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6:10 (금)
‘베토벤의 嫡子’ 주제 의도 더 살렸어야
‘베토벤의 嫡子’ 주제 의도 더 살렸어야
  • 교수신문
  • 승인 2007.11.26 13: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음악비평] 금호아트홀의 ‘브람스 프로젝트-브람스는 누구인가’

가을의 끝자락, 계절의 변화에 어울리는 기획 음악공연을 소개한다. 금호아트홀이 제공하는 ‘11월 아름다운 목요일 시리즈’로 ‘브람스 프로젝트-브람스는 누구인가’다. 매주 특정 주제에 따라 선곡해 브람스의 아이덴티티를 규명하는 야심찬 작업이다. 기획의도는 브람스의 음악사적 중요성과 음악의 본질을 그의 음악적 행보와 연관이 있는 선·후배, 동료 작곡가들의 작품과 함께 비교 감상하며 찾자는 것이다. 주제에 따라 한명씩 선택된 작곡가의 작품과 브람스의 곡을 함께 연주하며, 주제가 뜻하는 음악적 담화를 실제 연주로 검증하면서 브람스의 메시지와 함께 비교되는 작곡가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형식이다.

브람스와 그의 선후배· 동료 작곡가 비교해
브람스(1833~1897)는 19세기 독일 낭만음악 정신을 자신의 삶을 통해서 실현한 작곡가다. 그는 바흐와 베토벤을 이어 독일 음악의 자존심을 지킨 정통파 작곡가로서 동시대 인물들이 바그너의 표제음악에 심취해 있을 때 고전주의 형식의 산물인 소나타와 교향악 등의 절대음악에 천착했다. 그럼에도 브람스의 작품이 갖는 정치하면서도 장엄한 구조의 규모, 감정의 깊이, 그리고 따뜻한 선율미와 리듬의 생명력은 그가 고전시대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질풍노도’의 감정표현을 추구했던 독일 낭만이념을 실현할 수 있게 한 고유한 재료들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서도 자신이 살던 시대와 교류하고 또한 한정된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적 감성과 긴밀히 소통 할 수 있는 탁월한 작곡가란 점에서 음악사에 남을 만한 인물이다. 
인간으로서 브람스는 신의와 예의를 중시하며 자신에게 엄격한 삶을 산 완벽 추구자였다. 음악가로서 입신양명할 기회를 준 스승 로버트 슈만과 그의 아내 클라라 슈만, 자신을 슈만에게 소개해준 친구 요아힘과 평생을 지피지기로 나누었던 존경과 우정은 그 자체가 예술적 소재가 됐다. 또한 독신으로 끝까지 스승의 아내를 경제적으로 후원했던 브람스의 인간미와 세상과 타협할 줄 몰랐던 작곡가의 내성적인 성격은 웅변가이기도 했던 그의 음악적 적수 바그너와 비교되는 점이기도 하다. 그의 완벽지향성과 미덕은 실내악 곡에 특히 잘 녹아 있어 금호 아트홀의 기획 연주는 소중한 음악 축제가 되고 있다. 
총5회로 구성된 이번 기획 음악회에서는 ‘연인에게’란 주제로 슈만과 브람스의 피아노 4중주가, ‘증오’로 브람스를 폄하했던 볼프와 브람스의 가곡이, ‘이복형제’란 제목으로 차이코프스키와 브람스의 피아노 3중주가, ‘베토벤의 嫡者’로 베토벤의 현악4중주와 브람스의 피아노 5중주가 연주됐다. 오는 29일에는 이번 프로젝트의 마지막 순서로 ‘진보주의자 브람스’가 쇤베르크의 현악 3중주와 브람스의 피아노 4중주로 연주된다. 금호아트홀의 규모와 음향적 조건을 생각해보면 이번 기획에 선택된 브람스 실내악곡들은 이 공간이 선물할 수 있는 최적의 음악문헌이라 할 수 있다. 기악 음악만이 아닌 볼프와 브람스의 가곡을 아울러 장르의 다양함을 배려한 점도 높이 살만하다. 또한 주제의 수사적 화려함이 낯설지 않은 것은 음악사에 객관적 근거가 있는 탓이다. 
기획 연주에 참가하는 연주자들도 주목할 만하다. 금호아트홀을 통해 성장한 신인연주자 윤은규·김보현과 권혁주 같은 젊은 대가, 그리고 국내외서 활동하는 정록기 한양대 교수, 최은식 서울대 교수, 이미경 등의 중견 연주자들은 세계수준의 음악적 올스타전을 기대하게끔 한다. 놀랍게도 피아니스트 최희연 서울대 교수는 5회 동안의 총 연주에 모두 출연해 슈퍼스타로서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기획연주 전체를 이끌고 있는 최희연 교수의 대범함에는 경의를 표하지만 주제와 그 내용에 있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피아니스트 한 명을 중심으로 연주곡들이 짜였기에 큰 스케일의 많은 곡을 남긴 브람스를 탐구하기에는 벅차다는 점이다. 한 연주자가 폭넓은 주제와 완성도 높은 5회의 음악적 여행을 매주 강행군 하다보니 선곡의 폭이 좁아져서 주제의 의도를 살려내기에 상대적으로 음악 내적인 근거가 약해진다.
특히, 4번째 연주의 경우 베토벤의 말년 작품 ‘대푸가’가 있는 현악 4중주 13번(B flat 장조, Op. 130)과 브람스의 현악 6중주 1번(B flat 장조, Op. 18)이 선택 됐다면 ‘베토벤의 적자’라는 주제를 보다 생생하게 보여 줄 수 있지 않았을까. 프로그램 노트는 브람스의 피아노 5중주(Op. 34a)와 베토벤의 현악 4중주 6번(C 단조, Op. 18)을 설명하며 스스로 주제에 의문을 던진다. 주제운용과 동기변주라는 두 작곡가의 일반적인 특징으로 주제를 다루기에는 설득력이 약하다.
그러나 연주자들의 수준이나 기획의도가 한국 음악의 문화적 힘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는 브람스 기획 연주에 뜨거운 박수와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브람스가 성취한 기악음악의 위상은 순수 절대음악으로서 기악음악을 추켜세웠던 음악학자 한슬릭과 철학자 쇼펜하우어에 의해 견고해졌으며 후배 작곡가 말러와 스트라우스, 드볼작에게 큰 영감을 줬다. 그가 성취한 내면의 몰입은 개인의 외로운 탐구가 아니라, 다른 이들의 갈증난 내면을 채워주고 강한 공명을 일으키는 음악임을 이번 음악회에서 체험할 수 있다. 
11월 1일 연주된 첫 곡 브람스의 ‘단악장 소나타 C단조’는 요아힘의 예술적 모토였던 ‘Frei Aber Einsam, 자유로우나 고독하게’의 첫 글자를 음표 F(파)-A(라)-E(미)로 대치해 곡의 음악적 주제 동기로 사용했다. 3연음부의 긴박한 리듬과 빠른 속도의 긴장감과 불안한 감정을 일으키는 반음계의 제1주제와 서정적인 짧은 제2주제를 통해 브람스는 자유로움과 고독한 길을 걸어갈 자신의 미래를 펼쳐 보이는 듯했다. 약관의 나이에 이 곡을 쓴 브람스와 비슷한 연배인 권혁주의 맑고 옹골진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며 필자는 이 연주자가 걸어갈 길은 어떤 것일지 상념에 잠겨 보기도 했다. 

晩秋에 흠뻑 취하는 소리의 향연
깊은 내면으로 침잠하고 싶을 때, 텅 빈 나무들과 낮게 구름자락 깔린 하늘이 마음을 좁아들게 할 때, 혹은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 받고 싶을 때 브람스 음악은 속 깊이 다독거려주는 최고의 음악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마음을 잡지 못하겠다면 브람스의 피아노 4중주 3번 C단조(Op. 60)의 3악장을 들어보라. 비올라와 첼로의 독주는 옆자리에 앉아 위로해 주는 마음 넓은 친구가 된다. 그리고 끝부분의 위로 오르는 2옥타브의 음계에서 내일 떠오를 태양을 생각하며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수능시험이 있었고 대학입시를 앞두고 대학과 학원, 수험생을 둔 가정이 모두 분주해 질 것이다. 한해를 마무리하며 바빠지는 11월에는 브람스 음악을 들으며 晩秋에 짙은 소리의 향연에 흠뻑 취해 보는 건 어떨까.   

박초연 / 바이올리니스트·한국예술 종합학교 강사

필자는 미국 NYU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문으로 ‘이건용의 바이올린 산조 분석과 연주가이드’, ‘한국의 역사주의 연주 : 그 현재와 미래 조망’, ‘J.S. 바흐 샤콘 분석, 해석, 연주 가이드’ 등이 있다.

□ 기획연주를 이끌고 있는 최희연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