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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깊은 생각]72 이상한 논리
[짧은 글 깊은 생각]72 이상한 논리
  • 교수신문
  • 승인 2001.11.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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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1-26 17:06:07
김원중 / 경남대·교육학과

나는 술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가끔은 몸 상태에 따라 마시기 싫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옆 사람이 술을 권해도 “오늘은 몸이 좋지 않아서 그만 하겠습니다. 제가 술을 따라 드리지요”하고 사양하게 된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상대방은 “누군 몸이 좋아서 먹습니까. 다 같은 처지이니 그냥 받으십시오.”하고 강권하는 것이다.
그것 참 이상한 일이다. 내가 싫다는 데도 무턱대고 먹으라는 것은 무슨 심보이며, 또 강권의 논리가 ‘나도 건강이 안 좋지만 마시는 것이니 너 또한 목숨 걸고 먹어라’이니 그 얼마나 비논리적이며, 또 비인간적인가. 몇 번을 사양하는데도 끈질기게 달라붙으면 결국 나는 “아니, 내 건강이 안 좋아 마시기 싫다는데 왜 자꾸 이러십니까. 당신도 건강이 안 좋으면 당신도 마시지 말 것이지, 왜 당신도 참고 마시니까 남까지 억지로 마시라고 강요하시는 겁니까.”하고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친절하게(?) 설명해줘도 상대방은 내 말이 무슨 말이지 당최 알아먹는 것 같지가 않다.
최근에는 또 이런 일이 있었다. 가까운 동료가 이번 주말에 어디로 놀러 가자고 하기에 “나는 바쁜 일이 있어서 못 가겠다”고 했더니, 대뜸 하는 말이 “누구는 안 바쁜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또 내가 친절하게 “당신도 바쁘면 가기 어렵겠구만. 왜 시간도 없으면서 무리하게 일을 추진하는 거야. 다음에 모든 사람이 다 여유가 있을 때 가는 것이 좋겠는걸” 하고 대안을 제시했는데도 상대방은 역시 내 말을 이해하지 못 하는 듯 계속 화만 내는 것이다.
외부의 강의 요청을 받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상대방은 몇 월 몇 일 몇 시에 강의해 주실 수 있느냐고 묻는다. 확인해 보니 그 시간은 학교 정규 수업 시간과 겹치므로 요청에 응할 수가 없다. 그래서 정중하게 “불러주시는 것은 고맙습니다만, 그 시간은 제가 안되겠네요. 죄송합니다” 하면, 또 상대방은 “저희는 한 시간만 강의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강의 장소도 교수님 학교에서 가깝습니다. 꼭 해주십시오”하고 말한다. 아니, 아무리 강의 시간이 짧고 강의 장소가 가깝다고 해도 내가 그 시간에 그곳에 갈 수 없다면 강의는 못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미 그 시간에는 학교 강의실에 꼭 있어야만 하도록 예정되어 있다. 그렇다면 내가 몸이 둘이 아닌 바에야 어찌 양쪽에서 동시에 강의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뻔한 상황에서도 상대방은 좀처럼 부탁을 거둬들이려 하지 않는다. 똑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면서 나를 당황하게 만든다. “그러지 마시고, 가까운 곳이니 꼭 와 주세요. 지금 다른 강사를 찾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단 말이에요” 어허! 이런 딱한 일이 있나. 왜 사람들은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일까.
매사를 자기 입장에서만 보는 태도를 발달심리학에서는 자기중심주의(ego-centrism)라 한다. 심리학자 피아제에 따르면 그런 태도는 7세 이전 아이들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특히 4, 5세의 유아들은 지금 자기가 보고 있는 대로 남들도 모두 보고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그런데, 4. 5세가 아니고 40세, 50세가 된 사람들도 유아들과 똑 같은 수준의 논리를 펴는 일이 허다하니 이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피아제의 이론을 대폭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자기 일이 급하면 상대방의 상황은 물어보지도 않고 빨리 자기 일부터 도와달라고 칭얼대는 그 많은 어른들을 피아제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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