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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적 균형’보다 ‘적극적 공정성’이 필요하다
‘기계적 균형’보다 ‘적극적 공정성’이 필요하다
  • 이용성 / 한서대·신문방송학
  • 승인 2007.12.03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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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과 진단_ 2007 대선 ‘정책보도’, 어떻게 하고 있나

대선보도의 핵심적인 쟁점 가운데 하나는 정책의제 중심 보도에 대한 것으로, 언론이 선거 구도를 정책중심으로 유도해야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정책중심 보도는 경마식 보도 등의 부정적인 선거보도 양식을 넘어서는 선거보도의 이상적 지향점으로 인식돼 왔다. 물론 정책의제 보도를 통한 후보자의 정책검증은 후보자 자질이나 도덕성 검증 보도와 맞물려 있어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하기 어렵다.  

그래서 각 후보의 자질 및 도덕성 검증은 물론이고 후보의 정책과 선거공약 등에 대한 일정한 기준을 설정하고 그것에 의한 평가를 바탕으로 유권자의 투표행위에 있어 판단자료를 제공하는 역할을 언론이 해야 한다.
17대 대선보도를 보면 이전과 마찬가지로 후보자의 자질과 도덕성 검증보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번 대선의 최대 쟁점이라고 하는 ‘BBK 주가조작 의혹사건’에 대해서도 과점신문들은 지난 대선의 ‘김대업 사건’ 프레임을 작동시켜서 ‘음모론’이나 ‘정치공작론’으로 일관하면서 하나의 ‘정치공방’으로 다루어 사건의 핵심은 제대로 추적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언론의 후보검증에 대한 기피는 현재 보수진영의 내부 갈등뿐 아니라 선거 구도를 갈수록 혼미하게 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경마식 보도, 정치적 냉소주의 불러
17대 대선보도는 후보검증 보도뿐 아니라 정책의제 중심보도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책 경쟁 중심의 선거판도가 아직 구축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언론은 참고자료에 불과하며 그 신뢰도도 의심받고 있는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경마식 보도로 일관하고 있다. 선거를 게임과 전쟁으로 형상화하는 경마식 보도는 선거양상을 왜곡시키거나 정치적 냉소주의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정책중심 보도는 바로 경마식 보도의 대안적 선거보도 양식이다.

언론의 정책중심 선거보도는 더 나아가, 언론이 정책의제를 독자적으로 선정하거나 각 대선후보의 캠프에서 제공한 정책의제를 제시하기보다는 여론조사를 통해 유권자가 중시하는 의제를 선정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후보들의 정책 차이와 우열을 비교분석해 판단자료로 제공하는 유권자 의제 보도가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유권자 의제보도 혹은 유권자 참여형 보도는 2002년부터 우리 언론의 선거보도준칙에서 강조된 바 있으며 실제로 수행된 바 있다. 
올해 대선 보도에서도 <경향신문>의 ‘2007 대선 10대 의제’ 기획 등은 주목할 만하다. 경향은 “대선 의제가 후보가 선험적으로 만들어 유포하는 것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닌, 시민들의 불편과 불만, 고통을 조직화한 삶의 결정체”라고 지적하면서 대선 의제와 정책을 전문가가 아니라 ‘시민의 눈’으로 시민이 선정한다면서 시민단체와 함께 비정규직, 주택·부동산, 일자리, 사교육, 육아, 사회안전망, 소수자, 세금, 노사갈등, 중기·재벌 개혁 등의 10대 과제를 검토했다. 그러나 실제 시민의 여론조사를 반영하지 못한 한계는 있었다. <한겨레>의 ‘유권자가 함께 하는 정책검증-110인 유권자 위원회’도 주목할 만하다. 110인의 유권자 위원회가 각 후보의 핵심 정책 공약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 집중 검증대상 공약을 정한 뒤,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검증해서 국민들이 판단하고 선택할 근거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는 누가 얼마나 앞서 간다는 식의 경마식 보도보다 공약의 구체적 내용과 이에 대한 유권자의 판단, 의식의 변화과정을 보도하는 대선보도의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책 중심 선거보도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것은 <경향>과 <한겨레>의 정책 의제 중심 선거보도 등이 유권자의 판단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경향의 대선의제 검증단의 결산좌담에 따르면 “어떤 한 후보를 평가하는 데 정책역량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 검증에서 한나라당은 3위, 민노당은 2위, 대통합민주신당은 3위를 한 후보가 대선후보로 결정됐다”고 한다. 이와 같이 대선보도를 정책중심으로 혹은 가치논쟁을 중심으로 진행하기란 쉽지 않다. 
정책의제 중심보도를 어떻게 유권자들에게 알기 쉽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인지, 경마식 선거보도만큼 독자들에게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을 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한겨레>의 100인 유권자 위원회 담당자들도 정치지형이 지금처럼 뒤틀린 데는 쟁점이 되는 정책들을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지 못한 기자들의 무능과 게으름 탓도 크지만 정책중심의 대선보도를 어떻게 쉽고 재미있게 쓸지는 답을 찾기 어려운 일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러다 보니 정책의제 선거보도는 정책보도를 올바르게 하느냐 보다 잘 읽히는 가독성의 문제를 더 고민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일부 신문들은 정책의제 보도를 적극적으로 한 반면, 방송은 각 정당의 경선과정에서도 정책보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유권자는 언론을 통해 대선 예비주자들의 정책이 무엇인지, 과연 그 정책이 실현가능한지 등의 유용한 정보를 제공받아야함에도 불구하고, 방송 3사의 메인뉴스는 그 기능을 전혀 하지 못했다고 한다.
‘2007 대선 민언련 모니터단’ 방송모니터팀이 한나라당 경선이 시작된 6월 11일부터 10월 22일까지 방송 3사 저녁 종합뉴스의 선거보도 중 정책보도를 분석한 결과를 살펴보면 정책보도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총 1천232건의 선거 보도 중에서 ‘정책 분석 및 검증 보도’는 3사를 합해 3건에 그쳤다. SBS는 정책 분석 및 검증 보도가 아예 없었고, MBC는 1건, KBS는 2건을 다뤘다.
정책 분석 및 검증 보도는 후보들의 정책을 비교분석하거나 전문가 분석이나 자체분석을 통해 공약을 구체적으로 검증한 것이다. 4개월 넘는 기간 동안 정책을 분석하거나 검증한 보도가 0.24%라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으며, 방송이 대체 대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우려할만한 사안이었다.

이후 KBS와 MBC, SBS는 11월 들어서야 정책의제 보도를 본격화했다. KBS는 지난 9일부터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고 여론조사에 의해 선정한 ‘KBS 유권자 의제 15’를 중심으로 정책보도에 나선 바 있다. MBC는 ‘선택 2007 연속기획 알고 뽑읍시다’를 5일부터 20일까지 보도했다. MBC는 여론조사를 실시해 국민들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12대 정책을 간추려 각 후보들의 차이점을 분석하는 유권자 의제보도를 추진했고 SBS는 17일부터 24일까지 ‘2007 국민의 선택, 잘 뽑아야 잘 산다’를 기획해 메니페스토 실천운동본부과 함께 대선 정책 주요 의제를 점검했다. 그러나 정책의제 선거보도는 메인뉴스에서 중반이후에 다뤄지는 등 뉴스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방송사들도 정책검증팀을 구성해 공방 중심, 동정 중심의 선거보도를 넘어서고자 하고 있지만 한계는 분명하다.
그런데 정책의제 중심보도의 양적, 질적 빈곤을 언론의 책임으로 돌리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현재 각 후보들이 체계적인 정책과 공약을 발표한 바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 정책의제보도에 있어서 각 후보 진영의 정책공약 준비가 부족하다는 것이 한계로 지적되기도 한다. 

정책의제 중심보도가 돼야 하는 이유
최근 주목받고 있는 메니페스토 운동도 한계가 분명하다. 김창룡 인제대 교수에 따르면, 메니페스토란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가 유권자에게 제시하는 정책공약인데 막연한 추상적 개념의 주장이나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인 계획과 방법을 명시해 이를 실현시키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이다. 이런 약속은 확정적이고 명시적 방법으로 책자 등을 통해 국민에게 전달되며 이것은 집권 후에도 추진내용이나 경과 등이 지속적으로 평가되고 다음 선거에서도 평가기준이 된다. 그런데 후보 간 이념적 차별성이 별로 없어 정책적 차이도 두드러지지 않는 우리 정치현실에서 메니페스토 운동 등에만 주력하게 되면 후보자에 대한 자질과 도덕성에 대한 평가가 간과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또한 정책의제 중심 선거보도는 나열적, 기계적인 정책비교 보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언론이 기계적 균형과 같은 소극적인 공정성을 넘어서 적극적인 공정성을 기초로 선거의제 보도를 수행해야 한다. 언론이 적극적인 공정성을 기본자세로 해 엄격한 기준에 의해 각 후보의 정책능력을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계적 균형에 매몰돼 정책과 공약에 대한 실질적인 평가를 하지 않는다면 정책의제 보도는 한계가 극명할 것이다.

지금 유권자들은 제3후보의 등장, 단일화, 돌발변수 등의 우리 대선의 예측 불가능함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젠 선거보도의 방향을 정책의제 중심보도로 전환하고 그것이 유권자들의 관심을 얻을 수 있도록 정책 공약이 구체적인 우리의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적극적으로 추적하고 보도해야 할 것이다.

이용성 / 한서대·신문방송학


 

필자는 한양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신문법연구』『신문개혁입법운동의 성과와 과제』(공저) 등이 있다. 현재 한서대 미디어센터장과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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