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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철학’ 성찰 없는 경쟁체제의 그늘 키워
‘교육 철학’ 성찰 없는 경쟁체제의 그늘 키워
  • 교수신문
  • 승인 2007.11.26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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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10년, 대학에선 무슨 일 있었나

지난 21일은 97년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전국민을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은 IMF 외환위기에 대학도 적지않은 고통과 변화를 겪었다.  국립대는 고비용 저효율의 대표로 지목됐고 방만한 대학 운영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됐다. ‘평생직장’으로 인식돼왔던 교수직도 대학이 제시하는 실적을 내오지 못하면 언제 쫓겨 날지 모르는 ‘직업’으로 전락하게 됐다.  주요 대학 정책과 교수사회의 굵직한 사건을 통해 IMF라는 긴 터널을 통과한 대학사회의 지난 10년을 조명해 본다.

외환위기 직후 몸집줄이기 돌입
외환위기 한파에 대학도 휘청거렸다. 교육부의 지원감소, 등록금 동결, 기업의 기부금 축소 등 수입이 줄면서 대학들도 구조조정에 적극 나섰다. 재정자립도가 낮은 대학의 재정난이 악화되면서 사상 초유의 대학 부도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98년 외환위기 직후 경기대, 서강대, 숙명여대, 이화여대 등 대학들은 긴축재정을 편성하면서 행정기구 축소와 통폐합을 통해 몸집 줄이기에 돌입했다. 중복된 업무를 담당하던 행정 부서를 축소하고 보직도 줄였다.
신임교수 임용규모도 축소됐다. IMF에 접어들기 직전인 지난 97년 1백개 대학이 1천7백명을 신규채용 한 이후  98년 82개 대학이 9백95명을, 99년 81개 대학에서 8백84명을 새로 뽑은 것은 대학들의 재정난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신자유주의 교육정책 쏟아지다
이해찬 교육부장관이 취임한 98년은 교육부가 강력한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교육정책을 쏟아낸 시기다. 교육부는 이 해에 △모집단위 광역화와 학부제 시행 △대학 학과간, 대학간 구조조정 유도 △연구중심대학 육성 등 강도 높은 대학 구조개혁을 추진했다. 교육부가 1999년, 2000년에 이어서 추진한 BK21과 국립대발전계획안 등은 참여정부에 들어서도 기조가 유지되고 있는 대표적인 신자유주의 교육정책들이다.
이에 대한 대학사회의 저항도 거셌다. 연구실을 박차고 거리로 나온 교수들은 “시장과 경제논리를 앞세운 BK21사업과 국립대발전계획 등이 학문과 교육의 공공성을 저해하고 있다”면서 교육정책의 전면 제고를 촉구했다.

이 같이 강도 높은 대학개혁 정책은 교수단체 결성의 필요성을 높이기도 했다.
지난 2000년 민교협을 중심으로 교수노조 설립에 대한 공감대가 무르익었고 전국대학교수회 설립도 추진됐다. 국교협과 사교련이 중심이 된 전국대학교수회는 발기선언문에서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 두뇌한국21, 사립학교법, 고등교육법 개악 등 교육현장을 황폐화시키는 정책들이 이어졌다”면서 “대학과 교수의 위기는 신자유주의적 불공정경쟁정책은 대학간 교수간 무차별적인 경쟁만을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국대학교수회는 창립이 수포로 돌아갔지만 교수노조는 2001년에 본격 출범이라는 결실을 맺게 됐다. 

교수사회도 경쟁체제 도입…신분불안 커져
여기에는 교수들의 신분 불안이 가속화된 점도 작용했다.
교육부가 98년 입법예고한 교육공무원 개정안은 교수임용방식이 기존 기간제에서 계약제로 전환되는 것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투명한 임용과 교수인사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기 위해 2002년부터 계약제를 전면 도입하겠다는 것이 개정안의 주요 내용이었다. 계약제임용과 연봉제를 도입한 대학은 2002년 전면적인 시행을 앞두고 크게 늘었다. 교육부가 2000년 국정감사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1백 81개 대학 중 업적 평가제를 실시하고 있는 대학은 1백 47곳(81.7%)인 것으로 조사됐고 이는 전년도 1백 28개 대학(72.3%)에서 비해 20개 대학이 늘어난 수치다.

교수 임용방식의 변화는 비정년 트랙 전임교원제도 확산으로도 살펴 볼 수 있다. 비정년 트랙 전임교원제도는 지난 2003년 연세대가 처음 도입한 이후 1년 사이에 20여개 대학으로 늘었다. 2005년에는 상반기 신임교수 2천4백19명 가운데 41개 대학 3백60명(14.9%)명이 비정년 트랙 교원이었다. 계약기간이 짧아 안정적 연구에 전념하기 힘들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비정년 트랙제도는 여전히 확대되는 추세다.
교수들이 IMF 환란 이후 체감하는 가장 큰 변화는 연구업적평가강화다. SCI급 논문이나 일정 수준이상의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것으로 평가 기준이 대폭 강화되면서 교수들은 예년같이 연구해서는 승진하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더군다나 올해 카이스트가 정년보장교수 심사에서 신청 교수 43%를 탈락시켜 교수사회에 위기감을 고조시키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연구업적을 중시하는 경쟁체제가 심도깊은 연구나 대학교육을 소홀하게 한다는 지적도 잇따라 제기됐다.
양적 연구업적을 중시하는 풍조는 교수들이 논문 표절 등의 유혹에 빠지는 원인이기도 하다. 이필상 전 고려대 총장,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가 논문 표절 시비에 휘말려 중도 낙마한 것을 비롯 논문 표절 시비는 학계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대학도 산업” 상업화되는 캠퍼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이 “대학은 산업이다”고 선언한 이후 이는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산학협력이 긴밀해지는 것에서 나아가 대학의 규제를 풀어주면서 대학들의 수익사업을 거드는 정책이 줄을 이었다. 2005년 대학 부지 건물에 민자 유치가 허용되면서 대학의 상업화는 급진전됐다. 기숙사 등 교육시설 뿐만이 아니라 대형 쇼핑몰 등 상업시설이 대거 대학 캠퍼스에 진입하면서 대학내 상업화는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다음달부터 사립대가 적립금을 주식 등 금융상품에 투자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이에 따라 2006년 결산 기준으로 사립대적립급 총 6조5천112억원 가운데 절반인 3조 2천560억원까지 주식 등에 투자하는 것이 가능하게 됐다.
10년 동안 가시적인 연구력의 향상과 대학의 발전을 이뤘다는 데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그 이면에 놓쳐버린 것은 없는지 IMF 10년을 맞이한 지금 되짚어봐야 할 때다.           
   박수선 기자 susu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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