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21:45 (금)
[흐름] 국립중앙박물관의 슬픈 운명
[흐름] 국립중앙박물관의 슬픈 운명
  • 교수신문
  • 승인 2001.11.2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1-11-26 17:10:40
홍성태 / 상지대·사회학

어느 날 갑자기 국립중앙박물관이 사라져 버렸다. ‘역사바로세우기’라는 이름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을 없애 버렸던 것이다. 그렇게 졸지에 우리의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건물은 본래 일제가 조선총독부로 지은 것이었다. 그 건물은 사실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자리잡고 들어선 건물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건물 자체만으로 보자면, 그 건물은 언젠가는 사라지거나 옮겨져야 할 건물이었다.
그러나 ‘역사바로세우기’의 이름으로 철거를 강행할 때, 그 건물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애초에 그 건물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한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건물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진정으로 ‘역사바로세우기’를 하고자 했다면, 무엇보다 먼저 이 사실이 존중돼야 했다. ‘역사바로세우기’는 조선총독부 건물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역설적인 사실 자체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했던 것이다. 조선총독부 건물을 한 순간에 폭파시켜 없애는 것으로는 ‘역사바로세우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것은 국립중앙박물관을 폭파시켜 없애는 것과 같다는 분명한 사실을 인정해야 했던 것이다.

역사를 무너뜨린 역사바로세우기
식민지 역사와 관련해서 ‘역사바로세우기’는 무엇보다 일제 부역자에 대한 역사적 청산작업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요컨대 공간적 변화가 아니라 사회적 변화가 ‘역사바로세우기’의 핵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선총독부 건물을 없앴다고 해서 과연 역사가 바로 서게 됐는가. 그 자신 중요한 일제 부역자이기도 했던 박정희(다카키 마사오)가 엉터리로 다시 세운 광화문과 친필 휘호입네 하고 쓴 그 현판이 아직도 건재하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조선총독부 건물은 사라졌을지라도 역사는 전혀 바로 서지 않았다. 국립중앙박물관만이 졸지에 집을 잃은 신세가 되었을 뿐이다.
우리의 현대사가 식민과 전쟁과 독재라는 불행으로 점철돼 있듯, 국립중앙박물관의 역사도 온통 불행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사회 전체가 불행의 물결 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국립중앙박물관이라고 그런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첫 번째 불행은 조선총독부 건물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한 것이었다. 조선총독부 건물을 하나의 역사로 인정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것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하는 것은 우리의 역사에 대한 또 다른 모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국립중앙박물관의 이전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랜 기간에 걸친 차분한 준비를 통해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했다. 그러므로 조선총독부 건물의 갑작스런 폭파는 국립중앙박물관에게 닥친 두 번째 불행이었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은 그 이름만 있고 실체는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조금이라도 문화적인 안목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이런 무모한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조선 총독부 건물의 폭파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이전계획이 명확히 서고 모든 준비가 갖춰진 다음에 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자행된 조선 총독부 건물의 폭파는 결국 국립중앙박물관의 폭파와 같은 것이었다. 조선총독부 건물의 폭파를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의 이전계획은 급조됐다. 이것이 국립중앙박물관의 세 번째 불행이었다.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서울시에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될 마땅한 부지를 찾는 것 자체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것의 상징성과 유용성을 염두에 둔다면, 그것은 당연히 사람들이 아주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에 자리잡아야 했다. 그러나 급조된 이전계획은 용산 미군기지의 한 귀퉁이를 그 새로운 부지로 선정했다. 이로부터 국립중앙박물관의 네 번째 불행이 시작된다. 찾아가기가 어렵다거나 외형이 너무나 무지막지하다거나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현재 무엇보다 문제인 것은 새로운 국립중앙박물관의 입구에 용산 미군기지의 헬리콥터장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에 발표된 주한미군의 연합토지관리계획에서도 드러났듯이 주한미군은 용산 미군기지를 결코 순순히 내놓으려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국립중앙박물관이 예정대로 개관할 수 있겠는가.

경복궁을 박물관으로 개조하라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모든 단추를 잘못 끼우게 된다. 계속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불행은 이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해 준다. 앞으로 더 많은 혈세를 낭비할 것이 분명한 만큼 이제라도 새로운 국립중앙박물관을 철거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 땅의 운명과 특징을 고려하면 이 주장의 설득력은 훨씬 더 커진다. 차라리 경복궁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개조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왜 고궁은 꼭 원형대로 복원되어야 하는가. 실제로는 완전히 원형대로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은가. 차라리 중국처럼 우리도 경복궁을 ‘고궁박물관’으로 개조하는 것이 훨씬 더 문화적이고 시민적이지 않을까. 고궁을 단순한 관람물이 아니라 적극적인 이용물로 만드는 쪽이 역사를 살리고 익히는 데도 낫지 않을까.
만일 경복궁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개조된다면, 서울의 도심은 정치의 공간에서 문화의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정말 역사적인 관점에서 이 구상에 대해 우리 모두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