계 부담이나 기부금으로 부족할 뿐 아니라 불가능하다. 고품질을 위한 규제와 평가는 지원과 병행돼야 한다. 이 시점에 필요한 것은 치밀한 고등교육발전계획과 전망에 기초한 대규모의 공공재정 투입과 합리적 운영이다.

정부는 모처럼 고등교육의 발전을 위한 투자재원을 마련하고자 2008년 예산에 1조원을 추가적으로 확보하려는, 늦었지만 획기적인 계획을 수립했다. 이는 제 몫을 다하고자 하는 고등교육기관들이 간절히 원하는 바이고 고등교육 재원의 대부분을 담당한 가계가 바라는 바로 사회적 합의는 이루어져 있다. 교육인적자원부의 예산 계획은 그 동안 지속적으로 추구해 왔으나 재정지원이 충분치 못했던 정책 사업들-대학의 다양화와 특성화, BK21과 같은 교육역량강화사업, 연구중심대학 지원 사업, 대학구조개혁 사업-을 부분적이나마 확대 지원하고자 하고 또 새롭게 출발하는 국립울산과학기술대 지원, 새 제도인 의학·법학 전문대학원의 정착 지원을 추가했으며 학자금 융자 등 학생의 복지를 좀 더 확대하고자 한다. 

 이러한 고등교육의 재정확대는 고등교육의 품질개선을 위한 출발점에 지나지 않아야 한다. 앞으로 보다 계획적인 재정투자를 확대해 대학의 연구역량을 체계적으로 고양시키고 대학교육을 구조적으로 개혁해 능력을 갖춘 사람들에게 공평하고 좋은 고등교육의 기회를 제공할 자원이자 계기가 될 것이다. 법인화와 같은 제도 운영의 틀만 변화시키면 대학들 사이의 경쟁으로 대학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리라는 기대는, 대부분의 대학이 사립대로 법인들이 운영하고 국내외의 경쟁이 격화됨에도 좀처럼 변화하지 못하는 대학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사고이다. 다만 공공재정의 투입은 국민에 대한 책무가 크기 때문에 고등교육기관 발전계획에 대한 사회적 합의, 투자 효율성과 형평성을 높일 치밀한 방안과 대책이 필요하다. 지금은 고등교육의 품질을 획기적으로 높일 단계이며 이를 위해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대규모 투자를 시작할 단계이다. 누구도 첫 발걸음을 되돌려선 안 될 것이다.

장수명/ 한국교원대· 경제학


 

필자는 미시건주립대에서 ‘노동과 교육에 관한 두 개의 소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교육재정경제학회 이사를 맡고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 ‘대학교육의 경제학’, ‘이공계 기피현상의 경제적 진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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