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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에 대한 해석이 아쉽다
비움에 대한 해석이 아쉽다
  • 김기주/ 동덕여대·회화과
  • 승인 2007.12.03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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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비평_ 리움 ‘한국미술-여백의 발견展’

리움의 이번 기획전은 ‘여백, 비움, 자유’에 촛점을 맞춘 야심적인 전시다. 배병우의 < 소나무>.

삼성미술관 리움은 개관 3주년을 기념해 한국 미술을 새롭게 읽어 내는 방법의 일환으로 한국인에게 친숙한 여백과 비움의 문제를 ‘한국미술-여백의 발견展’에서 다루고 있다. 이번 전시는 전통과 현대 및 시각예술 등 각 장르의 경계를 해체하고 통합하려는 하나의 시도다. 4~5세기 <신발 모양>의 가야 토기부터 고려청자, 조선백자, 서화, 민화, 근현대미술, 사진, 영상 등을 포괄해 전시하고 있으며, 현대미술 작품이 33점으로 숫자상 약간 많다. 전시된 작품은 총 61점이다.

리움 측은 전시의도에서, 제1부 ‘여백의 발견, 자연’은 여백을 동양의 자연관으로, 제2부 ‘자유, 비움 그러나 채움’은 주로 도가적인 예술정신으로, 3부 ‘상상의 통로, 여백’은 비움의 공간을 작품과 작가의 상상력을 통한 소통의 창구로 이해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러므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장르를 해체한 ‘여백’展을 이해하려면, 전시 기획이 3부로 나눌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서도 간취되듯이 우선 전시공간과 전시방법을 알아보고, 그 다음에 동양의 자연관과 예술관 속에서 예술과 여백, 그리고 자연, 자유, 비움과 채움의 虛實 관념을 살펴봐야 한다.

전시 공간: 전시공간은 우리 건축에서 비움과 채움의 대표적인 예이며, 여백이 큰 역할을 한다. 한국건축의 백미인 부석사를 모델로 건축가 승효상이 연출한 공간으로 구성됐다(우리는 <인왕제색도>앞에서 자갈길과 돌을 반복해 걸으면서, 서도호의 <문>을 보고, 백남준의 <부처>에서는 보는 이가 부처 뒤에서 움직이면서 TV속에 참여하는 참여공간으로, 백자호와 달항아리는 고금과 재질을 뛰어넘어 공간을 차별화한 것 등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에스컬레이터를 통한 아래위 공간의 이동이나, 특히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전시함으로써 감상자의 의식 전환의 문제와 공간 간의 연결이 매끄럽지 않아 긴장감이 떨어지는 점 등은 아쉬운 대목이다.
예술의 원인: 여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동양 예술이 수양과 인식의 한 방편으로, 그리고 ‘興於藝’에서 알 수 있듯이, 흥의 소산이요 천재의 소산이라는 점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五代말 송대 초의 화가 荊浩는 ‘名賢들은 생을 해치는 嗜慾을 제거하기위해서 거문고와 書·圖畵를 즐긴다’고 하면서, 雜欲은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것이므로, 그림 공부도 ‘다만 일생의 학업으로 잠시라도 중단됨이 없어야’함을 강조한 바 있다. 그에게 예술의 목적은 잡욕의 제거와 물상의 근원의 구명, 즉 明理였고, 평생의 작업이기에 즐기면서 그려야 했다. 이런 점에서 작품이 좋을수록 오히려 비움이 추구되고, 비울수록, 즉 잡욕이 없어질수록 좋은 작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문인이나 禪僧의 작품이 높이 평가받는 원인도 여기에 있다.

또한, 예술은 흥에 의한 소산이요, 소동파가 말했듯이 천재(天工)와 독창성(淸新)으로 발전했으면서도, 결국 양자는 작업의 끝에서 천인합일하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이 두 태도는 예술에서 전혀 다르게 나타난다. 전자의 경우, 이인상의 <장백산도>, 어몽룡의 <월매도>에서와 같이, 주로 畵沙나 印印泥 같은 中鋒에 의한 붓을 써, 그 자체로 고요함(靜)이 느껴진다면, 후자의 경우는 정선의 <단발령망금강도>, <인왕제색도>처럼, 비록 필이 규칙에 의한다고 하더라도, 단발령이나 인왕산 부분의 토산에 편필이나 측필을 사용함으로써 법칙과 변통, 음과 양의 조화를 이루며, 勢에 의한 動的인 양상을 띤다. 따라서 여백의 공간도 고요하며 깊이 있게 침잠하는 정적 구조와 활발하게 살아나는 동적 구조를 보인다. 고금과 장르가 해체되는 전시가 어려운 점이 여기에 있다.
여백: 唐代 張彦遠은 ‘그림은 대상의 종류와, 형태, 경계, 색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하였다. 여백은 그리지 않음으로써 그 공간이 도가적, 유가적, 불가적 의미로 다양하게 해석된다. 동양적인 역설이요, 그들의 수양의 결과 터득한 기술이다. 동양화의 여백에는 다음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동아시아의 天人合一觀을 기조로 하면서도 4세기 宗炳에 의해 산수가 물적 존재가 아니라 영적 존재로 인식돼 온 결과, 너무나 큰 존재인 하늘과 땅은 공백으로 남고 말았다. 두 번째는 북송의 산수화가들이 大山, 大水 및 居遊의 경계를 그리려는 의도에서, 唐의 王維가 눈이나 구름, 강 등을 그리지 않고, 여백으로 남겨둔 破墨을 선택한 결과 생긴 여백이다. 이번 전시 제1부에 해당하는 여백은 거의 대부분 이 양자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세 번째는 6세기 謝赫에 의해 畵六法 중 氣韻生動이 회화의 최고법이 되고, 윤두서의 <자화상>에서 알 수 있듯이, 서화에서 기운생동을 위한 붓의 쓰임이 강조되면서 여백의 의미가 더욱 풍부해진 것이다. 그러나 김정희의 <竹爐之室>에서 보듯이, 형호는 ‘筆은 법칙에 의하더라도 운용상 임기변통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또 장언원은 그림을 疎體와 密體로 나누면서, 필이 겨우 하나나 둘이라도 뜻이 풍부해 像이 그것에 응해 있는 梁의 장승요와 唐의 오도자 소체를 중시함에 따라, 묘사보다는 뜻이, 법칙보다는 변통이 가능한 작품을 선호하게 됐다. 오히려 제작의도 때문에 화면에 결격사유가 생기더라도 자유롭게 과감하게 생략하는, 簡率과 平淡天眞이 중시된 결과, 화면에서 여백이 많아지고 그 결점을 畵意가 채우게 됐다. 이 때의 여백은 유·불·선적인 공간이해가 필요하다. <변상도>의 경우, 여백이 적어도 불교 세계관의 이해 없이는 그 이해가 불가능하다.

한국 미술의 여백, 그 자유의 미학
동양미술의 경우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 도자 기술의 극치에 다다른 고려시대의 <청자운학문매병> 후에 오히려 여백이 대부분인 간솔한 조선시대 <백자철화끈무늬병>가 나타났다는 것이 그 좋은 예일 것이다. 박수근의 <귀가>에 나타난, 생략적(즉 省筆化된)이기에 기운생동한 선과 색이라든가, 장욱진의 <도인>, <원권문 장군>, 김환기의 <하늘과 땅>등에서 보듯, 채움과 비움이 같은, 오히려 비움이 더 중요하게 인식되는 역설은 동양 예술에서는 흔하다. 동양 산수화가 서양과 크게 다른 점은 산의 원근법, 즉 平遠, 高遠, 深遠 중 특히 심원에서 시간이 표현돼 있다는 점이다. 이 이동하는 시점의 표현은 마이클 설리반(M. Sullivan)이 말했듯, 여백은 상상력의 공간이 아니라 우리의 관념에 따라 유·도·불적 개념의 공간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백자철화끈무늬병>, 15~16세기

이번 전시는 古今의 한국미술이다. 그러므로 전시기획도 한국인의 미술관에 맞아야 한다. 특히 3부 전시는 구성상 이해하기 어렵다. 전시는 한 점 한 점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전체 전시 개념도 중요하다. 막연한 상상력에 의한 소통은 동양적인 우리의 관점이 아니다. 동양에는 오히려 작품에서 소통의 공간은 없다. 단지 작가의 개념상의 상상력의 표현이 있을 뿐이다. A는 A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紫紙, 금니불화 <대방광불화엄경 변상도>(754~5년)는 복잡한 변상도의 아름다움을 무색하게 할, 그 잔편의 아름다운 금니 선이, 아름다운 석굴암의 불보살상들의 선과 같아 신라불화의 우수성이 그대로 고려로 이어졌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자연-자유: 동양에서 자연은 대자연과 本然性, 즉 장언원이 “그림이라는 것은 천연에서 발해야 한다”라고 한 그 天然인 자연성으로 나뉜다. 漢代에, 自然은 문자적 의미로 自成, 自如是, 自若, 自焉의 뜻을 갖고 있어, 이미 자연과 자유, 자유자재는 같은 의미였다. 서양인의 자유가 무엇으로부터 벗어나거나 무엇이 없는 자유와 달리 동양의 자연은 자기 본연성으로의 합일이며, 天地人 三才가 같은 성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초월도, 흥도 이 합일에서 이루어진다. 2부의 ‘자유’에서도 도자기의 선택은 <청자 죽절문병>외에는 선택이 잘못된 것 같으며, 윤두서의 과감한 정면 얼굴만의 <자화상>은 비록 처음에는 인체의 표현이 있었다고 해도, 소폭의 그림이기에 자기 본연성으로 회귀한, 흥의 순간에 기운으로 표출된 명작이라 여겨진다.

김기주/ 동덕여대·회화과


필자는 동국대에서 ‘중국 산수화의 기원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논문으로는 ‘王維의 산수화 - 詩와 화론을 통한 접근’이 있으며, 번역서로 『중국미술사(The Arts of China)』,  『미술비평사(A History of Art Criticism)』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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