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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황폐해진 영혼
[대학정론]황폐해진 영혼
  • 전성인 / 논설위원·홍익대
  • 승인 2007.11.26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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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지 정확히 10년이 되는 해였다.  그 후 10년, 참 어찌 보면 짧다고 할 수도 있는 세월 동안 강과 산과 우리 사회는 많이 바뀌었다. ‘대우’가 사라지고, ‘현대’가 쪼개지고, 보증회사채는 사라졌다. 그 대신 구조조정과 노숙자가 그 자리를 채웠다. 소비자 신용이 범람하고 택시합승이 사라진 것도 변화라면 변화다.
대학사회도 많이 변화했다. 연봉제가 도입되고, 연구업적에 따라 봉급이 차등화 되기 시작했다. 구조조정 기간 동안 이공계 연구원들이 집중적으로 해고되면서 이공계 기피 현상이 급속도로 전파된 것도 두드러진 변화다.
이공계 기피 현상은 학부제와 결부되면서 일부 인기학과는 주체할 수 없이 밀려드는 학생들 때문에 비명을 지르고, 세칭 비인기 학과는 최소 수강인원을 채우지 못해 폐강 사태를 맞이하게 됐다. 전공필수 과목을 무기로 학생들에게 골목대장으로 군림하던 교수는 학생이라는 소비자 앞에서 교섭을 해야 하는 지식 공급자로 탈바꿈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대학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는 대학사회의 전반적인 보수화 현상이다. 외환위기보다 정확히 10년 전인 1987년의 민주화 항쟁이 대학사회의 민주화를 촉발하는 계기였다면 1997년의 외환위기는 대학사회 보수화의 신호탄이었다. 최근 어떤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상당수의 학생들이 스스로를 보수성향으로 포장하고 있기도 하다. 
보수화의 증거는 도처에 많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수협의회의 퇴조다. 87년 민주화 운동이 대학사회에 허용한 선물이 바로 교수협의회였다. 교수협의회는 한편으로 교권을 수호하는 이익단체 혹은 직능단체로서의 성격도 가지고 있었지만, 대학사회의 민주화를 담보하고 양심의 목소리를 사회에 전파하는 등불로서의 임무도 부여받고 있었다. 검찰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주장을 폈을 때 각 대학의 교수협의회가 이를 꾸짖는 성명을 발표한 이면에는 이런 사회적 임무에 대한 자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교수들은 사회에 대해 양심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예언자가 아니라, 시장 권력이 하사하는 꿀맛에 길들여진 시종으로 서서히 전락하고 있다.
더욱이 역설적인 것은 이런 전락이 교수정년제의 도입 등에 의해 객관적으로 교권이 더욱 보장되는 상황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먹어 본 사람이 맛을 더 잘 알기 때문일까. 대학경영자는 발전기금을 유치하기 위해, 교수는 연구비를 따내기 위해 지식만 파는 데 그치지 않고 종종 영혼을 팔고 있다.  영혼의 황폐화, 그것은 비단 외환위기가 노숙자들에게만 남긴 아픈 상처가 아니었던 것이다.

전성인 / 논설위원·홍익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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