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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도 울고가는 ‘정교함’… 신중, 또 신중하라
전문가도 울고가는 ‘정교함’… 신중, 또 신중하라
  • 박은순/ 덕성여대·미술사
  • 승인 2007.11.12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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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비평_ 미술작품‘진위감정’왜 어려운가

조선후기 한양의 재력가들 사이에서는 서화고동 수집이 대유행이었다. 서화고동의 감상과 품평은 점잖은 선비들에게 최고의 풍류로 손꼽혔다. 그 중 평생 서화고동을 모은 고동노자라는 사람의 얘기가 눈길을 끈다. 이 노인은 살아생전 돈만 생기면 서화고동을 사들이는 게 인생의 낙이었다. 그런데 그에게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안목’이 없다는 것이었다. 평생 정력을 다해 모은 서화고동이 온통 가짜였다는 것을 주변의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 자신도 알았을런지도 모른다. 일평생 예술품을 사는 데 모든 재력을 바쳐 늘그막에는 가난하게 살았지만, 그의 수장품은 누구도 사주지 않는 애물단지에 지나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날마다 그 가짜들을 쓸고 닦고, 향을 사르면서 혼자 즐겼다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진다.

□ 2005년에 열린 이중섭의 작품 진위논란 간담회에서 이 화백의 둘째 아들 이태성씨가 작품의 진위여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투자대상으로 급부상한 미술품

요즈음 서울의 화랑가나 경매전시장을 돌다 보면, 점잖은 중년 부부들이 미술작품 사이를 오가면서 전시 카탈로그로 얼굴을 살짝 가린채 서로 눈짓을 하거나 은밀한 대화를 하는 장면이 자주 눈에 띈다. 미술품 수집이 교양인들 사이에 다시 유행하고 있다. 자본주의 시대에 미술품이 투자대상으로 급부상했다. 감상이나 품평을 위해 수집하는 것이기보다는 먼 기대를 가지고 영원한 희소가치를 지녔다는 미술품에 투자를 한다. 과연 자본주의 시대에 걸맞는 현상이라고 하겠다. 더구나 부동산도 아니고, 증권이나 금도 아닌 수준 있는 문화상품이니 안팎으로 명분이 있는 투자인 셈이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안목이 없는 경우, 투자가로서의 소신이 부족한 경우에는 깊은 나락에 빠질 수도 있으니까. 자신이 좋아하는 미술품을 한 점 정도 자신의 형편에 맞춰 구입해 감상하는 것은 괜찮은 취미생활이다. 보다가 싫증나면 다른 것과 바꾸거나, 새로운 작품을 구입하기 위해 되팔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왠만큼 차익이 생긴다면 금상첨화겠다. 예컨대 ‘건전한’, 일반적인 투자는 이 정도가 아닐까 한다. 내가 좋아서 내 형편에 맞추어 투자하고 감상하는 것은 삶의 질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리라.

문제는 미술품을 투자 그 자체로 접근 할 때 일어난다. 미술품에 대해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경우 투자가가 많은 손실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 종종 있다. 그래서 인사동에서는 수업료 냈다는 말이 돌지 않는가. 공짜는 없다. 미술품의 투자와 수집은 그런 수업료를 톡톡히 지불해야만 하는 ‘전문분야’라는 사실을 명심해야한다. 수업료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것은 진위를 감별하는 능력이다.

미술품의 문제는 눈으로 보는 대상이라는 데서 시작된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우리는 모두 미술품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본다는 행위가 미술품과 관련되면 여러 층차가 생기기 마련이다. 모두가 보지만, 모두가 잘 보고 잘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란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미술품의 품평과 투자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건이다. 같은 작품을 보면서도 어떤 이는 眞作과 僞作을 구분할 수 있지만, 어떤 이는 진위의 차이를 전혀 구분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 이유야 어떻든 간에 그 결과는 어마어마한 차이를 낳는다.

문제는 현재 미술시장에 수많은 위작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최근 이중섭과 박수근의 사례는 현장에서 해결되지 못한 진위 문제가 결국 법정에까지 가서 확정된 경우이다. 그러나 모든 진위문제가 법정까지 가는 것은 아니다. 즉, 제3자가 나서서 교통정리를 해 주는 경우는 매우 특수한 경우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 손해는 누가 지게 되는 것인가. 많은 경우 그 손해 및 피해는 구입 당사자가 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어떤 방식이든 수업료를 내서라도 배워야 하고, 수업료가 아깝지 않을 만큼 열심히 노력해서 안목을 키워야 한다.

진위의 문제는 전문적인 판단이 요구된다. 많은 경우 위작이 잘 훈련된 전문가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신정아 사건에서 잘 드러나듯 이런 자격을 갖추지 않은 사람이더라도 치밀하게 계획하고 의도적으로 진행하면 보통 사람은 속기 마련이다. ‘설마 가짜려니…’ 하는 생각조차 못하는 사람을 속이는 일은 쉽다. 처음부터 진짜만 있는 줄 알고, 신중하게 비교도 하지않고, 아니면 자신의 능력에 대한 한계를 몰라 전문가의 도움을 구하는 일도 하려고 들지 않으니까 말이다. 나도 눈이 있는데 설마 보지 못하겠는가 하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속기 쉽다. 미술품의 감식은 시력이 아니라 문화적, 기술적인 감식안이 필요한 일이다.

한탕주의 노린 위작 전문가들

진작과 위작은 안팎의 관계가 있다. 잘 알려진 대가들의 작품에 위작이 많고, 잘 알려진 대가들의 위작은 진작과 매우 접근한 수준까지 표현된 작품들이 적지 않다. 잘 알려진 대가는 우선 작품 값이 비싸서 한 개라도 성공하면 큰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잘 알려진 대가는 개성이 강렬한 경우가 많아 그 전형적인 특징이 잘 포착되기 때문에 흉내 내기도 쉽다. 물론 대가인 만큼 근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위작 가운데에도 級이 있어서 어느 정도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쉽게 분별할 수 있는 어설픈 위작도 있다. 이런 것들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눈만 있으면 보이기도 하니까.

문제는 고도의 기량을 갖춘, 그 분야의 오랜 전문가에 의해 만들어진 위작은 진작에 상당히 접근하는 정도까지 유사해진다는 점이다. 이럴 경우 전문가들도 때론 판단이 쉽지 않다. 위작 전문가 들은 그것만을 연구한다. 많은 위작을 만들어서 그 가운데 일부라도 성공한다면 그것은 일확천금이 되는 것이니 한번 그 세계에 들어가면 발을 빼기 힘들다고 한다. 그늘진 세계 속의 재주 많은 장인들이 활약하는 위작의 세계는 나름대로의 질서와 조직이 있다. 여럿이 합심해 위작을 만들기 위해 평생을 바친다고 가정해 보라. 왠만한 아마추어 눈 속이는 것쯤이야 쉽지 않을까. 진위의 문제는 전문성이 관여된 판단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미술품의 진위를 판별하려면 때로는 정말 눈이 빠질 것처럼 느껴질 때까지 장시간에 걸쳐 들여다 보고, 작은 필선과 점 하나까지 현미경으로 들여다 볼만큼 집중해야 한다. 그것은 쉬운 일도 아니고, 한 순간에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러니 작품을 판단할 때 ‘신중’, ‘신중’ 하라는 것이다. 미술품에 접근하는 순간 ‘신정아’를 만날지도 모르니까.

예술품에 투자하고자 한다면 작품에 대한 존경심과 애호심을 가져야 한다. 작품 앞에서 겸손하고 (이건 예술가 자체에 대한 겸손과는 다른 문제이니 착각하지 않기를), 만일 작품의 진위를 판정할 자신이 없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돈을 투자하려 한다면 전문가의 도움이라도 받는 것이 좋다.

물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미술작품을 진짜 아는 사람이 되는 일이다. 비록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겠지만 진지하게 공부하고, 경험해야 한다. 언제까지 남의 판단에 의존할 수는 없을 것이니까 말이다. 공자가 말했던가. 아는 것이 즐기는 것만 못하다고. 예술을 사랑하라. 그리고 즐기라. 이것이 정답이리라. 

박은순/ 덕성여대·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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