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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과 배타의 철학적 분석…“테러리즘은 바이러스”
폭력과 배타의 철학적 분석…“테러리즘은 바이러스”
  • 홍서연 / 프랑스 통신원
  • 승인 2001.11.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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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1-27 09:45:55
미테러와 아프간 사태에 대한 최근의 보도들은 폭력적 이슬람 세력과 피해자인 미국의 응징이라는 구도로 우리를 오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역사적 뿌리가 깊은 만큼 이 단순한 구도가 주는 위험성도 크다.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은 논의는 기껏해야 미국의 응징방식의 도덕성에만 초점을 맞출 뿐이며, 대결하는 자인 미국을 주체로, 타자에 대한 철저한 몰이해 속에서 타자를 배제하는 담론이 될 수밖에 없다.

프랑스 지식인들은 아랍권에 대한 종교적, 정치적, 사적 연구를 바탕으로 이 사건을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10월 21일 ‘제국주의적 크루세이드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한 113명의 프랑스 지식인들은 흑백논리의 함정을 경고하며, ‘아랍 휴머니즘’의 저자이며 사학자인 모하메드 아르쿰은 폭력과 이슬람교를 동일시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소수파에 불과했던 이슬람 급진주의의 빠른 성장은 지난 25년 간의 아랍권 정세에 근원을 두고 있으며, 정치적 이슬람세력은 이란에서 호메이니의 승리 이후에야 등장했다는 것이다.

지난 8~9월호에 ‘회교권 연구’를 특집으로 다룬 ‘정신(Esprit)’지는 이슬람 부흥세력을 어떻게 개념화하고 평가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을 실었다. 지으 케펠과 올리비에 르와가 이미 서구학계에서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신원리주의’ 개념을 옹호하거나 ‘포스트 이슬람주의’ 개념을 제안하는 반면, 프랑스와 뷔르가와 알랭 루시용은, 이들이 서양 정치사회의 개념을 무리하게 적용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르와는 이와 같은 개념들이 호메이니와 같은 이슬람 이만(교주)들에 의해 역이용되기도 했다는 점을 예로 들면서 이 개념들이 지적인 구성물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한편, 케펠과 르와는 신원리주의의 이슬람 부흥정치를 실패로 평가한다. 이들이 코란과 수나(규례)로의 복귀, 샤리아(엄격한 처벌의 바탕이 되는 이슬람 법)의 정립을 근본정신으로 하고 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일관된 정치를 기획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이 서구의 이슬람권 지배력 강화에 대항하기 위해 이슬람 전통과 근대화의 갈등해소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분 이데올로기화된 전통해석에 의존한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파르하드 코스로하바르 교수(고등사회과학연구소)에 따르면, 전통 시아파가 순교를 聖人에 국한시켰던 반면, 현대 시아파는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에서 젊은이들에게 광범위한 순교를 강조하면서 죽음을 무릅쓰고 적과 싸울 것을 호소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테러리즘 역시 회교공동체 대 이교도공동체라는 허구의 적대구도에 의존하고 있음을 볼 때,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위험은 명백하다고 하겠다.

‘테러리즘의 정신’(11월 4일자 ‘르 몽드’지)에서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내리고 있는 진단은 이슬람 원리주의가 국제 정세에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볼 때 매우 정확하다. “서구세계는 신적인 전능과 절대적인 도덕적 합법성으로써 자살을 기도하고 있으며 그 자신을 향해 전쟁을 선포하고 있다.… 최초의 동기를 제공한 것은 체계 전체이며, 그 내적 취약성이다. …세계권력이 모든 상황을 독점할 때, 우리가 기술주의적 기계설비와 단 하나의 사상에 의해 모든 기능의 훌륭한 응축에 여념이 없을 때, 테러상황으로의 변전 이외에 어떤 다른 길이 있을 수 있는가. 급작스런 보복의 객관적 조건을 만들어 낸 것은 체계 자체이다.…테러리즘은 바이러스처럼 도처에 있다.”

테러리스트들이 적대적인 두 공동체의 전쟁이라는 환상에 의존하고 있다면, 그들에게 상징적 전략의 무기를 제공한 것은 세계화 체계의 권력 자체라는 것이 시뮬라크르의 철학자인 보드리야르의 날카로운 지적이다. 자신들을 정의의 실현자로 자처하는 테러리스트들이 그들의 엘리트주의를 반성해야 한다면, 서구세계 역시 배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자신의 모순을 반성해야 한다는 것을 프랑스 학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홍서연 / 프랑스 통신원·파리4대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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