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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를 살리려면
학문후속세대를 살리려면
  • 김혜진 기자
  • 승인 2007.11.19 13:0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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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김원 성공회대 연구교수의 ‘학문지원정책 무엇이 문제인가’

학술단체협의회(상임대표 박경 목원대 교수)는  19일 중앙대에서 ‘학술진흥 및 학문후속세대 지원 정책 개선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김원 성공회대 연구교수(정치학)가 발표한 ‘학문정책과 학문후속세대: 학술진흥재단을 둘러싼 문제를 중심으로’는 한국학술진흥재단(이하 학진)으로 대표되는 한국 학문지원정책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과 관련해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주요 내용을 정리한다.

등재지, 학술연구비, 연구교수, 중점지원연구소. 최근 지식사회의 화두다. 90년대 후반부터 한국 지식사회는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연구자들이 지닌 고민은 박사 학위 취득 이후에도 ‘독자적인 자기 주제를 가진 연구자’가 되기보다 프로젝트와 연구비 신청 등 무한경쟁으로부터 탈출하기 어려운 점, 연구비 지원 때마다 느끼는 탈락과 생계를 둘러싼 공포 그리고 개별화된 연구자 개인과 집단, 기존 학문공동체의 분절에 따른 ‘대화와 소통의 단절’등의 형태다.
지식사회 재편의 중심에 존재했던 것이 학진의 ‘등재지’ 정책이었다. 초기 학진 정책은 합리적 평가 시스템을 통해 지식사회의 자기갱신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난 지금 등재지에 실린 논문의 숫자로 연구 성과를 평가하는 정책은 ‘학문을 한다’를 ‘논문을 쓴다’로 변질시키는 동시에, 연구자의 창조적이고 질 높은 연구를 저하시켰다. 등재지는 ‘경력관리 수단’으로 변질돼 지식사회에 획일화된 논문식 글쓰기를 강조하고 소규모 학문공동체의 창의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더욱이 학진의 학문정책은 이전 시기 학회·학문공동체의 성격과 연구자의 지향을 변화시켰다. 이제 지식사회는 학진에 종속된 지식담론을 생산하게 됐다. 학진의 연구비 지원정책에는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효과가 내장돼 있다. 우선 표면적으로 학진은 스스로 표방하는 기초학문분야 지원이나 학문후속세대 지원을 약화시키고 있다. 학문후속세대 지원과 장기적 안목에서 기초학문 인프라를 구축하고자 했던 기초분야 연구 지원은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 또한 이른바 프로젝트 중심의 계약 형태는 연구의 자율성을 축소시킨 동시에 연구 활동 자체가 연구비 지원 조직에 포섭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지식기반경제라는 이름 아래 진행되고 있는 대학과 기업의 결합은 대학 내 연구 활동을 자본축적의 계기로 만들고 지식발전의 방향을 크게 왜곡시키고 있다. 이제 지식은 자본과 대학의 ‘사적 소유물’로 전락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학문후속세대의 주변화와 학문적 소수자나 주변 분야에 대한 지원 축소로 귀결되고 있다. 대학 연구소 지원 사업 역시 장기적인 연구소의 특성화와 이를 바탕으로 한 연구소의 자율적 자기 운영이 이뤄지기보다, 장기적 발전계획이 부재한 채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른바 학진의 학문정책은 예측 가능한 학문과 연구자들을 보호해 줄 것이지만, 위협으로 간주되는 분야나 연구자 집단은 회피하거나 주변화 시킨다.
양극화된 승자독식 질서와 약자, 젊은 세대에 대한 정신, 경제, 언어적 폭력이 유지되는 구조 하에서 학문후속세대들은 기존 지식사회 질서내로 진입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그러나 이들 후속세대의 삶을 개선시킬 도구는 SCI나 등재후보지가 아닌, 학문후속세대의 삶과 학문적 정체성을 보호해줄 무기다. 현재 학문후속세대들에게는 최소한 자신들을 지키는 방어막을 형성하고 이를 현재 대학원 등에 존재하는 세대들과 공유할 수 있는 기반이 요구된다. 이것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80년대 학문공동체 구성원들이 범한 오류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후속세대간의 개별화가 아닌 연대를 조직하고 이것을 통해 학문적 보호 장치를 마련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선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학진의 학술지간 서열화·인증제 정책은 전향적으로 폐지돼야하며, 학술지 평가와 관리는 연구자 집단의 자율적인 평가·관리로 이전돼야 할 것이다. 또한 학문정책의 연구 집단의 규율화 시도에 반하는 학문후속세대들 간의 ‘연대-소통’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연구비 지원과 관련해서는 주변화 된 연구분야에 대한 ‘연구비 쿼터제’를 정착시켜야 한다. 갈수록 대형화되는 연구소 지원, 대형과제 지원은 대폭 축소하고 개별연구자의 자유 개별주제·창의주제에 대한 지원으로 연구비 지원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제도적 지원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 대학원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 후속세대들이 지금의 ‘악마의 맷돌’과 같은 경쟁체제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사유와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기반과 이들 간의 소통과 연대의 틀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한국 지식사회를 고민하는 연구자집단이 해결해야 할 일차적인 숙제일 것이다.
정리= 김혜진 기자 khj@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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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상 2007-11-22 21:16:08
정말 이 사회의 지식 생산 시스템에 대하여 고민하여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김원 선생의 제안에 진심으로 찬성한다. 오랫동안 같은 입장이었고 무수히 이야기해 왔지만, 바뀌어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진정한 의미에서 외로운 개인으로 서야 하는 데 온통 공동이라는 형식 아래 모두를 묶어 놓았다. 이러한 구도 아래 누가 선학에 도전할 수 있겠는가? 이제 공동이라는 형식이 정말 학문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데 기여하고 있는지 방향을 선회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 2007-11-20 17:47:10
듣고 싶었던 이야기이다..

도대체 학진이 하고 있는 말도 안되는 정책의 방향들에 대해
소위 진보적인 교수들도 집단적인 성명서 하나 발표하지 않고 있는 현실에
참... 어이없어하고 있었다...

학진의 여러 기능과 역할, 운영방식에 대해
진정으로 수많은 문제제기 이루어져야 할 텐데..

스스로 진보적 지식인이라고 자칭하는 논자들 또한
학진에 대해 사적인 뒷담화나 주절될 뿐...

김원 선생의 발제에 박수에 박수를 더하고 싶다..
이런 발언과 행동들이 더욱 많아졌으면 한다..
나도 그러한 행동들에 동참하고 싶다.. 길을 찾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