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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배 고려한 성장 고민 … “가치 실현 논쟁 필요”
분배 고려한 성장 고민 … “가치 실현 논쟁 필요”
  • 김혜진 기자
  • 승인 2007.11.26 1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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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과 지식인_ 지식인과 현실정치, 어떻게 관계 맺고 있나]③ 2007 정책 비전의 평가와 과제 <끝>

차기정부의 국가의제 의견조사 결과, 학자들은 사회 전체의 안정적인 삶이라는 목표를 두고 그 실현 방법에 있어 팽팽한 차이들을 보였다. 전체적인 의견은 분배 중점 의제, 성장 중점 의제, 대외관계 의제 등으로 크게 나뉘었지만, 어떤 분야를 먼저 손질할 것인가, 누구의 주도로 해결할 것인가의 구체적 문제로 들어가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충돌했다.
학자들은 차기정부가 분배 문제에 더욱 힘써야 한다는 의견을 상대적으로 많이 제기했다. 사회적 양극화 해소가 가장 높게 나온 것을 비롯해, 지역불균형 해소, 사회통합, 비정규직 문제 해결 등 분배에 중점을 둔 의견이 24명에 달한 반면, 경제성장동력 확보라는 응답은 5명에 불과했다. 이러한 결과는 경제문제가 지배적 화두가 되는 상황에 대한 반성으로 해석된다. 분배를 고려한 성장 패러다임 구축을 위한 논의를 구체적 과제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양극화= “대안 패러다임 모색에 집중해야”
사회적 양극화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꼽은 이유에 대해 학자들은 무엇보다 시대적 변화를 지적한다.
전태국 한국사회학회 회장(강원대)은 “양극화 문제, 소수자의 부상, 다문화 시대 등이 현재를 규정하는 키워드”라며, “경쟁에서 낙오된 사람에게 시혜적 차원의 복지를 베푸는 논의가 아니라 모든 계층이 인간적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체제의 전환이 요구된다”고 강조한다. 또 오용선 가톨릭대 연구교수(행정학)는 “1987년을 계기로 우리는 생존을 우선하는 생존사회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시대적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존재사회로 거시적 변동 중에 있다”며 “존재사회의 과제는 분배, 사회정의, 평등, 행복, 삶의 질 등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경제 논의가 장악한 대선 정국을 겨냥한 지적도 있다. 장우영 서강대 연구원(정치학)은 “경제문제에 대한 각론적 논의는 단기적 성과는 거둘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 전망을 도출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오현철 전북대 교수(정치학) 역시 “지금과 같은 20:80의 사회는 경제성장의 과실을 부유층이 독점하는 체제”라며, “이는 장기적으로 민주주의 위기와 사회균열의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당장의 생산성에 집중하는 현재의 패러다임은 일부 계층에 대한 지속적 소외를 양산한다는 비판이다.
사회적 양극화 해소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패러다임 구축을 위한 논의의 장을 만드는 것을 구체적 실천 지침으로 제시한다. 김진하 계명대 교수(정치학)는 “양극화 해소를 위한 방향 전환은 국민의 총의를 모으는 것을 전제해야 하며, 기업과 노동자 모두에게 동기부여 될 수 있는 메커니즘의 고민에 있다”며 사회적 논의의 필요성을 촉구했다. 구체적 처방의 제시보다 사회적 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역불균형 해소= “균형발전 주도, 국가 vs 지역”
지역불균형 해소를 주장하는 학자들 역시 사회발전에 있어 분배의 필수성을 전제한다. 그러나 그 해결주체에 대한 견해가 엇갈린다. 이민원 광주대 교수(경제학)는 지역불균형의 구체적 해결 방안으로 “첫째, 지방의 지역구 감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양원제 도입, 둘째, 지역산업 육성을 위한 국책연구기관의 분산배치, 지역분류제 도입, 셋째, 균형정책의 일관성과 총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국가균형원의 창설”을 제시하며 문제해결에 있어 중앙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에 반해 박재욱 신라대 교수(정치학)는 “참여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은 국가 주도로 이뤄지면서 오히려 중앙을 비대화시켰다”고 비판한다. 이와 관련 노무현 정부의 공공기관 이전 정책은 심각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경제성장 동력 확보= “기업규제 완화가 전제”
경제 성장 동력을 꼽은 학자들은 그 이유로 경제문제가 모든 사회문제의 선결과제가 된다는 점을 주되게 들었다.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정치학)는 “경제성장 동력 확보 외에도 양극화 해소, 사회불신 해소, 남북관계 개선 등 중요과제가 있다. 그러나 경제성장 동력 회복은 더 이상 시기를 늦출 경우 회복이 어렵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의 해결이 다른 문제의 전제가 된다는 점에서 최우선 과제라 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박태규 연세대 교수(경제학) 역시 “성장만으로 나머지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성장이 없다면 남북문제, 양극화 문제 해결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학자들은 경제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서는 기업규제 완화가 전제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근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기업을 규제로부터 풀어 자율성을 확보해야만 경쟁력 있는 분야를 찾아내고 역량을 기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는 세부 방안과 관련, 나주몽 전남대 교수(경제학)는 “지속적인 성장세에 있고, 그 잠재력이 주목되는 중국과 연계해 발전할 수 있는 산업분야의 육성”을 들었다.

남북 평화체제 정착= “1년 남은 부시 임기, 시급성 요구돼”
학자들은 남북 평화체제 정착이 사회이념 갈등, 경제 성장,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한 발판이 된다고 전제하면서, 특히 미국 대선이라는 외부적 변동에 예의주시 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관계 연구실장은 “그간의 6자 회담 성과에 따라 올 연말 북핵의 불용화에 이어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예정돼 있다. 그러나 미국의 정권이 바뀌기 전에 구체적 실행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현재까지의 논의도 무화될 수 있다”며 의제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남북 평화체제를 선결과제로 드는 이유와 관련 최준영 인하대 교수(정치학)는 “현재 한국 사회의 갈등은 북한문제를 매개로 하는 이념 갈등이 큰 축을 차지하고 있다”고 전한다. 최 교수는 또 “대외무역에 의존한 한국의 경제구조에서 정치적·국제적 안정은 성장에 필수적이다”라고 지적한다.
학자들이 제시한 차기 정부의 의제는 그 분야도 다양했지만, 구체적 실행주체와 방법에 있어서도 상당한 차이들이 드러났다. 분배-성장, 시장-국가-시민사회가 종횡으로 중첩될 뿐만 아니라 구체적 전략까지 겹쳐지면 가히 백가쟁명의 상황이 된다.
이러한 가운데 학자들의 공통적 의견은 다양한 논의들이 현재 대선공간에서 전면적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번 조사에서 ‘각각의 대선 후보들이 내세우고 있는 시대 진단과 최우선 과제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응답에 참여한 35명 중 절반 이상(20명)은 ‘정책 담론의 실종’을 심각한 문제로 제기했다. 가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가 논쟁의 중심에 들어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선 후보들의 과거 전력, 상대방 흠집내기, 진실공방 등만 난무하는 정치현실에서 학자들이 제시한 의제는 정권을 디자인하는 측에서 귀기울만한 목소리가 분명하다.  생산적인 ‘나라 만들기’ 논쟁을 기대해본다.     
                                          김혜진 기자 khj@kyosu.net

>>누구를 어떻게 조사했나

>> 대상= 2007년 한국경제학회·한국사회학회·한국정치학회 주최 학술대회에서 관련 의제 발제자와 각 학회의 학회지에 의제를 발표한 연구자 ●한국경제학회: <경제학연구> 55집 1·2·3호, ‘외환위기 이후 10년’, ‘우리 경제교육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 ‘국가균형발전의 득과 실’ 학술대회 ●한국사회학회: <한국사회학> 41집 1·2·3·4·5호, ‘지구화의 다양성과 역동성’, ‘IMF체제의 사회분화를 넘어 통합사회로’, ‘한국사회학 50년 정리와 전망’ 학술대회 ●한국정치학회: <한국정치학회보> 41집 1·2·3호, ‘한국대통령 리더십 유형과 성과’, ‘2007 대통령 선거 특별학술회의’, ‘아시아의 도약과 미래’, ‘2007 춘계학술회의’, ‘한국 민주화의 20년’, ‘2007 추계학술회의’, ‘정부와 기업의 위기관리 시스템과 리더십: 외환위기 10년 평가와 전망’ 학술대회

>> 응답자 명단= 강혜경 서강대 강사(사회학), 김미경 광주대 교수(사회학), 김석우 서울시립대 교수(정치외교학), 김성진 덕성여대 교수(정치외교학), 김영주 초당대 교수(경제학), 김영혜 경기도가족여성개발원 연구원(사회학), 김용호 인하대 교수(정치학),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정치학), 김진하 계명대 교수(정치학), 나주몽 전남대 교수(경제학), 박길성 고려대 교수(사회학), 박윤숙 삼육대 교수(사회학), 박재욱 신라대 교수(정치학), 박태규 연세대 교수(경제학),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 신도철 숙명여대 교수(경제학), 안병진 경희대 교수(정치학), 엄한진 한림대 교수(사회학), 오용선 가톨릭대 연구교수(행정학), 오현철 전북대 교수(정치학), 유명숙 중앙대 연구원(사회학), 이근 서울대 교수(정치학), 이무성 명지대 교수(정치외교학), 이민원 광주대 교수(경제학), 이영 한양대 교수(경제학), 장미경 전남대 교수(사회학), 장상수 순천대 교수(사회학), 장우영 서강대 연구원(정치학), 전태국 강원대 교수(사회학),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정치학), 지주형 연세대 연구교수(사회학), 차재권 동의대 교수(정치학), 최준영 인하대 교수(정치학), 함준호 연세대 교수(경제학), 홍완석 한국외대 교수(정치학) 이상 3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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