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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풍경] 예술가여, 폭력을 고발하라
[예술계풍경] 예술가여, 폭력을 고발하라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1.11.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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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1-26 17:07:40

어느덧 전쟁이 일상이 됐다. 아침저녁으로 오늘의 ‘전황’을 생생한 화면과 친절한 설명을 덧붙여 안방까지 전달해주는 첨단 매체의 배려로 아이들은 지구상 어느 곳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스타크래프트처럼 감상한다. 어른들이라고 별다르지 않아 공식전쟁과 폭력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그러나 세상을 향한 예민한 촉수를 가진 예술가들은 마냥 무덤덤할 수만은 없었던 지 분노와 슬픔을 그림으로 풀어놓았다. 제일 먼저 침묵을 깨고 입을 연 화가 김우성은 자유의 여신상에 자유와 정의 아닌 분노와 슬픔을 개칠해놓았다. 그가 지난 20일까지 서울 ‘대안공간 풀’에서 연 개인전 제목은 ‘광인일기’. 여기서 광인은 누구인가. 작가는 미국에게 광인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잿빛이 뒤섞인 음울한 하늘을 배경으로 선 자유의 여신상의 얼굴은 철모를 쓴 해골. 치렁한 그 옷자락에는 퀭한 눈으로 응시하는 해골들이 매달려있다.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평화와 정의의 이름으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죽임의 현장에 직접 발담궜거나 조정하고 묵인해온 미국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다. 그 미치광이 해골상에 작가는 ‘세기의 기념비’라는, 야유의 이름을 붙였다.

작품을 통해 치열하게 현실에 참여해온 설치미술가 안성금씨는 12월9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통해 미국식 패권주의를 다양한 설치물로 통렬히 풍자하고 있다. ‘戰時中·展示中’이라고 붙인 전시회 이름처럼, 전시장에 들어서면 마치 전장에 온 듯한, 멀리 전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디 미군부대 한 구석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그가 만들어놓은 일종의 ‘불편한’장치들 때문이다. 무너진 컴퓨터 더미와 미사일로 미국이 이루려하는 것은 ‘허울뿐인 세계화’이며, 그들을 지키기 위해 몸을 날려야만 하는 한국 경찰은 작가의 눈에 더없이 슬프고도 우스운 현실, 그 자체이다.

작가는 커다란 파라솔 3개에 빨간 줄과 파란 줄, 5각형 천을 붙인 다음, 폭격기 모양의 인조 털을 수놓은 설치작품에 ‘戰時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말할 것도 없이 빨간 줄과 파란 줄은 성조기를, 5각형은 펜타곤을 의미한다. 어찌 보면 빤한 상징을 통해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미국 비판에서 한발 더 나아가 바로 우리 자신에게까지 닿는다. “외부를 차단하는 파라솔은 제3세계 민중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미국 자본주의와, 그 안에서 유유자적하며 살아가는 우리자신을 상징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예민한 촉수를 가진 예술가들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은 작은 전쟁터이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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