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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범성의 代價는 비싼 것인가
비범성의 代價는 비싼 것인가
  • 문용린/서울대·교육학
  • 승인 2007.12.03 13:3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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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서평_ 『천재인가 광인인가』 l 아놀드 루드비히 지음 l 김정휘 옮김 l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이 책은 천재 혹은 비범한 사람들에 관한 책인데, 특이하고 놀랄만하다. 특이하다는 것은 종전에는 별로 다루지 않던 비범성의 특수한 측면을 다뤘다는 뜻이고, 놀랄만하다는 것은 어떻게 한 책에서 1004명이나 되는 엄청난 수의 비범한 사람들을 함께 다룰 수 있었는가 하는 뜻이다.

이 책의 저자인 아놀드 루드비히(Arnold M. Ludwig)는 미국 켄터키 대학의 정신과 의사다. 그래서인지 그는 천재를 병리적으로 역학적으로 접근한다. 비범한 사람들은 천재성 또는 비범성이라는 긍정적 특성을 갖고 있는 반면에, 그들은 광기나 우울증 같은 병리적인 부정적 특성도 가지고 있다는 전제하에 비범한 사람들의 이러한 어두운 면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그리고 이 비범한 사람들에게 드리운 어둠이 어디서 연유하는지 그 근원을 찾기 시작한다. 흡사 전염병의 근원을 추척하는 疫學者처럼 말이다.

예컨대 비범한 사람들이 주로 앓은 정신질환이 무엇이었는지, 이 질병이 유년기와 성년기 중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부모나 형제자매 그리고 친구들이 이 질병과 어떻게 연관돼 있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결국 이 책 전체를 압도하고 있는 저자의 문제의식은 아주 간단하다. 즉 비범한 사람들은 그 비범성의 대가를 치루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광기의 기미를 보이지 않은 천재는 없다.” 책 첫머리에서 저자가 인용한  세네카의 말인데, 이 화두가  책 전개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럼 이런 관심을 저자는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가. 우선 그는 연구 대상으로 삼을 비범한 사람의 표집에 나선다. 분석할 내용이 충분히 담긴 신뢰할 만한 一代記를 갖는 인물을 뉴욕 타임즈 북 리뷰(1960~1990)에 소개된 기사를 바탕으로 고르기 시작한다. 일생 전반에 걸쳐서  긍정적인 평판과 명성을 갖는 사람을 선택하는데, 악명이 높은 사람이거나  일시적 인기나 사건으로 야기된 명성과 평판을 받은 사람은 제외한다. 그렇게 해서 고른 사람이 1004명이었는데, 영어를 사용하는 25개 국가의 사람들이 주축을 이루었고, 그 중 여성이 약 1/4 가량이었다. 이들의 직업은 매우 다양했는데, 저자는 이를 약 18개의 직업군으로 대분류한다. 공무원에서부터 군인, 음악가, 미술가, 체육인, 소설가, 시인, 연극인, 영화감독과  배우, 교수와 학자, 사업가 등등이다. 인물로 보면, 교황 바오로 23세에서부터 마릴린 먼로에 이르기 까지 매우 다양했다.

이렇게 표집한 인물들을 저자는 그들에 관한 기

에드바르트 뭉크와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은 ‘광기’와 쉽게 연결된다. 몽환적 특성은 비범한 천재의 비싼 수업료인가. 저자는 이 문제를 실증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림은 뭉크의 ‘절규’(위)와  달리의 ‘기억의 집착’(아래).

록을 뒤진다. 권위있는 일대기를 잡아 정독하면서 그들의 일생 속에 나타난 에피소드를 찾아낸다. 비범한 삶 또는 유별난 그들의 삶 속에 가득했던 일화를 찾아내, 그들 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가려내게 되는 것이다. 1004명의 일생을 샅샅이 뒤져 찾아낸 일화와 病歷은 이 책속에서 눈부실 정도로 현란하게 인용되고 묘사된다.

1004명의 천재들 일대기 추적
이 책의 앞 부분부터 이런  그로테스크한 묘사가 전개되기 시작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소녀 시절에 성적학대를 받았으며, 성인이 되어서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후에는 자살을 감행했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지나친 음주를 했으며, 지독한 우울증을 앓았고, 자살을 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두뇌매독으로 발광하게 되기 오래전에 우울증이 있었다. … 장폴 사르트르는 우울증과 불면증을 다스리기 위해 흥분제, 진정제와 술에 의존했다.”

이러한 일화적인 예의 확인과 더불어 그는 실제로 켄터키 대학교에서 행한 조사 연구의 결과도 인용한다. 그는 자신의 대학에서 열린 여류작가회의에 참석한 여류작가들이 다른 직업군에 속한 여성들보다 우울증과 조증을 더 많이 겪는 것을 확인 했다고 주장한다. 즉 그 여류작가 집단은 다른 직업집단에 비해서 불안, 공황, 약물복용, 무절제한 식사 등등의 이상 사례가 훨씬 많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결론은 그 작가들
의 창의적인 작품을 가능하게 한 근원의 하나로 이러한 정서적 문제나 장애를 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연구를 바탕으로 그는 작가들의 창조적 작업을 가능하게 한 그런 정서적 장애는 아동기 동안의 성적 혹은 신체적 학대, 모친의 정신장애, 부모들의 창의성 정도와 관련이 있을 것임을 시사한다. 따라서 그가 보기에, 창의적 비범성을 이해하려면 그들의 정신질환이나 장애를 살펴야하며, 그러자면 당연히 가족력, 성장기 활동, 환경적 요소들을 구체적으로 고려해야한다.

저자는 비범성의 요인에 대해서 상당히 융통성있는 사고를 한다. 즉 비범한 사람이 되는 길은 다양한 루트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는 예컨대, 드골이나 사르트르, 벤 구리온 같은 사람은 비범하도록 운명 지어진 사람이었지만, 플레밍이나 톨스토이 같은 사람은 그 비범성이 생애 초기에는 전혀 예감되지 않았던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훗날 이들은 비범성의 표상으로 꼽힌다. 따라서 비범한 사람을 어떤 고정적인 틀로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고, 오히려 생애를 거치면서 겪게 되거나 발현하는 사건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검토하는 것이 비범성 이해의 정도일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이런 전제를 바탕으로 그는 책의 본론으로 들어간다. 즉 1004명의 비범한 사람들이 어떤 유년시절을 보냈는지, 그들이 보낸 유년기 경험 중에서 그의 비범성을 예측케 할 만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유추해 내는 것이다. 이런 분석은 성년기로까지 이어진다. 부모와의 갈등, 배우자와의 갈등, 친구나 상사와의 인간관계 등이 샅샅이 분석된다, 이렇게 생애 사건을 충분히 검토한 후에 비범성을 가능하게 한 조건과 방해한 조건으로 그들 각자의 경험을 다시금 분류해본다.

이런 분석을 종합해서 저자는 책의 마지막 결론을 향해 치닫는다. 이 책의 마지막 두 장의 제목이 그것을 귀띔 해준다. 전문가 집단의 정신질환(7장),  정신병 증상과 창의적 활동(8장)이라는 제목들이 바로 그렇지 않은가. 결국 저자의 결론은 그가 책을 시작하면서 예측한대로 비범한 사람들은 그 비범성의 대가를 톡톡히 치른다는 것이다. 좀 더 분명하게 말한다면, 비범한 사람들 특히 창조적인 업적을 낸 사람들의 경우에 그 비범성에 비례하는 만큼의 정신질환을 겪는다는 주장인 셈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 책은 특이하고 놀라운 책이다. 창의적 비범성이 정신적 질환 또는 광기와 유의미한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특이한 가설을 가지고 시작한 연구였는데, 그 가설이 진실이라는 결론을 놀랄 정도의 큰 소리로 외치고 있는 책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논지가 아주 선명한 책이다. 이 선명한 논지를 독자는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 것인가? 이 책의 주장대로 그 결론을 그대로 받아 들여야 하는가 아닌가,  이 책을 몇 주에 걸쳐 진지하게 읽고 난 후의 나의 고민이 바로 이것이었다.

창의성과 정신적 질환의 관련설 제기
교육 인식론자들은 어떤 한 주장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세가지 조건이 동시에 충족 될 때에라야 가능하다고 한다. 하나는 眞條件으로,  그 주장이 진실해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증거조건으로 그 주장의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셋째는 신념조건으로 독자가 그 주장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놀드 루드비히의 이 책에 제시된 증거는 대단히 풍부하고 다양하다. 제시된 증거를 일축하기는 사실상 힘들어 보인다. 따라서 이 증거들만 고려한다면 믿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제2, 3 조건의 충족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제1조건이 문제다. 1004명에 대한 분석 만으로 얻은 증거들이란 점이 문제다. 저자 자신이 밝히고 있듯이, 1004명의 생애 자료로부터 얻은 그 주장이 그런 비범한 집단의 전집(全集, population)의 진실을 담보한다는 보장이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심각한 결론의 수용여부로  이 책의 진가가 퇴색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모든 글에 대해, 그 결론의 수용여부는 독자의 교양수준만큼, 전문성만큼 이해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분석한 1004명의 비범한 사람들에 대한 방대한 자료와 객관적인 분석의 방법과 모형은 많은 사회과학과 인문학자들의 귀감이 될 것이다. 상당히 난해할 법한 이 책을 정확하면서도 재미있게, 그리고 유려한 문장으로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비범성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김정휘 춘천교대 교수의 전문성 덕분이다. 노고에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문용린/서울대·교육학


 필자는 미네소타대에서 ‘도덕판단력 측정에서의 남녀간 문항 편파성 추정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 『지력혁명』, 『백범 김구의 지적 계발과정 탐색』 등이 있다.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을 지냈으며, 현재 교육과정평가원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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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 2세(물리학자) 2007-12-05 16:2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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