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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상품화'에 치열하게 맞서자
'지식의 상품화'에 치열하게 맞서자
  • 교수신문
  • 승인 2007.10.22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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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교수가 신임교수에게 5.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경영학

1975년 유학을 마치고 모교인 연세대로 돌아왔을 당시 비슷한 시기에 철학의 박동환 선생, 사회학의 박영신 선생, 영문학의 임철규 선생이 공부를 마치고 돌아왔다. 우리는 인문학과 사회과학 그리고 분과학문들 사이의 소통과 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기능적 지식인만을 양산하는 한국 대학의 학문풍토를 쇄신하는데 힘쓰자고 의견을 모았다. 세미나와 연구발표를 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소통과 토론의 결과를 매체를 통하여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1977년 봄 인문사회과학의 학술 계간지 「현상과 인식」은 그렇게 창간된다. 그 당시 문학을 중심으로 한 계간지는 「창작과 비평」「문학과 지성」이 있었다. 얼마 전 「현상과 인식」은 창간 30주년을 맞았다. 70년대, 8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은 「현상과 인식」을 기억할 것이다. 내 나이 30대 초반의 일이다. 물론 그 뒤에 그 맥은 끊겼고 신자유주의의 광풍에 그리고 그를 보완하는 거대한 연구 프로젝트의 미끼에 인문사회과학은 휘청거리고 있다.

  교수와 연구자를 대학이라는 시장에서 관리하고 통제하는 각종의 제도와 기법이 정착되고 있고 앞으로 그 강도는 더욱 커질 것이 분명하다.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가 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 가운데 대학 이상의 고등교육은 철저하게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의 시장으로 만드는 것이고 철저하게 기능적 인간을 양성하는 목표로 획일화 될 수밖에 없다. 진정한 학문의 발전은 논문 몇 편의 점수로 대체되고 계량적 평가제도는 쓸모없는 논문 생산기계로 만든다. 학문발전을 함께 이끌어갈 동료 연구자는 이겨야 할 경쟁자이고 연구비라는 물질적 기반을 빼앗는 적이 된다. 이미 대학은 세계를 깊이 이해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끄는 사상의 저수지도, 창조적 지성의 비판적 마당도 아니다.

  대학교수 좋은 시절 다 지나갔다는 말이 있다. 그 말 속에는 지식 엘리트로서의 부르주아지의 안락감과 풍요로움, 그리고 유유자적하는 한가로움을 잃어버린다는 서운함도 있지만 철저한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교육 노동자로서의 고달픔과 예견되는 고통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현실은 냉혹하고 그를 비판적 지성과 실천으로 넘어서는 길은 열려있지 않다. 오직 한 길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은 인류사회를 억압과 고통 없는 사회로 나아가게 하는데 앞장서서 묵묵히 실천하는 유기적 지식인이 되는 길이다.

비판적 지성의 자유로운 활동을 가로막는 구조와 제도, 그리고 관행이 있다면 과감히 집단적 운동을 통하여 그 틀을 깨뜨려야 한다. 인문사회과학이 숨 쉬는 전당이 되는 기초는 연구자 사이의 학문적 소통과 연대뿐이다. 자발적인 연구소통 모임을 만들고 굳어있는 학문체계를 넘어서는 운동을 벌여야 한다. 지식의 생산을 상품화하는  시장논리에 맞서는 대항운동을 대내외적으로 벌여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회주의적이고 시류에 편승하는 소부르주아 본성을 지닌 대학교수의 정체성을 극복하고 지식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노동자로서 그것이 상품화되지 않는 대안적인 사회를 건설하는데 모든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실천이야 말로 오늘날 젊은 연구자들에게 이 시대가 요청하는 외침이다.

오세철 / 연세대 명예교수 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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