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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은 登山, 긴호흡 필요하다
학문은 登山, 긴호흡 필요하다
  • 교수신문
  • 승인 2007.10.2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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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교수가 신임교수에게 2. 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 물리학

학문하는 일을 바둑에 비기기도 하고 장거리경주에 비기기도 하지만, 나는 이것을 등산에 비기는 것이 더 적절하리라 생각한다. 바둑이나 경주와는 달리 등산은 승부에 매달리지 않고 경쟁을 조장하지도 않는다. 자기 능력과 취향에 맞게 목표를 정하고 자기 흐름에 따라 걸음을 조정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정상을 목표로 삼고 여기에 빨리 이르는 것을 대단하게 여기지만, 이것이 등산의 본령은 아니다. 이건 오히려 등산의 백미를 놓치게 한다. 산에 오르는 묘미는 산과 나 사이의 조화에 맞추어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는 데서 느껴지는 작은 즐거움을 이어가는 데에 있다. 서있는 나무 돋아나는 들풀 그리고 간혹 지나가는 다람쥐들과 호흡을 같이 하면서, 같은 듯 달라지는 주변 경관에 넋을 놓는다. 날이 맑으면 원경이 보여서 좋고 안개가 덮이면 수목 하나 하나가 제 모습을 드러내 줘 좋다. 들리는 물소리, 새소리 풀벌레소리 마저 놓치면 서럽다. 그러다가 높은 고지에 올라 탁 트인 조망을 만나면 이 또한 얼마나 큰 즐거움인가!

학문은 말하자면 일생을 두고 오르는 등산길이다. 빨리 올라가 멋진 조망을 보고 남이 오르지 못한 새 봉우리에 첫발을 디뎠다는 영예를 누리고 싶은 마음 어찌 없겠는가? 그러나 이것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 길게 보면 이것은 곧 자신의 잠재력을 소진시켜 더 이상의 진전을 어렵게 하고, 성급한 나머지 발을 잘못 디뎌 다치게 될 위험을 가중시킨다. 오직 자기 몸과 학문의 세계를 하나로 조화시켜 그 안에서 지속적인 즐거움을 찾아나가는 길만이 장기적인 성취를 가능케 하며, 설혹 특별한 성취가 없더라도 그 삶 자체로 값지다. 등산길에서와 마찬가지로 학문의 길에도 가파르고 힘든 고비가 있고 지루하게 이어지는 황막한 여정도 있다. 그럴 때에 커다란 위안을 주는 것이 좋은 동반자이다. 다행히도 교단에 서게 되는 이들에게는 좋은 동반자들이 있다. 바로 학생들이다. 교단은 단순히 학문을 나누어주는 자리가 아니다. 학생이라는 동반자들과 함께 학문의 길을 함께 걷는 여정이다. 물소리 새소리가 번거롭지 않듯이 학생의 소리 또한 즐거움의 한 요소로 들릴 때 교단은 빛난다.

요즈음 교수들이 마치 단거리 경주나 하듯 무자비한 경쟁 체제로 내몰리고 있는 세태가 걱정스럽다. 힘든 일을 수행하기 위해 어느 정도 경쟁 심리를 발동시키는 것은 이해할만한 일이지만 등산을 단거리 경주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 사회가, 대학 당사자들이, 그리고 동료들까지 나서 이러한 경쟁을 부추기고 있지만 여기에 지나치게 놀아나지 않아야 할 사람이 바로 교수 자신이다. 이러할 때에 나는 어느 조용한 하루를 내어 가까운 산에 올라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어떻게 올라갔다가 어떻게 내려오는 것이 자신에게 가장 만족스러운 일인지를 직접 온 몸을 통해 체험해보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이 체험에 비추어 자신의 보조를 정하라는 것이다. 뭐니 뭐니 해도 자연처럼 좋은 스승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장회익 / 서울대 명예교수
필자는 루이지아나주립대에서 「GaSb의 에너지밴드 구조」로 박사학위를 받고 30여 년 간 서울대 물리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겸임교수로 일했다. 과학이론의 구조, 생명문제, 동서학문의 비교연구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저서로 『과학과 메타과학』, 『삶과 온생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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