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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의 운명] 변방의 장르에서 실험적 사유 담는 그릇으로
[에세이의 운명] 변방의 장르에서 실험적 사유 담는 그릇으로
  • 권희철 기자
  • 승인 2001.11.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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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과 자유 사이에서 움터오는 글쓰기의 모험
에세이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높다. 주변부 장르로 취급돼온 에세이를 실험적 사유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그것이다. 이에 에세이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담는 것은 물론, 명사들의 진지한 의견에도 귀기울여 본다. 한편 '학술에세이 공모전'과 관련, 생명을 주제로 다룬 저작들 몇 편을 살펴본다.

“자신의 작업이 철학인지 문예비평인지 사상사인지 모르면 자신뿐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불행한 일이다.” 최근에 어느 철학 학회 발표회에서 있었던 논평자의 말이다. 그의 발언은 아마도 발표문 중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탈근대의 날이 왔다고 두려워 말자. 오히려 하늘에서 태양을 찾고, 밤에는 집에 가서 太極을 보자. 한번 陽하고 한번 陰하는 태극을 따라하자. 태극이 조인 것을 無極이 풀면, 그 때는 아리랑을 노래하자. 덩실덩실 춤을 추자.”

인용구만으로는 어떤 성격의 글인지 짐작하기 힘들다. 철학회 발표문임을 감안한다면 어떤 이에게는 대단히 새롭고 창조적인 문구로 들리겠지만, 또 어떤 이에게는 알맹이 없는 공허한 수사로만 받아들여질 것이다. 여기서 철학적 진술의 본질과 경계가 무엇인지 해명하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위의 사태는 오늘날 지식인들에게 ‘글쓰기’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임을 일러준다. 그런데 글쓰기가 자신의 지식을 표현하는 유력한 수단이라는 기본적인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오늘날 글쓰기의 문제는 지식의 정체성과 결부돼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비판’과 ‘표현’이라는 이름으로 인문학의 정체성에 대해 논쟁을 벌였을 때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 논쟁의 배경에는 글쓰기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에세이’, 수필보다는 시론에 가까워
‘가로지르기(transversality)’ 또는 학제간 연구(Interdisciplinary Studies)라 일컬어지는 이질적인 분과학문들 사이를 넘어서려는 시도들은 이 문제를 보다 강하게 밀고 나간다. 이런 움직임들은 한결같이 어느 하나의 학문에 종속되기보다는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하려고 한다. 관행적인 글쓰기로는 이것이 제대로 표현되기 힘들다. 일종의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논문글쓰기를 구태의연한 것으로 몰아세우는 것 같지는 않다. 단지 새로운 내용을 다루는 만큼 그 표현방법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에세이가 새삼스레 부각되는 것에도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요컨대 새로운 형식의 자유로운 글쓰기로 에세이가 요청되고 있다.

에세이는 몽테뉴의 ‘수상록(Les Essais)’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사전적으로 프랑스어 essai는 어원상 ‘무게를 재는 시도’라는 뜻의 라틴어 exagium에 뿌리를 두고 있다. 몽테뉴의 책제목 또한 시험·試圖 등을 의미한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수필‘의 의미에서 크게 벗어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에세이의 고전적 의미는 수필이라기보다는 ‘試論’에 가깝다.

더 멀리 가자면 아우렐리우스, 키케로, 세네카 등 스토아철학자들의 글을 에세이의 시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베이컨, 데카르트 등 근세철학자들에서도 에세이 글쓰기의 예를 찾아볼 수 있으며, 이와 같은 예는 베르그송 이후 현대철학자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플라톤의 대화편들을 에세이의 원조로 보는 경우도 있다. 넓게 보면 니체의 아포리즘이야말로 이러한 글쓰기의 백미일 것이다. 그만큼 서구에서도 에세이를 명확히 규정하기란 쉽지 않은 일로 보인다. 영미권에서는 일상적으로 ‘리포트’ 정도의 의미로 사용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 폭과 깊이를 쉽게 측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동양에서는 중국 남송 때 洪邁가 ‘容齊隨筆’에서 “나는 버릇이 게을러 책을 많이 읽지 못하였으나 뜻하는 바를 따라 앞뒤를 가리지 않고 써두었으므로 수필이라고 한다”라고 밝힌 것을 수필의 원조로 꼽곤 한다. 한국에서는 박지원의 ‘열하일기’ 중 ‘日新隨筆’을 수필 형식의 첫 시도로 보기도 한다. 김만중의 ‘西浦漫筆’, 필자 미상의 ‘大東野乘’, 유형원의 ‘磻溪隧錄’, 이인로의 ‘破閑集’ 등으로까지 거슬러 오를 수 있다. 또 근대 최초의 수필은 유길준의 ‘西遊見聞’으로 꼽히며, 최남선의 ‘白頭山覲參記’, ‘尋春巡禮’, 이광수의 ‘金剛山游記’ 등이 그 뒤를 잇는다.

어떤 것이건 서구적인 의미의 에세이와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동양에서의 수필은 대체로 ‘자유롭게 붓 가는 대로 쓴다’는 글자 그대로의 의미에 가깝다. 이 점에 있어서 만큼은 서구의 에세이가 추구했던 정신과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의미 또한 원래의 그것과는 다르다. 다소 감성적이며 다채로운 수사를 즐겨 쓰는 일종의 문학 장르로, 그것도 부차적인 장르 정도로 여겨진다. 이때 일상과 지적 실험은 구분된다. 저자의 삶, 정치적 입장, 그의 글쓰기는 모두 분리되고 만다. 80년대 내내 대중을 사로잡았던 여류수필가들의 글이 그랬다.

우리에게 에세이는 기존의 세계가 마련한 표현방식을 거부하고 지적 치열함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그런 글쓰기가 아니었다. 지적 열정의 고단함이 묻어나는 글쓰기, 분과학의 경계를 오가며 진지하게 사색하는 글쓰기가 아쉬운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학술에세이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신문이 ‘생명’이라는 간학문적 주제를 에세이 형식으로 진지하게 풀어낸 글을 공모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이다.

그런데 지식인에게 에세이 글쓰기란 어떻게 다가올까. 루카치는 ‘영혼과 형식’에서 이렇게 말한다. “비평가의 심오한 체험이란 곧 형식이 간접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자체 속에 감추고 있는 영혼의 내용이다. 형식은 위대한 체험이다. (…) 비평가의 운명적 순간이란 그러니까 사물이 형식이 되는 순간을 말한다.” 그는 체험이 표현형식을 얻어내는 신비적 장면을 에세이라 부른다. 그것은 정형화된 제도적 형식에서 벗어나려는 노력과 다르지 않다. 이렇듯 에세이는 지식인에게 새로운 표현, 더 나아가 자기 정체성에 대한 무거운 고민을 담아낸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 담아야
아도르노가 에세이스트를 규정한 논의도 참고할 만하다. “에세이스트는 실험하며 글을 쓰는 사람, 대상을 여기저기 조사하고 물어보고 모색하고 시험하고 순간마다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반성하는 사람, 다각도에서 대상에 몰두하며, 자기가 본 것을 마음의 눈에 집중하는 사람, 글을 쓰면서 생겨난 여러 조건이 제시하는 새로운 내용을 그때그때 음미하고 이용하는 사람이다.”

에세이스트는 전공이나 학문배경과는 관계없이, 글쓰기에 대한 ‘태도’에 달려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 태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험과 자유일 것이다. “에세이의 가장 심오한 곳에 숨어있는 형식의 닻은 ‘이단’이다.”

치열한 지적 고투는 세계의 한계를 인식한다. 그리고 이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다른 무언가가 필요함을 안다. 에세이는 이렇게 시작된다. 그 운명은 태생부터 제도와는 거리가 먼 이단에 가깝다.
권희철 기자 khc@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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