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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함 뽐내지도 않는데 눈길끄는 이유는?
화려함 뽐내지도 않는데 눈길끄는 이유는?
  • 김미경/ 강남대· 한국근현대미술연구소 KARI 소장
  • 승인 2007.11.05 1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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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비평] 아시아 현대미술 프로젝트-2007 City net Asia I 서울시립미술관 I 11월11일까지

최근 6년 째, 2년마다 아시아 각국 도시들의 국·공립미술관을 초대해 그들의 관점을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공존시키는 서울시립미술관의 ‘City net Asia ’가 나의 눈길을 끈다. 2003년에는 상하이, 타이페이, 도쿄, 서울을 잇는 네트워크를 보여줬고, 2005년 서울, 오사카, 상하이, 타이완을 잇는 제2회전에 이어 올해 3번째 전시다. 이번에는 서울, 싱가포르, 나고야, 광저우의 57명 작가들을 네트워킹 했다. 매우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가운데 관객 수를 자랑하지도, 화려함을 뽐내지도 않는 이 전시가 주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재 아시아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시들은 일반인을 위한 문화적 자양분 역할을 하는 동시에, 전문가적인 시각으로 ‘서구-아시아’ 미술을 잇는 기반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 현대미술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새로움’을 찾는 서구 미술의 대안 모색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함을 간과할 수 없다. 또한 아시아의 대형 비엔날레들은 급상승하는 저력을 과시하고 있으나, 주최 측이 주제를 정한다는 점은 제1세계의 대형전시들과 동일하며, 그들의 이슈에 편승함으로써 뚜렷한 차별화를 보여주지 못하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련의 ‘City net Asia ’전은 놀랍게도 주최 측의 주제가 부재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그것은 서구에 의해 단순화된 他者의 틀을 깨는 동시에, 아시아의 누군가가 주체가 돼 또 다른 타자를 재생산하지 않는 태도를 성숙하게 보여준다. 서울이 하나의 주제를 정하는 대신, 아시아 각국 도시들의 큐레이터가 제시하는 독자적인 주제들을 공존시킴으로써 서울이라는 자기중심성을 과감히 탈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 Feng Qianyu(china), Internet Wash Painting, 나무, 가변크기, 2006.

일본 나고야의 아이치 현립미술관, 중국 광저우의 광동미술관, 싱가포르 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이 내놓은 주제들은 ‘차이’와 ‘특수성’을 상호 소통시켰다. 서울의 주제는 당분간 불가피하게 계속 오버랩 되겠지만, 이 점은 앞으로 ‘시티 넷 아시아’의 특성에 공감하는 아시아 각국 도시에서 순회전시가 가능해 질 때 더욱 공존의 의미를 띠게 되리라 기대한다.

‘찢어진 틈과 꿰매진 솔기’(Rips and seams)라는 주제를 제시한 나고야의 큐레이터 하이토 마사히코는 ‘도요타’라는 거대 회사와 함께 자본과 교육열을 지닌 나고야가 예술을 포함해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것에 둔감한 곳이 된 현실, 즉 ‘찢어진 틈’을 본다. ‘찢어진 틈’을 통해 들어오는 작은 빛으로 성장해온 나고야 미술은 살아남은 예술과 삶의 모델로서 소개된다. 아리마 카오루가 신문지 위에 그린 사사로운 독백적 드로잉, 실낱처럼 가볍고 바늘 끝처럼 날카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하야카와 치카코의 작은 그림들은 ‘꿰매진 솔기들’로서 나고야 미술의 역할을 보여주고 있어 깊은 인상을 받았다.

또한 1980년대 이후 변화하는 중국의 문화·정치적 양상을 보여주듯이 광저우의 큐레이터, 구어 샤오엔은 ‘도시 생존자: 또 다른 예술 현실’이라는 주제로 강렬하고 북적대는 현대 중국의 14명 작가들이 관찰한 삶의 현실을 보여준다. 광저우의 도시비행 사진들을 통해 거대한 도시 풍경을 추상적인 ‘비-풍경’으로 인식함으로써 이미지의 부재를 말하는 아니우, 중국 사회사실주의와 전통성을 혼성화시키며 여성을 강렬하게 드러낸 펑 치엔위 등은 광저우 도시 생존자들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3회에 걸쳐 대도시 서울의 모습을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본 서울시립미술관의 이은주 큐레이터는 올해 ‘도시의 흔적’라는 주제로 15명의 작가들을 초대했다. 1960년대 이후 자본과 노동, 인구의 집중현상과 빈부격차가 극대화되면서 1천만 인구로 국가인구 1/4을 점유한 서울 현실을 다룬 작품들로 구성된 전시다. 한강과 고층아파트를 배경으로 서울 곳곳에 설치된 간이매점들을 찍어 인스턴트식 여가놀이문화 구조로 해석한 이득영, 철거빈민촌이나 청계천과 고층건물들의 이중적 도시구조를 놀랍도록 섬세한 정서로 바꾸어 놓는 안세권, 수많은 서울 사람들의 이사현장과 철거현장에 생경하게 남겨진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장난감을 포착한 강홍구는 대도시 서울이 남기는 흔적을 비판적으로 심각하게 바라보는 대신 한국인 특유의 유머와 여유로 포용하고 있다.

한편, 싱가포르가 그 이름 안에 정치·경제·사회적 정체성을 내포한다는 전제 아래, 큐레이터 조이스 팡은 8명의 싱가포르 거주작가들의 눈에 비친 도시의 특성을 ‘家事-장소와 공간에 대하여’란 주제로 제시했다. 일종의 아름다운 죽음으로서 모든 면이 너무 조화롭게 균형을 이뤄 오히려 평범하게 보이지만, 고도로 발달된 시장 경제의 중심지 싱가포르는 그곳의 거주자들에게 국가이자, 수도이며 3천5백만 명의 다민족 공동체로서 ‘살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는 家事 자체다. 요리나 바느질 등의 가사활동의 흔적을 보여주는 린 칭 지앙 테렌스, 가정에서 키우는 애완동물의 존재를 익살과 은유로 표현하는 L. 빈센트 등은 추상적인 국가 혹은 수도로서의 싱가포르가 사실상 작은 가사(domesticity)들의 집합체들임을 보여준다.

특유의 문화가 배어나는 미술을 각자가 심화했다. 고도의 전략으로 아시아 상호간의 맥락 속에서 성공적으로 그것을 드러내는 일은 쉽지 않다. 아시아 네트워크라고 해도 무작위적인 작가선정으로 구성되는 나열식 전시나 1회성의 블록버스터를 터뜨리는 현란한 전시들이 난무하는 요즘, ‘가치’와 ‘의미’로서 지속성을 갖는 전시를 보기 힘든 때다.

아시아 각 도시의 미술·문화적 관점은 해당 도시로부터 가장 섬세하고 설득력 있게 제시될 수 있다. 거대 주체가 일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City net Asia ’전시와 같이 아시아의 작은 목소리들을 객관적으로 공존시킴으로써 가능해지며, 거기서 ‘주체-타자’의 관계가 아닌 탈중심적이면서도 진정한 공존의 의미를 찾게 된다.

김미경/ 강남대· 한국근현대미술연구소 KARI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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