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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적 운명의 저 깊은 곳을 보라
비극적 운명의 저 깊은 곳을 보라
  • 고광모/ 예원예술대· 전주영상위원회 이사
  • 승인 2007.11.19 1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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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비평_ ‘트로이의 여인들 The Trojan Women-An Asian story’ I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I 12월 2일까지

□ 헛된 명분과 잔인한 폭력에 희생당한 종군 위안부의 증언을 생생하게 연출해냈다.

‘트로이의 여인들’의 줄거리는 생소하지 않다. 그러나 트로이 왕비 헤큐바, 그녀의 딸 카산드라,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가 일제 치하의 한국인 위안부와 중첩된다면? ‘아시아의 이야기’란 부제를 내걸고 이번 연극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당한 여자와 어린 아이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헛된 명분의 잔인한 폭력에 짓밟히는 것은 항상 사회적 약자라는 것을 한국의 상황에서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현대로 되돌아온 신화 속 비극적 여인들에 대해 전쟁의 승리자가 행하였던 제국주의적 행동을 비난한 유리피데스와 사르트르, 그리고 이 ‘아시아의 이야기’는 분명 동질성을 지닌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지 않고 유럽과 미국, 한국을 오간 ‘다국적 프로젝트’로, 변형·생성되는 서구 신화 속에서 한국적 정서가 세계의 보편적 원리와 화통할 수 있는지 타진하는 기회까지 노리고 있다. 이것은 극단 가교 에서 1992년에 번안했던 유리피데스의 연극과, 또 일본의 스스키 극단에 의해 1974년 각색, 공연됐던 동명의 일본 전통극과 차별화되는 이 연극만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보스니아 출신의 여류 연출가 아이다 카릭(Aida Karic), 한국인의 배우들, 서구의 무대·의상 디자이너와 한국 전통 판소리 가수, 현대 음악 작곡가가 어우러진 이 종합예술은 우리공연의 국제화를 꾀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의 견고한 스토리보드 위에 덧댄 식민지 위안부들의 삶은 비엔나 페스티벌(2007.5.4~5.16)에서 그리고 미국 뉴저지의 알렉산더 카서극장(2007.10.18~21)에서 이국적 연극의 해석적 발판을 마련한 계기가 됐을 것이다.

공연으로 국경을 넘는 것은 언어·문화적인 한계로 제약 여건이 많은 편이다. 뮤지컬 ‘명성황후’나 ‘난타’ 등 소수의 연극만이 외국 관객에게 어필하고 있는 현실을 미루어 살펴보면, 서양신화의 한국적인 변화에 대한 비교 감상으로써 이번 공연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는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연극은 제의적 종교행사로부터 시작돼 신화를 근원으로 그 시발점을 삼는다. 희랍의 3대 비극작가 중에 트로이 전쟁에 대한 많은 관심을 표명한 유리피데스 역시 전쟁의 양면성을 헤카베와 카산드라를 통해서 보여준다. 그녀들을 전쟁에 관한 비판적 증언자로서 내세워 반전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한다. 17세기 극작가들에 이르러 신화가 전쟁의 무용담 보다는 등장인물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 거리로 재생산된다. 아가멤논의 이야기, 프리아모스와 그 가족의 불행이야기, 아킬레우스, 헥토르의 비극적 사랑의 로망이 풍부한 무대 이야기로 전용되는 것이다.

에우리피데스의 ‘트로이의 여인들’이 신화극이었다면, 1965년에 초연된 사르트르의 동명연극 ‘트로이의 여인들’은 탈신화극으로 해석되고 있다. 사르트르는 트로이 전쟁을 고대 정복전쟁이 아니라 알제리 전쟁으로 환기시켜 묘사했고 우리시대의 현대적 의미로 전이시킨다. 에우리피데스가 그리스와 트로이의 대립구도로 묘사했던 전쟁을 사르트르는 유럽 대 아프리카, 유럽 대 아시아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반식민주의 지향적 대사를 첨가한 것이다. 1954년부터 8년간에 걸친 이른 바 ‘더러운 전쟁’이라고 일컬어졌던 알제리 전쟁의 상흔이 사르트르가 에우리피데스의 원작을 개작하는 동기가 됐다지만, 모든 전쟁의 저변에 깔려있는 여성의 피해상을 그는 현대의 세계 문제로 확장하고 있다.

트로이 전쟁은 남성 영웅 신화이다. 남성영웅들이 전쟁에 패함으로 써 적국의 노예로 전락한 헤카베, 안드로마케, 카산드라 같은 트로이의 여인처럼 영웅 신화에서 여성은 희생양이었다.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네이가 아르테미스에 제물이 된다든가, 프리아모스의 딸 헤시오네의 헌상 등 신화에서조차 대부분의 여성은 ‘여성이란 이름만으로’ 박해를 받는 모습이 부각된다.
역사 속에서 젊은 여인들은 전쟁 직후 혼란 속에 살아남기 위해 매춘을 강요당해왔고, 정복자의 만행과 더불어 전쟁에서 무고한 희생자는 여자와 아이들이었기에 비극은 극대화될 수 있다. 단선적인 시간이 아니라 원형으로 인지되는 시간과 역사 속에서, 고대 희랍과 근대 한국의 이슈를 문화의 복합적인 수용으로 풀어낸 이번 작품은 자기정체성을 원근법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데서 유효하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는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 화려한 소비문화의 한켠에서  얼마나 많은 ‘트로이의 여인들’이 고통에 신음하고 있을까.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한 ‘상하이의 붉은 난초: 김상미의 운명’의 작가는 줄리엣 모릴로(Juliette Morillot)이고, 이 소설에서 영감을 받아 극화를 시도한 연출가는 보스니아인이다. 고대 그리스 비극을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로 재구성하고 전쟁 속 여성의 운명이라는 보편적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서구인의 눈으로 본 한국과 그 본질 사이에 어떤 해석적 틈새가 있는지 관객들이 찾아야할 몫이다.

서양인들의 관점 통해 구성된 우리들의 이야기
탈식민주의 비평을 끌어낸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이 담론으로서 지닌 특성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는 한편, 에스퀼로스, 에우리피데스 등 고대 그리스의 극작가와 단테의 작품, 그리고 19, 20세기 대영제국 정치가의 연설문 등 다양한 문헌들의 분석을 통해 오리엔탈리즘의 뿌리가 식민주의 시대 훨씬 이전까지 뻗어 있다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동양이 서양에서 ‘타자’였듯이 가부장적 체제에서 여성은 국가 체제와 야합한 강력한 힘에 항상 ‘타자’였다. 중국에 인질로 잡혀갔다온 조선의 ‘환향녀’들이 그랬고, 일본종군 위안부가 그랬고 戰後에 양공주가 그랬다. 그들은 항상 제국주의와 동족들 사이의 문지방적 인물로서, 비극적 역사의 장본인이면서도 민족 서사에서 설자리를 잃었다. 여성은 가족적 유대 안에서 어머니, 딸, 아내로서의 자아정체성이 규정되고, 그 외의 여성은 제국주의적 시선과 담합한 유교 논리에 의해 타자화·탈맥락화해 국가의 억압을 정당화했다.
‘트로이의 여인들-한국 이야기’가 다국적인 사고 구조 속에서 한국적 상황이 스스로 인식된 것이라기보다 서양인들의 관점을 통해 구성된 것이라면, 우리 내부의 격렬한 감정을 에둘러 알게 되는 ‘타자의 시선’이 가세하는 것이다. 특히 이번 연극이 극동에 위치한 한국적 삶의 다양한 모습과 경험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대신에 동양에 관한 관념을 재생산하거나 강화하는데 ‘텍스트적 태도’로 그치는 것은 아닌지 점검할 일이다.

고광모/ 예원예술대· 전주영상위원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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